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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비판론

테크놀로지 기반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점

by BaetZzo

[1.]: 우리가 보기에 민주주의 체제는 과거(중세)의 종교의 신이 가지던 위상을 상당 부분 대체한 것처럼 보인다. 이 신성한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려는 시도들(정치인의 피습과 군사 쿠데타, 침략 전쟁 등)은 악마화되어 일반인들은 물론 소위 석학들조차도 이 민주주의 체제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불가침 영역인 마냥 맹목적인 추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일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을 유발하고 긴박한 정세에서 윤리적 가치의 수호에 매몰되어 경직된 대처를 할 수밖에 없는 점을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야말로, 극히 무책임하게 평화와 번영을 가불 받아 사용하고 그 대가를 온전히 후세대에게 떠넘겨버린다는 점에 있다. 현세대에 국한된 무책임한 쾌락을 즐기고 후세대가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2.]: 우리는 오늘날 시공간을 아우르는 공리적 가치를 붕괴시키는 사회문제의 근원은 민주주의 체제라고 정의 내렸지만, 민주주의 자체가 온전히 오늘날의,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재앙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는 오늘날 사회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며, 고대 그리스나 원시적 평등사회에서도 원리적으로 유사한 체제가 존재했음에도, 현재와 같은 참혹한 문제들을 발생시키지는 않았다. 오늘날의 사회 문제, 그 모든 것의 근원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그것을 밑거름으로 삼아 성립된 “테크놀로지 기반의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해 하부구조인 테크놀로지의 발전(기술 사회)이 이루어졌기에 상부구조인 “테크놀로지 기반의 민주주의”가 성립 가능했으며 그것이 과거의 평등사회와 원시 민주주의와 결정적인 차이를 발생시켜 오늘날의 끔찍한 사회 문제들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3.]: 인간의 존엄성, 그것은 지극히 인간에게 해로운 개념이다. 인간의 존엄성의 이름 아래에 형성된 테크놀로지 기반의 민주주의는 역사상의 필연적인 순환을 차단하였고 이로 인해 생과 사의 순환이 무너지고 말았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미증유의 개체수 증가를 이루어냈지만 그들이 겪고, 겪게 될 고통의 총량은 배로 증대되었고, 동시에 늘어난 인구수를 부양하기 위해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잔혹하게 착취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환경운동가 따위가 말하는 감정에 기대는 추상적 논리와는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이다. 이것은 동물도, 식물도 아닌 인간을 위하는 충분히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이야기이다.

[4.]: 대규모 집단의 무력 충돌을 우리는 흔히 전쟁이라고 일컫는다. 전쟁은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고통과 재앙을 불러온다. 이것은 전술하였듯 현대의 가치관에서는 도저히 존재해서는 안 되는 죄악이자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민주주의 체제와 이를 떠받들고 있는 테크놀로지 사회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보장받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의 덫에 불과하다.

[5.]: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사회 문제를 살펴보자. 저출산-고령화, 젠더 갈등, 세대 갈등, 디지털 공간에서의 여러 범죄(사기 행위, 성범죄 등), 무차별 살인을 비롯한 증오 범죄, 과도한 결과지상주의와 경쟁 위주의 사회, 그리고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적성 국가의 핵무기 비핵화 문제, 한반도의 핵무장 등등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문제들은 개별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명제가 “테크놀로지의 발전”임을 우리가 앞으로 설명할 내용을 통해 이해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6.]: 오늘날 국제 정세는 강대국 중심으로 편성되어 큰 틀에서의 변화나 혼란이 발생한 사례가 없었다. 비교적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등은 확실히 작은 규모의 전쟁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성격을 들여다보면, 생과 사의 순환, 그리고 거대한 정세의 변화를 불러오던 고대나 중세시대의 전쟁과는 달리 그 양상에 있어 강대국들의 간섭(특히 자유진영)은 적극적 군사적 지원이든 평화적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역이든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국제정세의 대규모 변동이 발생할 가능성을 봉합하는데 중점을 두려 하는 경향이 강함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현대의 전쟁의 결과는 이전과 달리 재앙(그들이 말하는) 이 아닌 평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7.]: 실제로 아무리 우크라이나나 중동에서 장기간의 전쟁이 발생해도, 자유진영에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대리전쟁을 통한 평화의 유지에 불과할 뿐, 본국의 인력이나 생산시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소규모의(상대적인) 전쟁을 통해 고름을 짜내고 오히려 생명을 연장받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마치 불치병의 환자에게 진통제만을 처방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대리전쟁을 통해 축적된 민주주의의 병폐는 종국에는 강대국의 일반민들조차 체감할 수 있을 만큼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8.]: 대리전쟁을 통한 고름의 봉합 덕에 국제사회의 대규모 개편이 정체되며 앞서 말했듯 인류는 민주주의의 혜택을 입어 미증유의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전쟁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가 배제되며 일반민의 안정이 보장되어 노인들의 인구수가 증가, 생산력이 부족한 잉여인구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반대급부로 그들에 대한 연금 문제를 비롯한 부양의 부담으로 새로운 인구의 공급은 줄어들게 되었다. 삶과 죽음의 순환이 틀어박혀 저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 이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이 세상으로 와야 할 이들이 오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 문제는 자연히 세대 간의 갈등을 크게 만들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전쟁으로 인한 인구수의 순환관계가 깨어지면서 노동력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육체노동이 상당수 테크놀로지 기술로 대체되면서 숙련된 기술을 가진 블루 컬러 직종의 중요성과 노동력을 가진 개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가 하락하게 되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극심한 화이트 컬러 직종 편중현상과 일자리 부족을 야기하였다.

[9.]: 여기에 더해 국제정세의 고착화로 평화가 보장되면서 남성의 권위에 큰 역할을 수행하던 상비군의 필요성이 옅어지고, 반대급부로 기존에 부당한 대우를 받던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실력이 상승해 사회에 참여할 여건이 갖추어지게 되었다.(우리는 이러한 현상의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것이 아닌 현상 그 자체와 그것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이러한 요인들은 종합적으로 극한의 경쟁사회를 형성하였고, 자연히 사회에 결과지상주의가 만연, 출세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은 낙담하여 테크놀로지 사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부조리함을 토로하고 공유하며, 반사회적 심리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게 된다. 이중 일부는 기사회생의 수단으로써 가상화폐와 같은 리스크 높은 재화에 재산을 투자해 일확천금의 신분상승을 꾀하나 실패하고 파괴적인 심리로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이 테크놀로지 사회의 기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사회의 분열을 가속화시킨다. 이는 명백하게 역사상에 전례 없는 현상으로서, 당장 실무에 투입되어도 하자가 없을 인재 10명 중 1명만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9명이 사회적으로 도태된 존재로 낙인찍히는 극한의 불합리함을 야기하였다. 그리고 앞서 우리가 배운 내용을 이 문제에 대입해 본다면,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문제의 발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0.]: 신기한 사실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테크놀로지 사회가 소멸하게 될 경우 일련의 문제들이 너무나 당연하게도 전부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문제의 해결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유일하게 명백한 것은 현재의 이 무책임한 사회체제를 계속해서 유지시킬 경우 후손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그 시간에 비례해서 눈덩이처럼 커져나간다는 사실이다. 한 세대에 한정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아닌 시공간을 아우르는 공리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크나큰 장벽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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