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통사, 진보의 법칙과 원인을 참고하여
지난번에 중국사와 사회진화론에 대해 ChatGPT와 문답하는 글을 썼는데, 조회수가 처참하더라고요, 제가 되게 흥미를 가지는 주제인데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더 보편작인 칼럼 형태로 글을 다시 써봅니다. 이전 글은 지우려고요.
중국통사의 저자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일본의 중국사학자로, 유물사관 중심의 관념적인 중국사 해석에 실증주의적 연구로 맞선 교토학파의 중심인물입니다. 그는 중국의 고대사에 관해서 오랫동안 분산되어 생활하고 있던 인류가 차츰 구심적 경향을 가지고 대통일로 향하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PG44)그리고 허버트 스펜서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입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생물학적 영역을 넘어 사회의 진화 또한 생물학적 진화와 같은 원리로 이루어지며, 이는 단순히 사회와 생물뿐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모든 영역에서도 적용되는 원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되는 정신, 의식, 감정 등의 비물질적 현상도 결국 물질의 산물이라고 본 유물론과 정반대 되는 사상을 가지고 물체, 운동, 힘 등의 물질적 요소는 미지의 본질의 상징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런 형이상학적 본질을 제1원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스펜서의 진보이론에 따르면 사회는 발전하면서 기능과 구조가 더욱 전문화되고, 분화됩니다.(EX)한 명의 개인의 생산=> 분업화),
그리고 그는 이렇게 분화된 사회는 상호작용하며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체계를 이루어 더 복잡한 전체를 형성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선 중국사에 이 이론을 적용시키기 전에 허버트 스펜서의 진보이론, 익히 사회진화론으로 알려진 이론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스펜서의 이론에 따르면 진보의 원인은 크게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으로 구분 가능한데, 전자는 개개인의 능력, 지식,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사회 전체가 진보하며, 간단히 말해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요소인 개인의 발전이 모이고 모여 사회의 분화와 통합에 기여, 즉 사회를 진보시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환경 변화, 다른 사회와의 상호작용, 전쟁 및 무역 등 외부적인 힘들이 사회 진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인데, 저는 이 두 진화의 원인이 완전히 별개의 것이 아닌 선후관계가 얽혀있는 원인과 결과로 볼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첫 번째로 내부적 요인을 통해 다른 사회보다 진보한 사회가 다른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그 사회의 진보를 새로이 이끌어내는 예시는 역사 속에서 그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사에서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는 중국 대륙의 서방에 위치하여 서아시아의 발전된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이를 바탕으로 통일 제국을 확립할 수 있었죠. 이건 다소 소프트한 무역의 사례이지만, 스펜서는 전쟁의 사례 또한 명백하게 진보의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전쟁을 통해 강대하고 진보한 국가가 승리하여 패배한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원리로 이어질 여지가 있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죠, 바로 뉴라이트 계열에서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바로 이 문제점 때문에 스펜서의 이론은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를 정당화시킨다며 많은 비판을 받고 현재는 유사이론으로까지 취급받는 게 현실입니다.
이 비판요소에 대해서는 나중에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중국통사의 내용 속 “효문제의 중국화 정책”을 통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고 중요한 점은 스펜서의 주장에서 제시된 내부적 요인이 외부적 요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죠. 물론 저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포함한 뉴라이트 계열의 주장을 전혀 지지하지 않으며 추후에 그에 대한 비판의 이야기도 다룰 예정입니다.
다음은 두 번째로, 외부적 요인을 통해 다른 사회와 상호작용한 사회가 내부적으로 진보를 이루어 낸다는 주장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앞서 말한 전쟁의 사례나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아 보이지만, 진보의 주체가 외부가 아닌 내부라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러한 진보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숨겨진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딴 길로 새서 저의 개인적인 가치관을 피력하자면 저는 스펜서의 이론대로 생물이든 역사든 사회든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치며 그것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추어 나름의 내부적 변화를 이루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 모든 진화는 위기 상황에서 비롯되며, 생물이든 사회든 그 위기 상황에 맞추어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면 진보가 이루어지고, 반대로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진화는 정체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속에서도 나름의 내부적 변화를 이루어낸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진화”라는 용어보다 ”변화“, 혹은 ”적응“이라는 용어가 보다 이 이론에 보다 적합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호주의 날지 못하는 앵무새 카카포나 모리셔스 섬의 도도새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뚱뚱한 포식자들에게 취약한 실패한 디자인의 생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주민들이 포식 생물인 하스트수리를 멸종시켜 버리거나 애초에 외딴섬이라 포식자로부터 안전한 환경이기 때문에 굳이 존재하지도 않는 포식자에 대처하는 신체구조보다 자신의 편의에 집중한 형태로 “변화” 혹은 “적응”했다고 보는 게 적합하겠죠. 마치 최초의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 “타임머신”에서 너무나 오래 편하게 군림한 끝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지능도 퇴화해 버려 착취당하는 신세로 전락한 지배층들의 후손 ‘엘로이족’과 같아 보이지 않나요?
즉 스펜서의 이론을 오해석 해 야만사회는 진보를 거치지 못하는 타율적인 집단이므로 진보를 이룬 우리가 그들을 근대화시켜주어야 한다는 “백인의 짐”과 같은 주장은 “진화”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서양의 발전 중심으로 다른 사회를 해석한 스펜서의 이론에 대한 반쪽짜리 해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물학적 진화론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넘어가기로 하고, 사회적으로 외부적 요인을 바탕으로 내부적인 진보를 이루어낸 사례와 관련해서 조금 제가 생각해 낸 조금 재미있지만, 재미로만 들어야 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선 저는 앞서 진보가 이유 없이 발생하지 않고, 이유 있는 외부적 요인,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된 위기의식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위기의식의 잠재적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이며, 위기의식이 발생한 사회가 위기상황에 어느 정도로 면역력이 있는지에 따라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진보의 정도가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설명할 이야기의 골자는 한반도 고대 삼국에서 외부에 의한 국가적인 규모의 큰 재난이 발생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여 1세기 초반~1세기 중후반의 시간의 노력 끝에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되기에 이른다는 겁니다. 아마 한국사능력시험 1급을 공부하신 분은 내용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다만 이 이야기는 가설이 아닙니다. 그저 상황에 우연히 들어맞는 요소가 있다는 점만으로 제가 억지로 끼워 맞춰서 생각해 낸 흥미롭긴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할 이야기라는 걸 명심해 주세요. 안 그러면 유사역사학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아마 한반도 고대 삼국이 연맹국가로 시작해 중앙집권체계를 갖춘 고대 국가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이 과정에서 연맹국가의 고대 삼국은 스펜서가 말한 외부적 요인인 강대한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국가적인 규모의 재난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위기의식을 발흥시켜 연맹국가에서 중앙집권 사회로의 진보로 이어지게 될 겁니다.
이 과정은 기초적인 노력인 왕위 세습 체계 개혁을 시작으로 하여,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1세기 초반~1세기 중후반 정도의 시간 만에 결과적으로 불교를 공인하기에 이른다는 것이 이야기의 골자입니다. 실제 역사를 살펴봅시다.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국가적 규모의 재난
-고구려: 고구려 위나라 침입. 환도성 함락/동천왕/244년
-백제:????
-신라: 가야, 왜 신라 침입/내물왕/364년
왕위세습 체계 개혁
-고구려: 부자 상속 왕위 세습/동천왕(시행은 고국천왕 대이나 확립은 동천왕대)
-백제: 형제 상속 왕위 세습/고이왕
-신라: 김 씨 왕위 세습/내물왕
불교의 공인
-고구려: 소수림왕/372년
-백제: 침류왕/385년
-신라: 법흥왕/527년
국가적 규모의 재난으로부터 불교의 국가 공인까지의 Term
-고구려: 128년
-백제:??? 년
-신라: 163년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기록상의 외부에 의한 첫 국가적인 규모의 큰 재난이 발생하고 고구려와 신라에서는 각각 128년과 163년의 시간이 흐른 후 불교를 공인하고 있습니다. 반면 백제는 불교와 국가가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고구려와 신라의 불교의 공인까지의 35년이라는 시간적 차이와 왕위 세습 체계의 개혁 순서를 통해 조심스럽게 백제의 그것을 유추 가능합니다.
먼저 고구려의 경우에는 불교의 공인까지 대략 1세기 초반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마 고구려는 이미 태조왕대에 외부에 의한 국가적인 재난 없이도 스스로 중앙집권국가로의 기틀이 마련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태조왕대에 계루부 고씨의 독점 왕위 세습이 확립되고, 고국천왕대에 부자간 왕위세습이 확립되나 시행되지 않았다가, 동천왕대에 들어서부터 부자간의 왕위 세습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죠. 이는 신라와 달리 외부에 의한 국가적인 큰 재난이 발생하기 이전에 불교의 국가적 공인을 방해할 토착세력이 약체화되어 그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옅었음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삼국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불교의 용인을 가능하게 하는 결과를 불러왔을 것입니다. 반면 신라의 경우 묵호자 설화나 이차돈 설화와 같이 가야. 왜의 침입이라는 국가적 재난 이후에도 토착세력에 의한 불교의 공인에 대한 반발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설화들이 전해져 내려져옵니다.
왕위 세습 체계 개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면 신라 내물왕대에 시행되는 왕위 세습 체계 개혁이 고구려와 같은 부자 상속이 아닌 같은 성씨 간의 왕위 세습 체계 개혁인 부분이 특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보다 가까운 핏줄에게 왕위를 세습하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일반적의 심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고구려 태조왕~동천왕의 사례와 같이 왕위 세습 체계의 개혁의 단계가
-1: 동성(姓) 간 왕위 세습=>
-2: 형제간 왕위 세습=>
-3: 부자간 왕위 세습
으로 진보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면 우리는 신라와 백제에도 이 공식을 적용해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라는 고구려에 비해 중앙 집권체계 국가로의 전환 과정이 느렸고 이를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 내물왕대 들어서야 왕위 세습 체계 개혁의 1단계인 동성 간 왕위 세습이 이루어진 점이 반증하며, 실제로 그 때문에 고구려에 비해 35년이나 늦게 불교의 국가적 공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래의 3가지 결론들을 도출해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1: 고구려의 경우 태조왕과 고국천왕 사이인 차대왕과 신대왕대에 형제간의 왕위세습이 확립되었을 것이다.
2: 백제의 경우 고이왕대에 형제 상속 왕위 세습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2단계에 속한다.
3: 만약 백제의 왕위 세습 체계 개혁 단계가 2단계라면 외부에 의한 국가적인 큰 재난으로부터의 백제의 불교의 국가적 공인까지 걸리는 시간을 1단계인 신라의 163년과 3단계인 고구려의 128년의 중간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를 통해 과감하게 128년과 163년 사이의 17/18년 절반의 간격이 있는 145년의 추정치를 백제의 상황에 적용시키면 침류왕/385년 마이너스 145년인데, 이때는 240년, 고이왕 7년에 해당한다. 이러한 정황증거(규칙성)를 바탕으로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고이왕 시기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외적에 의한 국가적인 규모의 큰 재난이 발생하였다.”입니다.
즉 저는 백제의 고이왕을 포함해 한반도 고대 삼국에는 각각 외부에 의한 국가적인 규모의 큰 재난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지배자(왕)가 중앙집권체계 성립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어 결과적으로 각 국가의 기존의 중앙집권화 전환정도에 따라 1세기 초반~1세기 중후반의 시간을 넘어 불교가 공인되기에 이른다는 역사적 공식을 재미 삼아 이야기해 보자 합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이를 입증할 만한 고고학 자료나 역사 기록은 보이지 않기에 정말 단호하게 재미로만 받아들여주세요. 이런 거 사실관계 확인도 굉장히 미숙하게 해서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설령 그런 게 없더라도 전문가(대학교수)분들한테 보여드리면 바로 떡실신당할 테니까요… 저는 그저 해당 글에서 기록 속에서 보이는 우연한 법칙성을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를 불교의 국가적 공인의 외부적인 요인 중 하나로 지목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낸 것뿐이에요. 이런 부정확한 내용을 바탕으로 결코 스펜서의 진보의 법칙과 원인에 대한 이론을 보강하는데 쓰진 않을 겁니다. 이론의 보강은 2편에서 시작하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