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혼자 있는 시간이 꼭 외로운 건 아니야

나를 위한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

by 시에르


한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웠다.
주말에 아무런 약속이 없으면 괜히 초조했고,
모두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금요일 저녁이면
나는 유독 더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카페에 가고, 혼자 영화를 본다는 건
늘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고 여겨졌고,
무언가 잘못되었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혼자 있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했다.




나는 늘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안심이 되었고,
연락이 뜸해지거나 약속이 없을 때면
왠지 나라는 사람이 잊혀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기 위해 애썼고,
그게 나에게 진짜 필요한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못한 채

‘함께’라는 형식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이었다.
퇴사 후 며칠이 지나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핸드폰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일정도 없었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없었다.


처음엔 허전함이 밀려왔지만, 그 날만큼은
그 공백을 억지로 채우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날 나는 천천히 일어났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직접 브런치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곤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 고요가 어색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밀려왔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내가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아무도 나를 들여다보지 않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 뒤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보려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핸드폰을 확인하는 대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거나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고요한 하루의 시작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오후엔 작은 다기 세트를 꺼내 차를 마셨다.
찻잎이 우러나는 걸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고르고,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갖는 것.
그 시간이 짧더라도, 그 속에서 내 마음은 분명히 안정을 찾아갔다.


저녁이 되면 작은 조명을 켜고,
가볍게 책을 펼치거나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골랐다.
로파이 음악, 잔잔한 재즈, 혹은 빗소리.
특별한 일이 없어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
그건 화려하지 않지만 내 마음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엔 남들의 기준과 시선을 따라
‘이 정도는 해야 돼’, ‘이렇게 보여야 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나의 속도에 맞춰, 나에게 맞는 루틴을 만든다.


식사도, 취미도, 쉬는 방식도
누군가를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이런 나만의 루틴은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토양 속에서 천천히 피어난 것들이다.


물론, 여전히 외로움은 찾아온다.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말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봤을 때 공유하고 싶은 순간이 생기면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문득 선명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순간에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는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내가 여전히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내가 감정을 살아 있게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나는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옆자리에 두고 함께 머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지금 이 시간도 너에게 필요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
내가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외로움과도 다정하게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라는 뜻이다.




고요한 집 안,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공간,
따뜻한 차 한 잔,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지금 여기에 있음’을 알려준다.


예전의 나는 항상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도착해야 할 목표, 맞춰야 할 기대, 이겨내야 할 비교 속에서
쉼 없이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여기 있는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는 시간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훨씬 소중하고, 따뜻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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