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에서 나에게 묻는 다정한 질문
오전 10시 32분.
예전 같았으면 사무실 한쪽, 칸막이 사이로 얼굴을 살짝 내민 채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켜며 메신저 알림을 확인하고 있었을 시간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회의실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지하철에서 서둘러 내리며 무릎 위 노트북을 켜고 있겠지.
그 바쁜 시간의 흐름을 지금은 창문 너머로만 바라보게 됐다.
이젠 커피 향이 천천히 주방을 채우고,
식탁 위에 직접 만든 브런치 한 접시를 조심스레 놓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이 느긋한 시작은 아직도 조금 낯설지만, 마음 한구석은 분명 따뜻해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부지런했던 건 아니다.
사실 퇴사 후 몇 주간은 무기력함과 함께 흘러가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보다 새벽에 잠들고, 점심 무렵 일어나 배달앱을 뒤적이는 루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른 채 밤이 찾아오고,
스스로를 책망하며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자책하는 밤들도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냉장고 문을 열다가 문득 멈칫했다.
줄곧 남을 위해 일해왔는데, 정작 나를 위한 식사는 제대로 차린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급히 먹고 버텼던 식사들.
그게 나에게 남긴 건 공허함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때때로 나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평범한 식빵을 노릇하게 굽고, 버터를 얇게 발라 녹인다.
그 위에 아보카도 몇 조각을 가지런히 올리고, 반숙 계란을 조심스레 얹는다.
소금 한 꼬집, 후추를 톡톡.
냉장고에 남아 있던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잘라 바질과 곁들이면
금세 카페에서 나온 것 같은 한 접시가 완성된다.
요란하지 않지만, 정성은 담긴 식사.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한 끼일지 몰라도,
지금의 나에게는 ‘괜찮다’는 위로 한 조각이다.
식탁 옆 창가에 앉아 라디오를 켜고,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창밖엔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바람은 잎사귀를 부드럽게 흔든다.
이 평온한 풍경 속에서, 나는 ‘오늘은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
요즘은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계란을 굽는 시간, 접시에 채소를 놓는 시간, 커피가 다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그 모든 순간이 예전엔 불필요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나를 다시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작은 의식처럼 다가온다.
이따금 불안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지금 너무 게으른 건 아닐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럴 때면 예전처럼 조급한 마음에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의 나는 항상 바쁘면서도 늘 비어 있었다.
지금의 나는 느리지만, 오히려 마음은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누군가가 나에게 수없이 건넸지만, 정작 믿지 못했던 문장이다.
그걸 진짜 내 문장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이 바로 지금인 것 같다.
브런치 한 접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매일 묻는다.
"오늘 나는 나를 잘 챙겼나요?"
그 대답이 "응, 잘했어"일 수 있는 날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조용한 집 안, 내 손으로 차린 음식, 커피 한 잔,
그리고 나를 향한 다정한 질문 하나.
이런 하루가 모여서, 언젠가는 내가 정말 살아보고 싶었던 삶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작은 생각보다 사소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식사.
나를 위한 브런치 한 접시.
그게 요즘, 내 마음을 가장 부드럽게 데워주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