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나는방치했던열등감을떨쳐버리려고벽화마을을여행하는중이다. 나에게 큰 힘이되는건강한골목이다. 골목은넓거나화려하지는않지만많은이야기가이어지는곳이다. 그옛날 선인들의혼이지켜지고있는마을이다. 골목을지나가기만해도담벼락아래핀풀꽃만봐도감사한마음이생기는 곳이다. 내가살아있다는것을실감한다.
‘신기마을’은매곡으로이사를와서우연히알게된마을이다. 골목이미로처럼되어있어서정확한위치를기억하지못하면전혀엉뚱한방향으로나가게될때도있다. 사실아파트대단지사이에이런마을이있으리라고는상상도못했다. 지난몇달동안은일부러이곳을지나서일을다니기도했다. 구불구불한골목은걸음을상쾌하게해준다. 그 옛날 어린 시절 우리동네와 많이 닮았다. 감나무가있는 저집, 우물이있는저집이 우리 친정집이라면얼마나좋을까? 초록대문깊숙이고개를들이밀고는한참을서있기도한다.
해바라기가그려진벽화를본후급히골목을휘돌아나가는데대문을열고나오신할머니들을 만났다. 그중 가장키작은할머니께서말씀하신다. “봐라, 저부추도꽃인거라. 저시멘트속을파고나오는저힘좀보소. 아휴, 너무예뻐서뽑지를못해. 부추꽃이필때까지그냥놔둬야겠어. 젠장, 나도저리예쁠때가있었는데. 요즘은 꽃이란 꽃은 다 이뻐.” 할머니의휘어진열손가락은유모차를꼭붙든다. “어쩜저리도곱게나이드셨을까?” 급작허리가 휜어머니의옆모습이스쳐지나갔다. 가슴이저렸다.
골목을좀더걷다보면아담한돌담집도나온다. 그집에는오래된엄나무두그루가서있다. 그옆에는운동기구들이있고누구든편히쉴수있는정자도있다. 그리고 골목의담벼락마다고향을그리는그림들이그려져있다. 사실 나는벽화보다는집안풍경에더관심이많았다. 도둑고양이처럼담을넘어들어가집안구석구석을돌아다니고싶다. 마당 옆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와 꽃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더 즐겁다.
이 마을에는 수령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나는 느티나무를 만날 때마다 눈이 가장 맑아진다. 마을의 큰 어른을 만난 것처럼 저절로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를 하게 된다. 벌써 느티나무에도 잎이 무성하다. 느티나무는 왼쪽 무화과나무를 자주 내려다본 것이다. 작년에 열린 열매가 채 떨어지기 전에 새잎을 피우고 열매를 매단 무화과나무가 참 대견하다고 칭찬해주는 것 같았다.
느티나무를 지켜보는 흙담집에는 모과나무가 산다. 서로는 서로를 지켜주느라 남은 계절 내내 바쁠 것이다. 모과꽃이 지고 열매가 엄지손가락 만해졌다. 모과는 이름과 달리 열매의 효능도 좋다. 꽃과 잎처럼 곱고 착하다. 우습게도 나의 어렸을 때 별명이 모과였다. 왜 어머니께서는 모과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을까? 내가 정말 못난 얼굴로 태어났을까. 내가 태어나면서 어머님을 무척 아프게 했을까.
벽화마을의 골목은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고향집인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도시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같다. 열등감과 욕심도 사라진다.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이 그렇게 만든다. 할머니댁 마당이 그렇게 만든다.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어서 푹 꺼져 있는 느낌이 들지만 깨끗한 마을이다. 골목을 몇 바퀴 돌다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 그 옛날 착한 형제들도 만난다. 친구, 강아지와 고양이도 만난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만큼 슬픈 일은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이 골목에 서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