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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두람이 Jan 20. 2022

여행의 힘 3

생태문화의 섬 지심도(只心島)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인간이나 식물이나 나름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부실하게 태어났어도 아무리 구석진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그들 스스로 그들에게 맞는 일을 찾아 끝없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마음만은 편안해질 수 있다.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도 극한 가뭄이 찾아와도 어떻게 마음먹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로 대못 같은 것이 가슴속 여기저기 박혀있어도 그것을 견디고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그 대못이 빠져나갈 때까지 자신이 참고 이겨내는 길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지심도가 보여준 하루가 그랬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只心島)라 부르는 곳은 동백나무가 많다. 일명 ‘동백섬’이라고도 한다. 문득 고려시대 이규보의 한시 ‘동백화冬栢花’라는 시도 생각난다. 동백나무 외에도 지심도를 지키고 있는 식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계절을 견디고 있다. 하늘 높이 태극기도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동박새, 직박구리, 구실잣밤나무, 돈나무, 후박나무, 팔손이, 송악, 곰솔, 매화, 수선화 등을 만나며 지나가니 앓고 있던 내 병증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섬의 친구들은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 많은 생각의 파도가 동백꽃 한 송이 피어날 때마다 그날의 한이 철썩거렸을 것이다. 지심도는 생태문화의 섬으로 많은 관광객이 다녀간다.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고 15분만 달려가면 금세 섬이다. 너비 약 500m에 길이가 1.5㎞쯤 되는 이곳엔 해마다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한 둘레길이 소박하게 형성되어 있다. 비록 작은 섬이지만 천혜의 원시림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다. 편한 발걸음으로 초록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오솔길이라 더 좋다. 그리고 2016년 지심도의 소유권이 국방부에서 거제시로 이전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생태탐방코스와 문화탐방코스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마끝에 서서 섬 안쪽을 바라보는 내내 마음 심(心)자가 아른거린다. “내 마음속 상처를 여기 모두 내려놓고 가면, 네 마음의 죄를 여기 모두 내려놓고 가면, 오늘 여긴 온 사람들 모두의 그늘을 여기에 내려놓고 가면, 이 지심도는 어떤 심정일까요?” 이 말을 듣고 있던 옆 사람은 껄껄 웃는다. “별 걱정을 다 하오. 지심도가 왜 지심도이겠어요? 생각이 너무 넘쳐도 못써요. 울창한 숲 속 동박새 노래 들어보세요. 동박새만큼만 닮아 가면 되는 거요.” 


동박새 소리는 발랄하고 맑다. 동박새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면 온갖 잡념이 뭉쳐진 딱딱한 것들이 가슴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식당에 앉아 해물파전을 먹었다. 꿀맛이었다. 그런데 말끔한 형색의 한 남자분이 식당 주인에게 천 원을 깎아달란다. 우물쭈물 말을 얼버무리면서 도망치듯 달아나는 사내의 옆모습이 구차하게 보였다. 예전 같으면 뒤쫓아 가서 기필코 천 원을 받아냈을 거라고, 이젠 그럴 힘도 없다면서 멀어져 가는 남자를 연신 흘겨보는 여인이 안쓰러웠다. 아, 이 청정한 곳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내 마음도 어쩌지 못해 괜히 그 남자가 낮아 보였다. 동백꽃이 우수수 떨어져 있는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급작 오른쪽 발이 저렸다.


아! 그러고 보니 동백나무의 특성 중 하나가 조매화(鳥媒花)다. 꽃이 이르게 피어(12월~4월) 벌이나 나비 등 곤충들이 수정을 도와야 하는데 기온이 낮은 계절이라 도울 곤충이 없기도 하거니와 동백꽃의 꿀방이 너무 깊어 동박새가 중매쟁이 역할을 한다고 한다. 동백열매를 가을에 먹기도 하는데 동박새의 배설은 씨앗을 멀리 퍼뜨려 동백의 번식을 도와준다. 그러니 동백과 동박새의 인연은 지속적인 관계다. 신이 준 임무를 묵묵히 실행에 옮기는 동박새가 고맙고 부럽다. 동박새 마음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내 나름의 올해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2016. 03. 28. 울산매일신문 게재.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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