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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두람이 Feb 15. 2022

여행의 힘 7

달아 공원과 서피랑 공원


새해가 다가오면 고향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여전히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이 시국이 안타깝고 갑갑하다. 친정어머니께서 떠나신 지 10개월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어머님이 살아 계신다. 틈만 나면 지리산을 그리게 한다.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가끔 주변의 그림자들까지 미워할 때는 내 손발이 가엽다. 어머니께서 8년 가까이 고향을 떠나 계시는 동안에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시를 읽고 쓰면서 고통을 견디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어머님은 나에게 소중한 마당이었고 희망의 나무였다.


엊그제도 친구는 날 보고 참 못났다고 말했다. 네 몸이 아픈 것이 어찌 부모님 때문이냐고. 이젠 더는 누구누구 탓도 하지 말고 자신만 위하면서 살아가라고. 그렇게 마음이 나약해서 어찌 남은 삶을 야무지게 마치겠냐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홀로 어디론가 가까운 곳이라도 버스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다. 그러니까 그 친구도 나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격이 다르고 저마다 말 못 할 비밀이 있다. 나 역시 나의 친구를 다는 알지 못한다. 서로의 내부를 세심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깊은 관계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른 아침 나는 베란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볕에 꽃봉오리가 볼록해지고 있는 카랑코에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남편이 갑자기 일어서면서 나에게 말을 건다. “여보, 우리 바다마을 다녀올까? 이번에는 달아 공원에 가볼까?” 그리고는 해 뜨는 장면과 해넘이 장면 중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말한다. 나는 한참 고민을 하다가 ‘달아’ 라는 이름이 예뻐서 “해넘이가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통영을 여러 번 갔었지만 달아 공원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집에서 목적지까지 제법 먼 거리다. 승용차로 2시간 넘게 걸렸다. 달아 공원은 통영시 남쪽의 미륵도 해안을 일주하는 23km의 산양 일주도로 중간에 있다. ‘달아’라는 이름은 이곳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는데 지금은 달구경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일주도로는 동백나무 가로수가 있어 동백로, 라고도 하고 다도해의 절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드디어 목적지인 국립공원 해넘이 명소에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읽었던 것처럼 해넘이 장면이 장관이었다. 언젠가 미륵산에서 본 해넘이와 또 다른 광경이었다. 아름다운 다도해의 절경은 숨을 멎게 했다. 젊은이들의 감탄의 신음 소리는 노을 속으로 날아가 꽂혔다. 그리고 점점 바닷속으로 떨어지는 태양에 씨앗 하나씩 심는 것 같았다. 내일 떠오른 태양에 멋진 꽃나무가 솟아나길 바라면서. 나는 가족과 나라의 안녕과 코로나19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달과 해가 함께 뜨면 어떤 풍경이 그려질까? 나는 아주 잠깐 엉뚱한 상상도 했다. 해넘이를 보는 동안만큼은 현실의 허공이 정갈했다.


저녁식사는 해변 작은 식당에서 만든 충무김밥을 사서 먹었다. 김치와 시락국이 맛있어서 그런지 충무김밥은 더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방바닥이 뜨끈뜨끈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먼 옛날 아버지께서 군불을 땐 고향집처럼 방바닥이 절절 끓었다. 편안하게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뜬 시간은 8시였다. 모두가 해돋이에 박수를 치고 돌아서고 있을 때 눈을 뜬 것이다. “그것 봐요, 우리 해넘이를 본 것이 참 잘한 것이지요?” 나는 남편을 향해 어깨를 들썩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남편도 피식 웃으면서 어서 짐을 챙겨서 호텔을 나가자고 했다. 그리고 어제저녁 오던 길에 보았던 벼랑 위 누각이 있는 곳, '서피랑 공원'에 들리자고 말했다.


서피랑 공원은 명정동과 서호동의 접경지역, 낙후되었던 서피랑 언덕을 새롭게 개발하여 만든 곳이다. 강구안, 동피랑, 북포루 등 통영 전체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명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변에는 서호시장, 충렬사, 세병관 등 볼거리가 많다. 서피랑 공원 주차장은 그렇게 크지가 않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피랑을 오르는데 “금연공원”이라는 노란 글씨가 내 눈에 띄었다. “우리, 이것만은 하지 마요” 서피랑 공원 이용수칙 안내판도 보였다. 도심에 이런 아름다운 피랑이 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대나무, 수국, 말발도리, 후박나무가 나를 언덕으로 잡아끌었다. 바짝 말라버린 수국 꽃봉오리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있는데 바로 내 이마 위에서 후박나무가 초록 잎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 맞아 저 후박나무는 바로 나의 어머니, 라고 외치고 말았다. 새해 첫날 첫 태양을 한껏 머금은 후박나무가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건강한 어머니께서 나를 보고 환히 웃고 계시는 것 같았다.


새해 첫날의 서피랑 공원은 바람도 차분하고 춥지 않아서 걷기 좋은 날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왔다면 참 좋았을 걸, 내심 코로나19가 원망스러웠다. 누각 주변에는 통영고지도, 문화동 배수시설, 뚝지먼당 99계단, 음악계단 등 볼거리가 많다. 음악계단을 밟으니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손자도 생각났다. 나는 서피랑 정상에서 멀리 북포루 누각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건강해져서 서피랑 곳곳을 다시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 건너 북포루도 꼭 올라보리라 다짐했다. (이강하 시인)      


─울산매일 2022년 02월 13일 22:3

[문화산책] 달아 공원과 서피랑 공원 - 울산매일 (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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