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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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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두람이 Jan 20. 2022

여행의 힘 4

법기수원지


진정한 힐링은 어떤 것일까? 누구나 한 번쯤은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의 주머니를 만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모처럼 맞이한 휴일이 몇 배의 값진 꽃으로 피어난다. 그러면서 서로가 주고받은 편안한 대화가 구석기 이전의 신선한 자유를 가져오기도 한다. “우리 신체도 가정 형편도 어려우니까 올해는 집과 가까운 주변을 여행하며 소중한 물의 탑을 쌓아봅시다” 라는 말. 요즘 남편이 내게 자주 던지는 말이다.
 
오늘은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법기수원지’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늦은 아침 늦은 식사를 한 후 간편한 옷차림으로 오렌지 두 개, 과자 한 봉지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서 집을 나선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데 어쩐지 내 몸이 으스스 떨린다. 날카로운 바람 한 덩이가 내 목덜미를 탁 치고 달아났다. 기분이 묘했다. 여전히 나의 남쪽에는 날 선 만년필 한 자루가 숨겨져 있는가.

 
법기수원지는 울산에서 왕복 세 시간이 안 되는 거리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차창 밖 산 구릉에도 이미 초록 잎이 장관이었다. 군데군데 산꽃이 보이면 가슴에 담아둘 것도 없이 어제의 먼지가 말끔히 씻어나가는 듯 목젖 깊숙이에서 연둣빛 함성이 터져 나온다. 본디 우리는 시골 태생이라 그런지 사계절의 변화가 울퉁불퉁한 냇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좋아한다. 숲길을 만나면 한 마리 작은 토끼가 된 것처럼 먼저 귀가 밝아진다.   

   

생각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다다랐다. 법기수원지 근처 주차장 아래로 띄엄띄엄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봄물이 고인 논에는 싱싱한 미나리들이, 오른쪽 도로 옆에는  나물을 파는 여인들이, 그 위쪽 안쪽엔 야생화 화원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탐방을 끝내고 내려오면서 나는 기필코 저 화원에 꼭 들리리라 다짐하고 빠르게 수원지 입구로 올라간다. 오르막에는 거대한 히말리 야시다 시다가 양팔을 벌리고 나를 환영한다. 편백나무도 양쪽으로 빽빽이 심어져 있다. 놀라운 풍경이다. 마치 고향으로 접어든 버스가 막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느낌이랄까.


세상을 편히 안는 방법이 숨겨져 있는 듯 건강한 히말리 야시다가 부럽기까지 했다. 입구엔 작은 관리소가 있고 그곳에서 한 직원의 안내는 친절하다. 소지품은 들고 갈 수 없다며 배낭은 보관소에 두고 올라가란다. 상수도 보호 구역이므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탐방객들에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잠시 묵언의 발걸음 한 잎이 먼 미래의 환경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법기수원지는 경남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위치한 저수지다. 1932년에 축조되었고 2011년 7월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된 청정지역이다. 150만 t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하루 수천 t 정도가 부산에 공급된다고 한다. 양산시민은 물론 인근 울산과 부산시민들이 자주 찾는 공간으로 만족할 만한 곳이다. 다만 법기수원지가 알려지고부터는 수많은 사람의 왕래로 식수와 숲이 훼손될까 염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댐 위에는 반송 7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칠 형제 반송’ 이라는 푯말이 적혀 있다. 하필 7개의 반송을 여기에 심었을까. 행운의 숫자 7이라서? 아니면 일곱 마을과 일곱 형제의 변함없는 믿음과 신념? 나는 반송과 반송 사이를 오가면서 별의별 상상에 빠졌다. 오늘 탐방객은 대부분 어린아이를 동반한 젊은 층이 많고 다정한 몇 쌍의 연인도 있다. 두 딸아이의 손을 꼭 잡고 호수를 바라보는 한 아버지의 옆모습이 눈에 뛴다.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저 때의 우리 아이도 참 귀여웠지.’ 지나간 시절이 문득 떠올라 배시시 미소가 번진다.
 
물의 여정이 시작되는 곳, 나는 엄지와 검지를 들어 호수를 가만가만 눌러본다. 그 옛날 시대적 환경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조상의 꼼꼼한 지혜도 되돌아본다. 그리고 물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참 의미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낀다. 저수지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 다소 짧기는 했으나 맑은 물과 푸른 공기가 무한해서 걷는 내내 만족감을 떨칠 수가 없다.  


        

─2015. 05.22. 울산매일신문 게재. 일부 수정


법기수원지 야생화 화원에서 구입한 '삼지구엽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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