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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Jun 04. 2024

어쩌다 보니 일본에 시집왔다.

희안한 점쟁이의 점괘

23살 때였다.

“우리 오늘 ‘점’ 보러 갈래”?

인생에서 결혼운수가  제일 궁금했던 언니를 따라

‘용~‘ 하다는  신당동 ‘점쟁이‘집으로 향했다.


생전 처음 가본 점쟁이의 방은 내가 상상했던 점쟁이들의 방,  ‘딱’그런 방이었다.   모든 것이 ‘불그스름’ 했다.


내 미래를 정말 이 사람이 알 수 있을까?  

23살이었던  나는, 오빠가 “ 자는(나) 군부대 대령하고 결혼할 아 다 “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여러 번 들은 터라 원치 않은 결혼을 당할까 봐  두려웠고 환경이 불안정했던 탓인지 늘 마음이 불안했던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이 궁금했다.


50대로 보이는 점쟁이가 언니의 생년월일을 묻고,  쌀을 한 움큼 쥐더니  밥상 위에 ‘살짝‘뿌렸다.

흩트러진 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너는 부모복도 형제복도 없구나~…불쌍한 것.. 쯧쯧..


“올해 만나는 사람은 남편감이 아니고, 내년에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어!  남편복이 있어 너는! “

“애는 둘이 보이는구나~~

인물도 좋고, 착한 남편을 만나 재산도 모으고 잘 살 거야!라고 덕담을 해 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언니와 나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점쟁이의 기분 좋은 점괘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점쟁이의 탁자 가까이 몸을 바싹 붙여가며,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니는 ‘오로지’ 미래의 남자이야기만 집중적으로 물어댔다. 결혼이 여자의 인생을 바꾼다는 말을 언니는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언니는 만족스러운  점괘가 나왔기에 기쁜 마음으로 흰 봉투에 5만 원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얘는 어때요?  내 동생도 좀 봐줘요! “

3만 원 더 드릴게요. 네?


점쟁이가 나를 빤~~ 히 쳐다봤다.

왠지 부끄러웠지만, 그녀가  내 미래를 잘 볼 수 있도록 눈을 좀 맞춰줬다.


“음~~ 얘는 아무래도 ‘태평양’ 물 건너가겠어! “

근데 고생을 좀 하겠네?

“언니가 잘 살 거니까 좀 도와줘! “


3만 원짜리라 그게 다였다.

너는  “고생 좀 하겠어!”  언니가 좀 도와줘!

이 대목이 너무 거슬렸다.

얼굴만 빼고 나는 언니보다 못한 게 없는데, 언니는 잘 살고 나는 고생할 거라고?


나는 자존심도 상했고, 근거도  없을 것 같은 그 말이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았고,  혹시라도 그녀 말대로 될까 봐 무서웠다.  

그리고 다시는 저따위 운세 같은 것은 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실제로도 다시는 안 봤다.


‘똑 단발’을 한 언니가

점쟁이 눈에  똑 부러지고 예쁘게 생겼고,

나는 언니에 비해 못생겼고, ‘띨띨’ 해 보였음이 분명하다.  ( 사투리가 부끄러워 말을 잘 안 했다)




누구나 태평양은 맘만 먹으면 건널 수 있지!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애도 둘 낳는 게 ‘유행’이지!..



신기하게도 …


거짓말처럼  언니는 이듬해  잘~난 신랑감을 만났고, 예쁜 딸을 둘 낳았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가 딸린 회사에 몇 년 다녔다.  직원 기숙사에서  ‘유 덕화’의 포스터를 몇 장 벽에 걸어두었다고, 풍기문란‘이라는 어처구니없는 ’ 죄’로  기숙사를 쫓겨난 후  화가 나서 회사를 때려치웠다.  점쟁이 말대로 잘 사는 언니의 집에 ‘빈대’ 붙어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나는 당시  홍콩 배우 ‘유 덕화’의 팬이었고,  옷도 그때 언어로 ‘날라리’처럼 입었다.


 ‘찢청’을 입었다는 이유로 좀 ‘노는 계집애’로 낙인찍혔고,  교생 실습 때는 ‘조끼’vest 패션을 했더니, 남자 국사 선생님이 “오늘 말 타러 가요?” 라며 위아래 훑어가며 빈정 거렸다.  옷하나에 저런 빈정 거림을 들어야 했나?   


남이 봤을 때는 별일도 아닌 그 ‘풍기문란 죄’는,

서울에  마땅히 지낼 곳이 없었던 나에게 상당히

기가 막힌 일이었고,  예전 마음에 들었던

국사 선생의 ‘오늘 말 타러 가요?  라는 말도

여러가지 느끼게 해 주었다.  오버 해석하면, 당신은 한국사회에 좀 맞지 않군요…

 


찟 청이 어때서?

흑인 같은 파마가 어때서?

조끼 패션이 어때서?

한국이 나를 참 싫어하는구나….



대학 졸업식날 일어난 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건강도 별로 안 좋았지만, 살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회사는 희한한 대접으로 나를 충격에 빠트렸고,

아픈 마음을  달래느라 잘 사는 언니네 집에서  

찬란한  20대 청춘을 ’ 백수‘로  허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심심해서 읽은 책 한 구절에 이런 말이 나왔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는

구절이었다.

‘올커니’ 나는 무언가 다른 행동을 해야겠구나!.


 ‘영어’를 배워 보기로 하자! 25살에  ‘wash’도 몰라 동생에게 “너 바보 아니니?” 소릴듣고

종로역을 지나갈 때 어떤 미국인이 “파고다” 어쩌고 저쩌고 “ 하는 길 묻는 것에  대답을 못했던 것이 마음속 깊이 부끄러움으로 남아있었다.


영어를 못해도 너~~ 무 못했던 나는 영어에 원한이 맺혀있던 차였다. 까짓 거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냐?  

그날부로 ‘빨간’ 영어 초급자용 스토리 책을 사다가 한 페이지씩 읽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있어 ‘레벨‘2를 샀다.  레벨 1은 글씨 사이즈가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레벨 2는 무지하게 어려웠다. 한 페이지 읽는데

사전을 백번 이상 뒤져도 이해가 안 갔다.

I am 빼고는 다 찾아야 하는 영어 실력에  레벨 2는 말이 안 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일본어도 시험을 4급부터 쳐야 하지만 그냥 1급만 공부했다. 한방에 통과했다. 4급부터 하는 시간이 아깝고 4급은 필요 없다. 나는 1등이 좋다.


일 년여 년을 언니네 집에서 밉생으로 밥만 축내다가  갑자기 결심을 했다.  어학연수를 하자……..

돈이….



캐나다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낸 것도 있었고, ‘이판사판’이었다.

”언니야 나 내일 캐나다 가! “

“ 니 미친 거 아이라?”

“왜, 뭐 어때! “

…..

“걱정되니까 그렇지 이 미친것아 “…

말한  다음날 진짜 가버렸다.



나도 영어로 말하고 싶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돈 몇 푼을 들고 캐나다 어학원을 찾아간 것이다.


영어 반 편성 테스트 결과 ’ 중급, lntermedia인터미디어클래스라고 결과가 나왔다. (돌대가리도 진심으로 노력하면 되나 보다)


한 달 후 내가 공부하던 룸에 초급 반에서 올라온

머리숱이 엄청 많고 검은 머리를 한 ‘일본인 남자’가 수업에 들어왔고 내 옆 자리에 앉았다. 어려 보였다.


그가 지금의 내 남편이다.

이쯤 되면 그 점쟁이의 점괘는 어느 정도 맞는 것인가?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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