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로그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다는
하림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 언젠가의 남자친구가
노래방에서 불러줬던 노래였는데
공교롭게도 그와 헤어지고 나서야
하림의 목소리로, 제대로 그 노래를 들었다.
내가 닉네임을 ‘힘쓰기’로 정한 건
혹여나 내 지인들이 나를 모르길 바랐고
또 힘들 때 글을 쓸 거라서였다.
힘든 걸 힘든 걸로 잊으려고.
나는 마음이 힘들 때만 글을 쓰기로 했는데
첫 글을 쓴 지 얼마 안 된 이 시점에 또 왔다.
'엎친데 덮친 격'은 누가 만든 말일까?
무슨 일을 겪었길래 이런 말을 만들었을까.
뭐가 됐든 내 상황을 단 6글자로 (육두문자 제외)
이것보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예고 없던 이별이 불과 며칠 전인데 (01편 참고)
또 다른 이별을 앞두게 됐다.
꽤 오랜 시간 편찮으셨던 할머니가 위중하시다.
그런 와중에 이런 글이냐 쓰고 있냐 할 거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기다림의 시간이고
나는 이렇게 내 생각을 정리해야만 마음이 나아진다.
거두절미하고.
안 그래도 싱숭생숭한 와중에
마치 넌 그런 걸로 슬퍼할 자격이 없어
겨우 그 정도로 힘들어해?라고
폭풍우가 몰아치듯 또 한 번의 큰일이 닥쳤다.
할머니, 엄마의 엄마인 유일한 할머니.
친할머니가 있는 이들은 외할머니와 구분을 짓겠지만 난 할머니만 있었으니까 그냥 할머니다.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사람다운 대화를 했던 게
딱 3년 전 이맘때 추석.
혼자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댁에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면죄부로 좋아하시던
족발, 치킨, 전 등등을 사갔다.
90이 가까운 그녀가 혼자서 다 먹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만 내 마음이 편했다.
명절이 아니어도 내가 가면
한가득 상을 차려줬던 할머니.
그 기억들 때문인지,
나도 더 이상 할머니가 만들어주지 못하는
그 추석상을 뭐라도 푸짐하게 채우고 싶었다.
3년 전 추석.
사실 사람다운 대화라고 했지만,
상당히 원활하진 않았고
내가 당신의 하나뿐인 딸의 딸이라는 걸
100번 정도 설명해도,
또 누군지를 묻는 답답한 대화들이 오갔지만
그래도 말은 통했다.(안 통한 건가?)
치매.
그 시절 고등학교까지 나왔던 똑똑했던 할머니.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컴퓨터를 배워
우리 집에 올 때면 스파이더카드놀이를
즐겨하셨었는데.
늘 교회의 젊은 성도들을 제치고
성경암송대회에서 1등을 했었는데.
그런 그녀에게도 결국 그런 순간이 왔다.
외로움을 삼키면 부작용으로 치매가 오는 걸까.
사무치는 외로움을 잊으려고 기억을 잊는 걸까?
정말 짧은 사이에 90세의 노인은
고집쟁이 초등학생이 되었고
만 2세의 조카처럼 말도 못 하는 아기가 됐다.
내가 "할머니~" 하고 불러도,
엄마가 "엄마~"하고 불러도 허공만 보던 그녀는
만 2세 조카를 보고는 자기 또래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처음 본 증손녀가 반가웠던 건지
눈을 반짝였다.
총기 있는 눈빛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우리 할머니만 그런 게 아니라
어린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치매 환자들의 특징이라고.
아기들은 옹알이를 시작할 때
그때가 가장 예쁘다고들 하는데
세상 모든 것에 이제 관심을 가질 나이라 그런가.
대화도 안 되고 세상 아무것에도 관심 없는
가짜 아기는 낯설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7년 정도 됐을까. 할머니와 함께 떠났던 제주도 여행.
뭐가 그리 좋았던지, 관광지 구석구석을 다니던
그 차 안에서 할머니는 단 한 마디도 쉬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아이 같았다.
그 당시에도 80이 넘었으니,
높은 곳을 오르는 건 무리였는데 쉬라는 말을 만류하고
폭포를 보러 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졌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 폭포를 보고 눈이 반짝였다.
그 순간만큼은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 윤슬보다,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훨씬 빛났다.
그때의 그 모습은 이미 기억 저 뒤로 사라진 지 오래.
늘 뽀글 파마머리와 새치 염색으로 멋을 내던 할머니가
관리하기 힘들단 이유로 그냥 아무렇게나 깎인 민둥머리가 되었다.
폭포를 오르긴 힘들어해도
추석 때 찾아온 날 마중 나올 수는 있었던 그녀는
이제 휠체어나 병실 침대에 의존해야만 잠깐이나마
요양원 밖을 벗어날 수 있었다.
면회를 갈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찬찬히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새삼 할머니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처음 느꼈다.
외로움을 가득 삼킨 얼굴은 이렇구나.
세상을 더 이상 아름답게 보지 않는 눈은
그냥 끔뻑이는구나.
위중하단 소식에 병원을 찾았다. 고비는 넘겼단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절로 눈물이 나왔다.
아! 이래서 내가 여태껏
할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몰랐구나.
누군가의 멈춰있는 듯한 얼굴을 보는 건 힘든 거구나.
잠자는 건지, 힘겹게 숨만 붙어있는 건지 헷갈렸지만
새근새근 고요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평화로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할머니~"하고 부르니 내 말에 대답해 주는 건지
옹알이처럼 작은 소리가 나왔다.
누가 자신을 보러 온 것조차 알 수 없는
그 상태를 보고 있자니 힘들었다.
임종 소식이 들려도,
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기로 했다.
영화 속 누군가의 죽음도,
얼굴만 알던 연예인의 죽음도
나에게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는데
나를 위해 갈비찜을 해주고,
생선을 발라주고,
엄마 몰래 매니큐어를 사주고,
모시옷을 지어주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도저히 못 볼 거 같아서.
그 두툼했던 손을 꽉 잡고
함께 시장을 다녔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는 힘이 하나 없이 말라
주름만 가득한 손을 잡는 게 두려울 거 같아서.
이런 생각을 하니까
남자친구와의 이별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게 아니라,
이별은 이별로 잊는 거다.
근데 나는 남자친구와의 이별로는
죽도록 힘들어도 괜찮으니
할머니와의 이별로 잊고 싶지 않다.
할머니와의 이별은 정말이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