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빨간 카디건

#이별로그

by 힘쓰기

웜톤인 나는 원색의 옷이 왠지 어울리지 않아서

그동안 내 옷장에서 빨간색 옷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위아래 검은색 옷을 입고 간

어느 날 그는 검은색이 너무 잘 어울린다며,

자기는 검은색과 빨간색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사랑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빨간색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 안 입을 이유가 없었다.

너가 좋다고? 그럼 입지 뭐.

웜톤이고 뭐고 뭣이 중한디.


부랴부랴 쇼핑앱에서 빨간색으로 이뤄진

소재 불명의 옷들을 뒤졌다.

맘에 드는 카디건을 발견했고 직진배송을 통해

하루 만에 받았지만

그 아무도 모를 수고는 물거품이 됐다.

보여줄 일이 없어졌으니까.


그래도 새 옷이니 입어봤다.

거울을 보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나, 빨간색 옷이 잘 어울리는 거다!

어머. 이걸 왜 이제 알았지?

빨간 카디건을 입은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인스타 스토리에도 올렸다.

(스토리는 상대가 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상대도 내 사진을 봤지만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내가 보여주기 식으로 막,

내 사진을 올리던 와중 그의 스토리도 끊이질 않았다.

하. 내가 보면 그도 내가 보는 걸 알 텐데.

봐 말아? 봐 말아?


고심 끝에 확인을 했다.


어? 손에, 왼손 약지에 반지가 생겼네?

일부러 반지를 보여주려고 찍은 사진 같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조금 더 그의 활동들을 뒤졌다.

(나는 원래 꿈이 디스패치다.)

어? 나와 만나기 7일 전, 여자친구와 여행을 갔었네?


여자친구와 함께 사온 제주도 기념품을

나와의 첫 만남에 선물로 주다니!

대단하단 말밖에는 그를 표현할 말이 달리 없다.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했던

그는 여자친구가 있었던 거다.

육두문자 같은 험한 말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물밀려 오는데

그럴 때 나는 모든 샤따를 내리고

여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럴 틈이 없이 급하게 나갈 일이 생겼다.

대충, 무심코 손에 잡히는 옷을 가지고 나갔는데

그 빨간 카디건이었다.

가는 길 내내 운전을 하면서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 옷을 입은 내가 부끄러웠다.

얼굴 한쪽이 확 달아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빨간 카디건보다 더 빨갰을 거다.

상대방 차가 내 얼굴을 봤다면 빨간 불인 줄 알고 멈췄을 거다.


찾았다 내 사랑 어쩌고 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나 이제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그저 그에게 잘 보이려 샀던

이 빨간 카디건을 계속 입어도 될까?

물론 빨간 카디건은 죄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빨간색이 싫다.

사과도 청사과만 먹을 거고

김치도 물김치만 먹을 거고!

몰라 암튼... 나는 빨간색을 싫어할 거다.



작가의 이전글02. 이별은 이별로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