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다급바리 인간

#자아성찰

by 힘쓰기

제목부터 ? 하겠지만 오타가 아니라

진짜 다급바리라고 쓴 게 맞다.


나는 사실 토종 한국인으로서 성격이 매우 급하다.

(일반화는 아니지만 일반화에 동참한 건 맞다.)


게다가 충동의 끝판왕인데 몇 가지 예를 들면

- 갑자기 단발로 자르고 맘에 안 들어서

당일 되는 곳 찾아 붙임머리함

- 뭐든 오늘 하고 싶으면 당장 해야 해서

예약 자체를 싫어함 (네일아트샵, 미용실 정착 못 함)

- 여행도 갈 수 있으면 바로 감

숙소, 어디 갈지 가면서 알아봄

- 하나에 꽂히면 바로 사야 함 등등...!


나이 먹고 현실과 타협한 것들도 있지만

대체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니까 내가 다급바리라고 쓴 건,

다급함이 바리바리라서!

(바리바리는 짐 따위를 잔뜩 꾸려놓은 모양이란 뜻인데

나는 다급한 성격이 한가득이다.)

다급함만이 아니라, 사실 충동구매로 짐도 바리바리,

충동적인 행동으로 후회도 바리바리...

전생에 바리공주였나...!


어쨌든 내가 이렇게 자아성찰을 하게 된 건

요즘은 그 다급한 성격이 싫어서다.

과정보다는 결론,

서론보다는 본론만 듣고 싶고

드라마도 영화도 책도 결말부터 알고 싶다.

(아이러니하게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이 성격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얼마 전 야장 감성의 포차에 갔다.

전 남자친구를 만났다.

아니 만난 건 아니고 전 남자친구가 나를 봤다.

(전에 썼던 글들에 나온 전 남자친구 아님)


약 3년 만에 죽어있던 채팅방에 뻐꾸기가 날아왔다.

“너 혹시 거기야? “


나는 대체로 전 남자친구들의 채팅방은

알람을 꺼놓는데 그에게도 예외는 없었고,

연락을 늦게 봤다.


나는 그곳이 맞았고,

그 카톡을 봤을 땐 아니었다.


2시간 정도가 지났기에

그 연락에 답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답을 했다.


“너 거기였어?”


이미 너무 늦은 새벽이어서인지

뻐꾸기는 해가 뜨고도 몇 시간이 지난 후 왔다.


3년 만에 온 연락은 생각보다 할 말이 없었고

나중에 한 번 보자는 말로 일단락하려 했으나

상대의 수락으로, 곧장 약속을 잡았다.


바로 다음 주!

사실 전 남자친구와의 재회(?)는

정말 해보고 싶었던 건데

우연히 마주친 적도, 다시 연락이 온 적도 없었으니

어쩌면 로망 같은 거였다.

(다시 사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 얼굴 보는 것)


드디어 로망을 이룰 수 있다니!

갑자기 또 마음이 다급해졌다.


일단 만나기 전에 팩트를 체크해야 할 거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부분과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

그 당시 약 5개월 간의 대화를 다시 읽었다.


처음엔 풋풋했다.

이런 적도 있었구나, 우리 꽤 좋았었구나!


그렇게 남의 연애 지켜보듯 읽다 보니 알게 됐다.

아! 이래서 헤어졌었지.


갑자기 기대감이 확 떨어졌다.

기대가 없으니 좀 지루해졌다.

그날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빨리 만나서 빨리 추억회상하고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약속 시간을 잡던 중 못 참고 물어봤다.

“오늘은 뭐 해?”


아~ 오늘 만나게 되면 어쩌지? 그래도 전 남자친구인데 기왕이면 예뻐 보여야지.

어떤 옷을 입을지, 화장은, 머리는!

머릿속 생각바퀴를 빠르게 굴리고 있었는데

굴리고 굴리다 쳇바퀴가 닳아 절로 느려질 때쯤에도

답이 없는 거다.


아! 답답해! 그래 얘는 이런 애였다.

오늘 뭐 해?라는 말에도 아주 느긋하게 답장하는 아이.

왜?라고 묻지 않는 아이.

마무리하는 멘트에도 그날 연락할게 하는 아이.

사귈 때도 헤어질 때도 감정이 잘 안 보였던 아이.


나와는 다른 부분들이 분명 좋았을 텐데

또 그게 극명하게 싫었을 테고

그래서 헤어진 건데 상대도 그랬겠구나.

3년 만의 짧은 연락에서도 그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정해진 날짜를 두고

또 충동적으로 만남을 잡으려고 하는 나.

왜?라고 묻지 않으니

“오늘 볼까 해서” 란 말을 하지 않은 나.

나름의 자존심으로 연락한단 말에 하트만 누른 나.

사귀면서 헤어질 때까지 감정이 너무 잘 보였던 나.


사실 5개월 간의 카톡에서는 더 잘 보였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 누가 그랬다.

나는 3년 동안 변한 게 하나 없다.

여전히 뭐든 다급하다.

상대도 또 한 번, 그걸 느꼈을 거 같아서 부끄러웠다.

작가의 이전글04.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