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Whuthering Heights)

영화 속에서 표현 되지 않은 폭풍의 언덕의 진짜 이야기

by Katie

폭풍의 언덕 (Whuthering Height)

폭풍의 언덕 (Whuthering Heights)

영화 속에서 표현 되지 않은 폭풍의 언덕의 진짜 이야기


미국인 친구가 영화 《폭풍의 언덕》을 봤다며, 자신이 다시 볼 테니 함께 보자고 권유했다. 나도 에밀리 브론테의 팬이어서 이 소설의 영화화 작품을 보고 싶었다. 물론 소설을 영화한 작품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영상화라면 일단 무조건 본다.


영화는 내 관점에서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고 로비라는 배우도 캐서린과 어울리지 않았고, 스토리도, 배우 선정도, 의상도 모두 그랬다. 그나마 촬영과 음악만 볼 만했다. 영화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하지만 덕분에 서점에 가서 《폭풍의 언덕》을 다시 사서 읽기 시작했다. 친구 말로는 미국에서도 어느정도 흥행은 했지만 비슷한 비판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미국인들도 영화를 본사람들 중에 다시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고한다. 그날 나랑 친구도 결국 영화를 보고 서점에서 가서 나는 한글판, 친구는 영어 원서로 책을 구입하게 됐다.


캐서린이라는 인물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을 때는 소설에 대한 강렬한 인상만 남았고, 그 뒤로는 영상화된 버전들로만 봐서 원작의 기억이 흐릿했다. 그러나 소설을 다시 읽으니 어릴 때 받았던 인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캐서린은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사회가 추구하는 순종적이고 교양 있는 여성이 아니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어리석기까지 한 여자다. 솔직히 읽으면서도 '이런 여자가 주인공이라니' 생각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가 떠올랐다.


캐서린은 어린 시절 호기심 왕성하고 활달한 소녀였지만, 스스로 선택할 권한도 독립할 능력도 없었다. 한때 잘나가는 집안 사람으로 가난하고 미천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첫사랑이자 가난한 처지의 히스클리프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용기도 없었다. 옆 농장의 지주인 에드거 린튼이라는 잘생긴 부자 소년의 애정을 무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서린은 에드거 린튼의 정숙한 부인으로서 안주할 수도 없었다. 결혼 생활 내내 그녀의 가슴 한켠에는 히스클리프가 새겨져 있었고 에드거 린트도 그걸 눈치채고 있었다.


히스클리프와의 관계: 사랑인가 독인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기질이 서로 닮아 있다. 거칠고 야성적이며, 거의 '악마'와 같다고 표현되는 성질이다. 실제로 소설 속에 두 사람은 주변에도 꽤 '못된' 캐릭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린 시절부터 순수한 연민과 친밀한 애정으로 묶여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의 조커와 할리퀸과 같다. 이런 캐릭터는 헐리웃 영화에 종종 나오는데 이런게 서양인들의 '열정적 사랑'의 환타지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영화속에 나오는 이자벨라의 '변태'적인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나온 듯 하다. 정말 히스클리프가 이자벨라를 개처럼 묶어 놓은 장면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감독과 각본을 쓴 사람을 폭풍의 언덕의 두꺼운 책으로 던지면서 '다시 제대로 읽어봐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소설속에서는 히스클리프는 나중에 캐서린의 오빠인 힌들리 언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더욱 거칠어진다. 그는 '나쁜 남자'의 전형으로 소비되지만, 사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여자를 물리는 바람둥이 나쁜 남자'는 아니다. 그는 캐서린에 대한 엄청난 집착으로 그녀 주변을 맴돈다. 결국 캐서린의 남편 에드거 린튼의 여동생 이자벨라와 결혼해 캐서린의 질투를 유발하려 했던 것이지 나중에 이자벨라에게 눈꼽만큼도 애정을 가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 사이에 난 아들에 대해서도 그는 별 애정이 없어보인다. 그는 평생을 어떻게든 캐서린만 원하는 일명 '집착남'이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에게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게 '낭만적인 사랑'이라고 치켜세워질 만한 일인가 생각이 들었다.


자기기만의 결말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사라진 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삶을 산다. 깊은 열정은 사라졌지만, 적어도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히스클리프가 돌아온다. 그 순간 캐서린의 일상은 무너진다. 어릴 때 품었던 연정의 대상과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를 좋아하는 이자벨라에게 심통을 부린다. 히스클리프가 자신을 사랑하고, 이자벨라는 헛꿈을 꾼다고 빈정거린다.


하지만 캐서린은 결국 자신이 히스클리프도 포기할 수 없고, 에드거 린튼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그 모순 속에서 괴로워하다 점점 병들어간다. 사람들은 이것을 사랑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자기기만으로 본다.


캐서린은 성장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처럼 두 소년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자신이 받는 관심과 애정을 즐기려고 했다. 그러나 성장한 두 남자는 캐서린에 대해 강력한 소유욕을 드러낸다. 그녀는 두 남자 사이에서 누굴을 선택할지 갈등조차 하지 않았다. 캐서린은 이 팽팽한 갈등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저 어린시절의 히스클리프와의 추억만 붙잡은 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약해져갔다. 그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애착과 지독한 질투, 원망과 후회—이런 괴로운 감정들이 그녀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어 버린 것이다.


원작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한 것


영화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를 성애적인 사랑으로 그린다.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관계는 절제되지 못한 동물적 욕망처럼 폭발한다. (참으로 헐리우드식이다.) 하지만 원작은 전혀 그렇지 않다.


원작의 캐서린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는 소녀다. 스스로 선택할 권한도, 독립할 능력도 없으면서 가난한 첫사랑과 부유한 신랑 사이를 방황한다. 그것은 성애적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숭고한 사랑도 아니다. 오히려 물질적 욕망에 발목 잡혀 정신적 성장과 내적 성숙의 기회를 끝내 외면한 인물에 가깝다.


히스클리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지 못한 채, 재산을 빼앗고 주변 사람들을 학대하면서 그것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구원되지 않는다. 결국 그 역시 육체와 정신이 함께 무너진 끝에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원작이 보여 주는 것은 이상적 사랑이 아니다. 결핍, 계급의식, 물질적 욕망, 육체적 소유욕이 뒤엉킨 끝에 벌어지는 인간들의 파멸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이 두 인물을 낭만적으로 포장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만 바꾸려 드는 걸까?


진정한 이야기의 시작: 캐서린의 죽음


캐서린의 죽음은 폭풍의 언덕(Whuthering Heights)의 진정한 서막이다. 진짜 무서운 이야기는 캐서린의 딸이자 이름까지 같은 '캐시'가 등장하는 이후에 펼쳐진다. 히스클리프와 캐시, 히스클리프의 아들, 그리고 힌들리 언쇼의 아들까지 이어지는 복잡하고 긴 이야기. 그것을 끝까지 읽었을 때, 비로소 이 소설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캐서린이 죽고 난 뒤, 히스클리프는 더욱 포악해지고 더욱 망가져간다. 그가 캐서린을 떠나 있는 동안 어떤 방식으로 부자가 되었는지는 소설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워더링 하이츠와 이자벨라의 재산, 에드거 린튼의 재산까지 집요하게 차지해 가는 과정을 보면, 그 부가 결코 떳떳한 방식으로 얻어진 것이 아님은 충분히 짐작된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을 사랑한 것 외에는, 열등감과 복수심으로 뭉쳐진 괴물 같은 인물이다. 어릴 때와 달리, 어른이 된 나는 이제 히스클리프를 비극적 연인으로 보기보다, 사랑을 핑계 삼아 타인과 자기 자신을 끝까지 파괴한 인물로 읽게 된다.


지금 나는 캐서린이 죽고 캐시가 등장하는 부분을 읽고 있다. 이제 영화의 환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소설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다시 읽어보니 어릴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들이 하나씩 보이는 것이 이 소설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다시 읽고 나면, 영어 버전으로 읽어봐야할 것 같다. 이제부터 캐서린과 에드거, 히스클리프와 이자벨라, 그리고 힌들리 언쇼의 자식들의 이야기를 다 읽고나면 또 폭풍의 언덕에 대한 감상평을 쓰게 될것 같다.


(영화 이미지가 마음에 안들어서 GEMINI에게 부탁..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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