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요.

영화 벌새 리뷰

by 이정



ㅡ영화 <벌새>

영화 벌새가 처음 나왔을 때 수많은 트위터리안이 열광했던 대사는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였다. 나야 뭐 보기 전에는 또 오타쿠들이 레즈라고 좋아하는구나 (나쁜 뜻 아님) 하면서 심드렁 했고, 실제로 영화를 처음 보고 나왔을 때는 '저게 왜 명대사야??' 이러고 걍 띠용한 상태로 나섰다.


그러고 6개월 후 새벽 2시에 문득 벌새를 곱씹어 보는데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하는 대사가 팍 하고 꽂히는거 아닌가. 사실 그 대사가 명대사로 꼽히는 이유는 보는 관객의 지난 경험을 떠오르게 하는 감정의 대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깐 내가 지났던 '지난 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대사를 곱씹었을 때 여운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거.


벌새는 그러니깐 '은희'에 대한 영화이다. 은희가 겪는 모든 감정들과 은희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해 말하는 영화. 그 과정에 은희 주변에 있는 모든 인물과, 은희를 둘러싼 모든 사건과 환경들이 은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속에서 은희는 경험을 하고, 아프고, 사랑하고, 느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14살을 겪었기에, 저 모든 걸 지금 겪고있는 14살 소녀 은희에게 내내 감정적 동요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벌새는 은희에 대한 영화이지만, 또 우리 모두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아무리 부정해도 사랑은 인간의 원동력임이 분명하다. 모든 욕망과 질투와 아픔은 대게 사랑에서 온다. 우리는 평생을 사랑하고 또한 사랑하지 않는 순간을 사랑하며 평생을 산다. 사랑하기 때문에 살면서도, 또 사랑 때문에 죽고 싶기도 하다. 은희도 그맘때쯤 사랑을 겪으면서 아프고 욕망하고 또 성장한다.


난 너가 좋다고, 그래서 잘해보려고 했는데...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내가 제일 즐겨 듣는 노래 중에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노래가 있다. 사랑은 다른 것도 아니라 '타이밍'이라는 얘기가, 다른 무엇보다 타이밍이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 같이 들린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둘이 하는 거라 곱절로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후배가 은희한테 저 말을 하기 전에, 후배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가늠해 본다. 은희를 좋아했던 그 시간을. 좋다는 건 의외로 고통을 상당히 동반한다는 것을. 분명 열병 같이 사랑했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건 이미 지나버린 학기인 것을. 그 학기 동안 너를 사랑했던 그 시간을 너는 모를테지만. 지난 학기에 했던 사랑을 이번 학기에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벌새를 관통하는 감성은 하나다. 은희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겨냈다는 것보다는, 은희가 무엇을 하든 세상은 그저 흘러간다는게 주요 메세지이다. 내가 어쨌든 세상은 흘러간다. 어찌보면 지금 너무 아프고 힘들어도 세상은 끝없이 흘러가기만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열병처럼 사랑했던 첫사랑도 언제가는 지나간다. 아파해도, 정말 죽을 것같이 사랑해도. 그러니깐 아파해도, 힘들어도 된다. 그래도 이것만은 잊지 말자. 세상이 흘러가고, 강물이 흘러가듯이 이것 또한 언젠간 흘러가리라고.


그래도 하나 분명한 것은 학기가 하나 끝났다는 것은, 학기가 끝난만큼 성장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학기를 지나야 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우리는 사랑이 본능이니 사랑할 수 밖에 그 수많은 지난 학기들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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