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는 다중안격자다

다중안(顔)격

by Lusaka

내 여자친구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이 비밀은 너무나 비밀스러워서,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 알고 있는 진귀한 비밀이다. 그녀조차도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비밀이다. 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비밀이다.


비밀은 바로... 그녀가 다중안격자라는 사실이다.


사람에게는 모두 제각기 비슷한 상(相)이 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상에는 고양이상과 강아지상 정도가 있겠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최소 다섯 개 이상의 상이 있다. 그 조그맣고 귀여운 두상 안에 어찌 그리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는 마치 영화 <뷰티 인사이드>다. 나는 그녀에게서 매일 매일 새로운 다중안(顔)격을 본다.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


1. 사자상

사자상 이야기를 제일 처음에 해야할 것 같다. 그녀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기도 한데, 사실 사자는 내가 그녀에게서 보았던 첫 번째 상이다. 그녀와 회사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시절에서부터 나는 그녀에게서 사자를 보았다. 귀여운 아기 심바에게 어른 사자의 갈귀가 당당하게 달려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입을 오므리고 '믕?' 하는 그녀의 기본값 표정에, 귀엽고 풍성한 머리칼이 더해져 완벽한 아기사자상이 완성된다. 그녀는 풍성한 머리숱이 정말 잘 어울린다. 아니, 독보적이다. 콩깍지에 씌인 게 아니라 명백한 팩트다. 그게 그녀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인데, 그녀는 아직 그걸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몰랐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나만 볼 것이다.


2. 토끼상

그녀는 음식물을 섭취할 때마다 토끼로 변신한다. 작은 입으로 음식들을 오물오물 씹는 모습이 흡사 토끼가 풀을 뜯어 오물오물 씹는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순수하게 입만 움직이는 모습은 정말 볼 때마다 깨물고 싶을 정도다! 내가 그 모습에 감탄한 채 넋을 잃고 있을 때면, 그녀는 나를 보며 또 다시 '믕?'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매번 그 모습에 사르르 녹는다.


3. 다람쥐상

그녀의 앞모습도 신비롭지만, 옆모습은 더욱 신비롭다. 그녀는 가끔씩 나를 째려본다. 그녀와 내가 나란히 서 있을 때면, 그녀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번. 그렇게 내가 고개를 돌리면 그녀는 그 타이밍에 맞춰서 옆으로 째려보기를 시전한다. 아몬드같은 두 눈이 옆으로 돌아가 내 눈동자에 강렬히 맺힌다. 그 모습은 마치 도토리를 강렬히 요구하는 다람쥐가 떠오른다. 입 안에 견과류를 가득 문 채 옆을 바라보는 귀여운 다람쥐. 전체적으로 귀엽고 올망똘망한 그녀의 체형까지 더해지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짱귀 다람쥐 완성.


4. 청설모상

그녀가 웃을 때는 청설모가 떠오른다! 가벼운 미소가 아니고 터져서 웃을 때! 작고 귀여운 입이 벌어지면서 드러나는 귀여움 끝판왕 잇몸쓰! 사실 내가 좋아하는 동물 1순위와 2순위가 바로 다람쥐와 청설모다. 그리고 그녀는 내 1순위와 2순위를 다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다. 솔직히 이 지점에서 그녀가 한 번 열을 받을 것 같기는 하다. 벌써 네 개의 동물 상을 닮았다고 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녀가 내게 그러지 않았던가. "좋아하니까 놀리는 거지, 안 좋아하면 말도 안 꺼낸다"고.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혼날 것을 각오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특히 그녀가 잠옷을 입은 채 웃는다면,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귀여운 청설모다. 잠옷을 입은 채 헐레벌떡 뛰어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5. 사슴상

사자와 토끼와 다람쥐와 청설모가 공존하는 그녀의 얼굴을 가능케 하는 건 별처럼 빛나는 눈망울이다. 한없는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는 빛나는 눈망울이 그녀의 최대 무기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가녀린 목선을 드러내는 순간, 그녀는 돌연 사슴이 된다. 살면서 내가 본 사슴 중 최고도 1순위와 2순위가 있는데, 2순위는 제주도 한라산 봉우리에서 보았던 신비로운 사슴이었고, 1순위가 바로 내 여자친구의 사슴 상이다. 그녀는 정말 자기객관화가 안 되어 있다. 이거 다 사실인데...


사진을 일일이 첨부해서 확인시키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하튼 내가 이번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그녀는 볼 떄마다 새롭다는 점이다. 사람이 사람을 계속 만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그녀는 만날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귀여움이 후광처럼 따라다니는 다중안격자라니!


그래서 요즘 내 손버릇이 점점 더 나빠지나 보다. 항상 엉덩이를 팡팡 때려주고 싶어지니 말이다. 이건 복수가 아니라 사랑의 팡팡이다. 얼마 전 여자친구의 강아지를 만났는데, 강아지가 엉덩이를 팡팡 때려주는 걸 좋아한다고 그녀가 그러더라. 그래서 나도 한 번 팡팡 해봤는데, 착착 감기는 질감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그녀는 최소 다섯 개의 귀염상을 가지고 있으니 오죽할까. 내 손이 안 움직이고는 못 베기지. 앞으로는 내가 팡팡 때리고 싶은 만큼, 그녀에게도 더 많이 맞아줘야겠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내게서 어떤 알 수 없는 귀염상을 보는 모양이다. 우리 둘 다 때리는 걸 좋아하니 말이다. 이 글은 쓰는 데 영업시간 기준 무려 삼일이 걸렸다. 글을 쓰는 동안 귀여운 그녀 사진을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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