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만큼 일하는 게 뭘까.

공정성 이론

by 태리

오후 5시 30분. 사무실의 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한다.

8시 30분에 출근해 5시 30분에 퇴근하는 모습은 이제 당연한 일상이다.

그러다 문득 친구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난 캍퇴해, 받은 만큼 일하는 거지, 일도 손해 보기 싫어"


나는 정말 받은 만큼 일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받은 만큼'의 진짜 기준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였다.


왜 남들이 노는 걸 보면 힘이 빠질까?


회사를 다니다 보면 다양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틈만 나면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사람, 휴게실에 숨어있는 사람, 화면 구석에 몰래 게임을 띄워놓는 사람들. 그런 '근무 태만'의 현장 목격담은 블라인드 같은 곳에 종종 올라온다. "나는 이렇게 애쓰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나와 같은 월급을 받는구나."

다들 그런 마음들이 들 것이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다. 심리학자 아담스는 이를'공정성 이론(Equity Theory)'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투입) 대비 보상(결과)을 타인의 것과 비교하며 공정성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내가 쏟은 공에 비해 남들의 보상이 더 커 보일 때, 우리는 심리적 불균형을 느낀다. 이때 가장 선택하기 쉬운 기제가 바로 나의 '투입'을 줄이는 것이다. "남들 노는 만큼만 나도 적당히 하겠다"는 생각은 사실 깨진 공정성을 회복하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 부장을 보고 느낀 차가운 교훈이 있다.

우리는 왜 과거보다 더 철저하게 회사와 '선'을 긋게 되었을까? 그 답은 내가 최근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 '김 부장'의 뒷모습에 있을지도 모른다. 30년 넘게 조직에 헌신하였다. 가족보다 회사가 우선이었다.

그는 회사가 제공하는 울타리 안에서 영원할 것 같은 혜택을 누렸지만, 조직을 떠나는 순간 그 모든 화려한 수식어는 한순간에 증발했다.


과거 선배 세대가 가졌던 조직과의 약속이 '무한 충성과 안정'이라는 관계적 계약(Relational Contract)이었다면, 그들의 쓸쓸한 퇴장을 지켜본 지금의 세대는 거래적 계약(Transactional Contract)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준 시간만큼만 돈을 받고, 그 이상은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회사는 정으로 이어지는 공동체가 아니라 철저히 이익으로 움직이는 구조임을 깨달았기에, '정' 대신 '거래'를 택하였다.


회사는 이런 변화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주 52시간 제도가 정착되면서 실근로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자리를 비우면 사유를 적고, 업무 하지 않은 시간을 차감하는 시스템은 우리를 더욱 '거래적'으로 만든다.

감시와 통제는 자유를 빼앗는다. 자유롭지 못하기에 창의적으로 뭔가 더하기가 어려워진다.

관리와 통제의 행정적 절차가 많아지고, 감시하는 행태는 노동의 가지고 있는 시간 이상의 가치를 보이지 못하도록 한다. 결국 할 일만 하게 된다.


이런 냉정한 거래의 관계 속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받은 만큼 일한다'는 것을 '그 일만 하며 시간을 때우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그 손해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받은 만큼 일한다'는 말은 결코 '적당히 하겠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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