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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Jan 25. 2020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나는 왜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00이가 힘들대. 업무 분장을 다시 해야겠다."


어느 아침 직원들을 소환한 팀장님이 말했다. 동료직원 00이 업무량이 많아서 힘들다고 면담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팀장님은 한 사람에게 업무가 과중하게 몰린 것 같다며 다른 직원들을 불러 새로 업무 조정을 하겠노라 했다.


하지만 나는 갑작스러운 업무 분장이 당황스러웠고, 더 솔직히 말해 짜증이 났다.


첫째, 00이 하던 업무는 전에 내가 혼자 도맡아 하던 일이었다. 그때는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업무량이 갑자기 늘어났다는 것인가?


캐피탈 업무의 특성상 제휴사(대출중개 모집 법인)와 업무를 하는 일이 많았다. 대출 중개사들을 통해 대출 신청을 하는 고객의 서류를 징구하고 신용조회를 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와 카톡이 몰려왔고, 그들의 신청을 신속히 받아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제휴사를 맡느냐에 따라 업무량은 복불복이기도 했다. 나는 많을 때는 7곳의 제휴점을 도맡아 업무를 해왔고, 00이도 이전의 나처럼 일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도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묵묵히 일을 했었다. 그저 더 시간을 쪼개어 업무를 하겠노라 생각했었지 누군가가 나의 짐을 덜어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등 돌리고 싶은 동료의 불만 제기, 저도 힘들었는데요...


둘째, 한 직원이 업무량이 많다고 호소했다는 이유가 업무 재조정의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럴지라도 각자의 업무량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요청으로 쉽게 바뀐다면 다른 직원들 입장에서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걸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각 직원들의 업무량을 팀장이 세세하게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팀장이 이렇게 말했다면 다른 직원들은 업무 조정을 쉽게 수긍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각자가 맡고 있는 업무와 소요시간, 업무량을 기재해서 제출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재분배하자."




팀장님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인간미도 있고, 직원들의 고충을 허투루 듣지 않는 분이셨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업무 분장은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도 문제가 있었다. 나의 고충을 상사에게 토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습관처럼 내뱉는 불평 불만이 아니라 합리적 수준의 업무 재조정이라면 한 번쯤 얘기해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성정이란 쉽게 바뀌는 게 아니어서 여전히 업무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토로해본 적이 거의 없다. 또 주니어 레벨에서는 업무가 과중하다고 말하거나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왠지 나의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말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제는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이전처럼 묵묵히 듣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힘든 일을 털어놓는 것도,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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