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콩 Jan 27. 2020

친구가 더치페이하자고 말했다

돈으로 의 상하지 않는 법

"우리 오래 볼 사이니까 더치페이하자."

 

오랜만에 본 친구가 내게 말했다.




친구 A 나의  만남은 수년 전  증권사 면접 스터디였다. 결국은    회사를 다니지 않았지만, 부산에서 상경했다는 공통분모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각자 다른 직장에서 신입사원으로 일을 하며 만남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몇 번의 연인이 바뀌는 동안 친구는 연인이었던 지금의 남편과 가정을 꾸렸다.


2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은 그녀의 결혼식이었다. 그 후 경기도 인근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어린아이를 키우는 그녀를 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 놀러 가겠다는 약속이 무색하게 서로의 스케줄이 맞지 않거나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의 만남은 아쉽게도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안부를 묻고 지내왔다.  나는 염치없게도 한동안 얼굴도 보지 못한 친구에게 통장을 개설해달라는 부탁도 했었다. (실적 압박이 없는 금융회사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일인당 할당량이 주어져서 지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문득 그리움이 올라와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마침 서울에서 지인의 결혼식이 있다는 친구의 답변에 2년 만에 우리는 마주할 수 있었다.


그간 나누지 못한 서로의 소식을 업데이트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금세 지났다. 마침 잠실에서 열린 한 잡지사 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식사 자리로 이어졌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이야깃거리는 직장 외에 결혼과 살림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본 반가움에 내가 식사를 계산하겠노라 말했더니 친구는 두어 번 거절했고, 다음부터는 꼭 더치페이하자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내 마음 어딘가를 두드렸다.


"우리 오래 볼 사이니까 더치페이하자. 좋은 마음으로 사려는 건 알겠는데, 누군가가 더 돈을 내거나 번갈아내게 되면 나중에 마음 상할 일이 생기기도 하더라. 난 너 오래 보고 싶으니 다음부터는 꼭 더치페이하자!"


생긋 웃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 예뻤고, 그녀의 배려심이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먼저 내리는 친구와 손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다른 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직 축하 겸 송별회 자리에서 모두들 배가 부른데도 구태여 추가 주문을 시키던 지인이 생각이 났다. 그 날 계산을 내가 하겠다고 한 탓이었다. 늘 돈 얘기를 할 때면 절약을 외치는 지인이 다 먹지 못할 음식을 시키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내 마음 같지는 않더라.


 그러고 보면 반가운 얼굴들을 본 후 돈 계산 문제로 우애가 상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내가 계산할 때는 비싼 것, 지인이 계산할 때는 싼 것을 사고 생색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추가 주문을 했던 지인은 이후에 내게 밥을 샀었다. 쌀국수 한 그릇 얻어먹었을 뿐인데 내가 엄청 비싼 음식을 얻어먹은 것처럼 예전 동료에서 과장해서 말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 이후로 그녀와의 만남은 소원해졌다.)


누군가 말했던가. 더치페이는 정이 없는 것 같다고. 칼같이 1원 단위까지 받는 건 조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제 즐겁게 더치페이할 것 같다. 가끔 좋은 일이 있을 땐 내가 사는 것을 주저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영수증 앞에서 호구가 되는 기분을 느낀다면 그 만남은 오래 이어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