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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드리 Jun 04. 2023

워터방구도 있고 바다도 있고

수영장이 바다면 어때? 재미있으면 됐지

햇살반 친구들이 제일 기다리고 기다리는 수영장 가는 날이다.  워터파크는 처음이라 아이들은 신났지만 나는 많은 걱정에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왔다.  수영장 가도 힘든데 넓은 워터파크라니 다치지 않고 놀다 와야 할 텐데..


성준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토끼처럼 깡충깡충 점프하며 걸어서 1등으로 왔다.


"슨생님 우리 성준이 수영장 처음 가봐요. 수영장이라도 말해도 바다 간다고 해요. 바다 가요? 지 엄마 아빠가 바빠서 바다도 수영장도 못 가봤어요.  근데 수영장 가서 물에 빠지면 어쩌나 길 잃어버리면 어쩌나 걱정돼요

제가 따라가지 않아도 돼요. 어떻게 12명을 슨생님이 다 봐요. 내가 슨생님이 고마우면서도 불쌍해 죽겠어요"


"할머니 괜찮아요. 성준이 손 꼭 잡고 물놀이 많이 시켜줄게요. 전에도 성준이랑 동물원 잘 다녀왔잖아요.  할머니가 저 걱정해 줘서 정말로 감사해요. 저 생각해 주는 건 할머니밖에 없어요. 예쁜 사진 많이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주름진 할머니 손에서 찌릿한 원더우먼의 초능력을 전달받은 것 같이 힘이 났다.


햇살반 친구들은 교실에서 흥분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오늘 가는 데가 워터방구야. 키키"


"워터방구래. 히히 바다처럼 넓고 파도도 친데"


"그럼 바다네? 워터방구도 있고 바다도 있고 키키"


'워터방구도 좋고 바다도 좋다. 뭐라고 불러도 우리 오늘 재밌게 물놀이해 보자'라고 마음속에 다짐했다. 


햇살반 친구 중에는 수영장을 가보지 못한 아이들도 꽤 있었다. 아빠 엄마가 하루를 쉬어서 함께 놀아줄 시간보다 엄마 아빠도 쉬어야 다음날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워터파크에 도착하자 햇살반 친구들이 크게 소리쳤다.


"바다다. 바다 맞네. 어떻게 파도가 저렇게 커. 저건 수영장이 아니야"


아이들의 소리가 너무 컸는지 여러 곳에서 온 어린이집 아이들과 유치원 아이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에 내가 더 크게 소리 질렀다.


"햇살반 친구들 바다도 있고 워터방구도 있네요. 우리 바다에서 수영해 볼까요. 오늘 선생님이 엄청 재밌게 놀아줄게요. 선생님한테 물 많이 뿌려줘요. 친구들이랑 수영장 오려고 선생님 수영복도 샀어요. 한 가지 약속은 선생님 잘 따라다녀야 돼요. 여기 너무 많이 사람이 있어서 잃어버릴 수 있어요. 호루라기 불면 선생님 보고 이야기 들어주세요"


"네 선생님"


우리는 준비체조를 하고 구명조끼를 입어보았다. 선생님이 구명조끼를 입혀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수영장 스텝이 정해준 수영장으로 향했다. 물에 들어가 첨벙첨벙 발로 차보기도 하고 누워서 둥둥 떠 있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물장구를 치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열심히 물장구를 아이들에게 쳐주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열심히 사진 찍어주었다. 너무 열심히 사진을 찍다 뒤로 넘어져 수영장 계단에 허리를 세게 부딪혀 멍이 들었다. 너무 아팠지만 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햇살반을 위해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듯 함께 파도풀 수영장으로 가보았다.


"우리 이제 바다에 파도 보러 갈 시간이에요. 선생님 따라와요"


파도풀에 들어가 파도를 느껴보더니 우는 친구가 있고 너무도 신나 하는 친구도 있었다. 파도가 약한 쪽에서 놀이하며 우는 친구는 안아주고 신나 하는 친구는 열심히 파도풀에서 수영을 해보았다. 


"선생님. 진짜 재밌어요. 바닷물은 짠데 왜 물이 안 짜요?"


"선생님이 너희들이 바다 와서 놀다 물이 너무 짜면 잘 못 놀 거 같아서 마법의 가루를 넣었지. 그래서 안 짠 거예요"


"에이~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그러니까 안 짜지요"


"선생님 말이 맞아. 마법 가루 있어. 선생님이 마법 가루 쓰면 우리가 재밌어지잖아"


성준이가 내 편을 들어주자 친구들이 끄덕이며 믿어주었다. 착한 햇살반 친구들과 돌아오기 전까지 온 힘으로 놀다 보니 목도 아프고 아까 다친 허리가 욱신 욱신 쑤시기 시작했다. 12명의 아이들 중 여자 친구들은 내가 샤워시켜 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주고 남자 스텝이 남자 친구들을 도와주었다. 나는 수건으로 대충 물기만 닦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햇살반 친구들과 돌아오는 차에 탔다. 모두들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친구들의 의자를 모두 뒤로 젖혀주었다.  어린이집 앞에는 벌써 학부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준이는 할머니를 보자 신기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할머니 나 바다 봤어. 수영장도 있고 바다도 있었어요. 파도도 치고 너무 재밌었어. 선생님이 마법 가루를 넣어서 물은 안 짜서 참 재밌었어. 우리 선생님 최고지. 신나게 놀아주셨어"


"성준이가 좋아하니까 할머니도 좋다. 슨생님 힘드셨나 보다. 윗도리 거꾸로 입으셨네. 애들 보느라고 정신없었지요. 고생 많았어요. 우리 슨생님 얼굴이 짠하네"


"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성준이가 오늘 정말 행복했나 봐요. 그럼 저는 좋아요. 정신이 없어서 정말 윗옷 거꾸로 입었네요. 하하. 조심히 가세요. 사진 보내드릴게요"


아이들을 보내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온몸이 더 아프게 시작했다. 내 가방에 있던 파스를 온몸에 붙이고 학부모님들이 기다리고 있을 사진을 고르기 시작했다.  현장학습 때는 아이들과 재밌게 안전하게 놀다 오기만 했으면 좋으련만 사진 찍느라 정말 영혼이 나간 것 같은 하루였다. 키즈노트가 없던 시절이라 일일이 사진을 문자로 보내드렸다. 집에 돌아와 끙끙거리며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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