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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하는 날 반찬을 만드신 선생님

by 아름드리

선생님

어린이집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저는 낯선 별빛 아래 홀로 선 여행자 같았어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던 그 순간, 선생님께서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셨죠.


"많이 힘들죠? 올해 유난히 7살이 힘든데, 선생님이 오셨네요. 잘하실 거예요. 언제든 물어보세요.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괜찮으시면 종종 힘이 되는 반찬 좀 해드릴게요."


그 말 한마디가 제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남편 도시락을 싸느라 힘들어할 때, 고추장 멸치볶음과 진미채무침을 건네주시던 선생님. 대학원 과제에 치여 녹초가 된 날, 호박죽과 나박김치를 꼭 챙겨가라며 걱정해 주시던 따뜻한 마음. 어린이집 행사 준비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을 때, 선생님께서 건네신 녹두전과 동치미 한 그릇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어요.

선생님의 반찬에는 응원의 영양제가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을 받으며 하루하루 버틸 힘을 얻었고, 서로 기대어 어려운 날들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교사가 들어오고, 또 떠나간 자리에서 선생님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셨죠. 어린이집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젊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쉽지 않은 순간들도 많으셨을 텐데, 늘 묵묵히 곁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와 반찬 한 접시로 사랑을 나누셨던 선생님. 그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기에, 저는 원감이 되어 또 다른 후배들에게 그 따뜻함을 전하려 합니다.


정년퇴임하는 마지막까지도 선생님은 반찬을 만들어 선생님들께 나누어 주셨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습관이 된 선생님, 따뜻함을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된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이 어린이집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기억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날들도, 늘 선생님만의 따뜻함으로 가득 차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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