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드리 Oct 01. 2023

나박김치와 참기름

추석연휴가 다가오는 행복보다 추석행사를 해내야 하는 바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작년보다 새로운 추석행사를 찾기 위해 선생님들과 준비하며 아이들이 즐거워할 생각에 분주히 움직였다. 행사 준비로 고단한 몸을 이끌고 대학원에 도착하면 동기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수업시간 조금씩 꾸벅 졸기도 했다. 교수님이 나이 든 학생들이 가여웠는지 공감되는 위로의 하트를 듬뿍 눌러주며 빠르게 수업을 마쳐주셨다. 몸이 무거워서인지 느리게 걸어가다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자 나도 모르게 문이 닫힌 상점 데크에 앉아버렸다.


'내일 추석행사하면 이제 연휴라 쉴 수 있겠다. 내일까지 힘내자'


행사하는 날은 몸도 알고 있는지 피곤한데도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교사실 사물함 안쪽에 작은 메모가 붙여 있었다.


'선생님 오늘도 일찍 오겠다 싶어서 선물 사물함에 넣고 퇴근합니다.

남편 도시락 싸느라, 어린이집 행사 준비하느라, 대학원 공부하느라 정신없죠

지금은 나만 힘들다 생각 들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면 힘듦이 성장이 되어 결과로 보여줄 거예요.

선생님 보면 많이 응원해주고 싶어요.

손이 크다고 식재료 많이 샀다며 제 사물함에 많이 나눔 해주셔서 저도 감사합니다. 잘 챙겨 먹고 있어요.

작은 선물 어려워 마시고 꼭 받아주세요'


나이가 많으시지만 곱디 고운 연장반 선생님께서 나박김치와 시골에서 수확한 깨를 시장에서 짜서 참기름 한 병을 선물로 주셨다. 보자기에 싸여 있는 나박김치와 참기름을 보며 순간 눈물과 뭉클함이 느껴졌다. 내가 힘들 거 같은 날 어깨를 조용히 토닥여주시고 가시고 가끔씩 사물함에 멸치볶음, 겉절이 김치를 넣어주시며 힘을 주셨다. 연장반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찰보리빵을 선물로 가지고 출근했던 나도 선생님 사물함에 메모와 함께 빵을 넣어두었다.


'선생님 아침 일찍 출근해서 요정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선물을 보며 행복감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어요.

제가 힘든 날은 마술사가 된 것처럼 음식으로 위로의 마법을 건네주셔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다음 마법을 기대하고 살고 있는 거 같아요.

너무 감사드려요.

나박김치 참 좋아하는데 선생님 생각하고 먹을게요.

앞으로도 식재료 나눔 많이 해드릴게요.

앞으로도 건강하세요'


함께 마음을 나누는 건 찰랑찰랑한 위안의 바람을 온몸으로 느껴 힘이 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원 개강일 잊을 수도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