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존재, 그리고 이름에 대하여
나는 빛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그리고 싶은 빛은 단지 색과 형의 조화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조용히 떠도는 수많은 창작자들의 이름 없는 빛, 즉 존재의 증거이다.
오늘도 음악, 디자인, 문장,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들이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그러나 그 빛을 만든 손, 그 의미를 창조한 사람의 이름은 자주 잊힌다. ‘작자 미상’이라는 말은 너무나 쉽게 쓰이고, 그 말 속에서 창작자의 존재는 삭제된다. 나는 여기에서 묻는다. 당신의 이름은 콘텐츠와 함께 살아남는가?
이 질문이 바로 저작권의 출발점이다. 저작권은 단순히 법률적 장치나 소유의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자라는 존재를 사회가 기억하고 호명하는 하나의 언어다. 존재는 기억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종종 '예술은 모두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공공성은 소유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기여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공유는 허락을 전제로 해야 하며, 침묵 위에 서 있는 공유는 착취에 불과하다.
나는 ‘갤러리케이’ 사건을 직접 겪었다. 내 작품은 허락 없이 사용되었고, 내 이름은 지워졌다. 이미지만 남고 나는 사라졌다. 이는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수많은 창작자들이 디지털 공간 속에서 '존재는 있지만, 주인은 없는 콘텐츠'로 살아가고 있다. 스카프 디자인, 카페 인테리어, SNS 알고리즘 속에 추천되는 이미지들 속에서, 창작자의 이름은 자주 빠져 있다.
이 침묵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단지 보호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창작자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한 기술. 그것이 바로 저작권의 현대화다.
우리는 이미 AI가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며,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딥페이크는 배우의 얼굴을 복제하고, GAN은 작가의 스타일을 학습한다. NFT는 디지털 소유권을 말하지만, 그것을 지탱할 구조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억의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가?
-창작자의 이력과 기록을 담은 블록체인 기반 메타데이터 시스템
-AI와 협업한 창작물의 공정한 표기 의무화
-창작자 노출 우선 알고리즘 설계와 규제
-신고와 인증이 자동화된 창작자 중심 저작권 시스템
이러한 기술은 단지 권리의 수단이 아니라, 기억의 사회적 구조이다. 기술은 윤리를 내포해야 하며, 그 윤리는 이름을 부르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법보다 강한 기억이다.
공공기관은 발주 콘텐츠에 저작자 표기 시스템을 도입하고, 플랫폼은 저작권 침해 알림과 대응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기관은 초·중등 교육과정에 창작자 권리 교육을 포함하고, 청년 창작자 대상 실전 저작권 워크숍을 확대해야 한다.
기억은 공동체가 만드는 것이다. '작자 미상'이라는 말로 창작자의 존재를 지우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우리는 이제 “이것은 내가 만들었습니다”라는 한 줄의 선언이, 법보다 강한 기억의 언어가 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저작권은 단지 법이 아니라, 기억의 기술이며, 창작자를 호명하는 가장 인간적인 기술이어야 한다.
무명의 별이 아닌, 모두가 기억할 수 있는 '빛나는 이름'으로 남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