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소비재가 아니다. 전략 자산이며, 공공재다.
물질이 풍요로워질수록 인간은 정신적 가치를 갈망한다. 인공지능, 우주개발, 첨단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지만,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다움이며, 그 본질은 예술에 있다. 과학이 세계를 이해하고 바꾸는 도구라면, 예술은 세계를 해석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예술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고통을 치유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예술을 ‘선택적 소비’로 취급한다. 2024년 한국 정부의 총 R&D 예산은 약 26.5조 원에 달한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 전체 예산은 약 6.95조 원이며, 이 중 순수 문화예술 부문에 해당하는 예산은 약 2.3조 원에 불과하다. 예술에 대한 국가지원은 과학기술의 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단지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의 가치를 측정 가능한 성과로만 판단하고,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과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는 정책구조 자체의 한계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최근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과학기술이 아닌 예술에서 나왔다.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축적해온 문화적 역량의 산물이다. 그 성공은 예술적 창의성과 사회적 맥락, 기술과 산업 인프라의 융합에서 비롯됐다. 다시 말해, 예술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핵심 기반이다.
이제는 예술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국가 전략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예술 진흥 정책을 과학 진흥 정책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격상하고, 예산 확대와 함께 제도 개편도 병행해야 한다. 예술가에게는 지속가능한 창작 기반을, 시민에게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문화권을 보장해야 한다. 예술과 교육, 도시, 치유, 기술을 연결하는 융합 생태계를 만들고, 기초예술과 실험예술을 장기적으로 지원할 시스템도 필요하다.
OECD 국가들은 문화예술에 GDP 대비 평균 1.2%를 투자하고 있다. 한국도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적 전환이 없다면 문화강국이라는 말은 허상에 그칠 것이다. 과학은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지만, 예술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답한다. 기술이 세계를 가능하게 만든다면, 예술은 그것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는 기술과 함께 감성과 철학을 가진 나라다. 한국이 그런 나라가 되기 위해선 지금이 바로 예술 정책을 혁신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