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마세요. 여러분 모두 천재라는 사실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

by 미지
연구실 앞

대학생 때 아빠가 상암동 하늘공원에 핑크뮬리를 보러 가자고 하신 적이 있다. 그때는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함께 가지 못했던 하늘공원이 몇년 동안 너무나도 마음에 걸렸고, 지난주 서울에 올라간 김에 핑크뮬리를 보러 가자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낙엽이 물들고, 가을 냄새가 물씬 나는 이 시기를 놓치면 곧 겨울이 올 것만 같아서, 다시 한번 후회할 것 같아서. 아쉽게도 함께 간 하늘공원에서는 핑크뮬리가 아닌 억새축제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함께 가을축제에 왔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렇게 대전으로 돌아온 월요일, 점심을 먹으러 연구실 앞을 지나가는데 핑크뮬리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인생 처음 보는 핑크뮬리가 물론 하늘공원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가족 카톡방에 찍어서 보내드렸다.


행복이라는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카이스트 문지캠퍼스

이번 주는 중간고사 시험기간으로 모든 수업이 없는 한 주였다. 덕분에 온전히 시험공부와 연구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 시험은 하나였는데, 목요일 시험을 앞두고 수요일에 있는 문지책방 강연을 들으러 갈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수요일에 2-3시간 시험공부를 안 한다고 해서 시험 성적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평소 되게 좋아하는 교수님께서 연사로 오시는 강연이어서 꼭 가고 싶었다. 수요일, 오후 3시에 있을 강연을 위해 2시에 노트북을 접고 학교셔틀을 타고 문지캠퍼스에 도착했다.


처음 가본 문지캠퍼스는 새로 생겨서 그런지 생각보다 깔끔하면서도 조용했다. 다른 교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Caltech(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하셨다. 도착하고 시간이 좀 남아, 엄마와 통화를 하며 캠퍼스 산책을 했다.


2020년도 코로나 비대면 세미나

문지책방 연사로 오신 교수님은 [응! 생물학]을 비롯하여 대중을 위한 책뿐 아니라 유튜브 채널에서도 활발하게 과학의 재미를 나누고 계시는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김응빈 교수님이셨다. 사실, 내가 학부 1학년때 세미나를 들었었고, 그때 처음 뵈었던 분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돌연변이를 지닌 생명체고, 그렇기에 우리 모두 천재라는 것을 잊지 말으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셨던 순간이 인상 깊게 남아, 한동안 나의 카톡 프로필을 한 자리 차지했던 강연이다. 누군가의 삶에 큰 각인을 남긴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살면서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대면으로 꼭 뵙고 인사드리고 싶었다. 괜스레 내면친밀감도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Art is Life’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주셨다. 뒤집어 보아도 Life is Art. 예술은 인생이고, 인생이 곧 예술이다.라는 말씀으로 강연을 시작하셨다. 교수님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셨으며 미생물 연구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단순히 강연을 하시는 교수님이 아니라 내가 갈 길을 미리 걸어가신 선배 연구자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여러분이 하시는 연구는 당연히 어렵죠.
왜?
쉬운 건 여러분이 이미 다 했어요.


강연 이후에 인사를 드렸더니 정말 반갑게 맞아주시며 기억해 주고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해주셨다. 함께 커피타임을 가지며 책 이야기와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카톡도 주고받고, 후배님이라고 불러주시며 멋진 과학자라고 응원한다고 해주셔서 정말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문지캠퍼스에서 볼일은 하나 더 남아있었는데, 학부 때 잠시 인턴십을 했던 교수님을 뵙는 일이었다. 교수님께서 작년에 연세대에서 카이스트로 연구실을 옮기셨고, 내가 카이스트에 와서 연락을 드리자 매우 놀라시며 한번 놀러 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강연 이후 카페에서 만나 근황토크를 했다. 교수님께서 학부때와 다르게 나를 동등한 연구자로 대해주시며 연구, 대학원생활, 유학, 그리고 앞으로 교수가 되는 일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겹겹이 쌓여온 시간이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과의 만남은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했고, 다시 한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보령 김정균 대표님의 강연

이번 주는 첫 중간고사라는 일정도 있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일정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보령에 김정균 대표님을 만나 뵙는 일이었는데, 지난 Humans in Space youth 특별강연을 계기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이번 주에 카이스트에 오신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우주생물학에 관한 강연을 하신다기에 들으러 갔다가 이후에 잠시 커피 한잔을 하게 되었다. 대표님께서 나에게 질문을 하나 하셨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게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해요.


의미 있는 삶. 내가 어쩌면 지금껏 글을 쓰며 정답을 찾으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며, 시간의 속도도 동일하게 흘러간다.

지나가는 세월을 흘려보내기만 한다면 ‘나’라는 사람의 삶은 어떤 것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속이 꽉 찬 팥빵과 텅 빈 공갈빵의 차이처럼, 내가 80-90년의 시간을 보내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했을 때 “아,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고 싶었다.


그건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YOLO의 방식일 수도 있고, 기부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금전적인 사치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은 죽을 때 무언가 남길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회사에서 돈을 여유 있게 쓸 만큼 벌어보아도, 평소 부리고 싶던 사치를 부려보아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벌과 능력을 가져도, 어느 수치 이상의 행복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필요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을 때 비로소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배운 학문이 전부였다.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달성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연구라고 생각했다.


사실, 당시에는 대답을 정리해서 잘하진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 이런 사고방식은 꽤나 당연한 것이었기에 “왜?”라고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김정균 대표님은 정말 멋진 생각을 가진 대표님이셨다. 나는 운이 좋게도 어린 나이에 중요한 자리에 있는 분들을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느끼는 건 그들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사고방식도 다르고, 말하는 법도 차원이 다르다. 역시 아무나 대표의 자리를 하는 게 아니다.


이번 주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같은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기에 함께 나누는 대화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지고 있던 생각에 좀 더 확신을 더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이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10월의 하늘 강연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주부터 이어진 이번 주 대장정의 마무리는 1년에 단 한번,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과학 강연 행사였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님이 16년 전 시작하신 행사로 ‘오늘의 과학자가 내일의 과학자를 만나다’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생들과 만나 우주생물학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요즘 아이들은 정말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더 공부하고 분발해서 내년엔 더 좋은 강연을 해줄 수 있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행사답게 뒤풀이에서 책 나눔이 있었는데, 최근 머릿속에 있는 말들이 잘 나오지 않는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아 [생각이 많은 당신을 위한 말하기 수업]이라는 책을 받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 바로 책을 펴 보았는데, 너무 도움이 많이 되어서 여러분도 꼭 한번 읽어보면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엔진 예열은 끝났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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