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삶에 익숙해지기
이번 추석은 직장인으로서 설날과 추석 단 두 번의 명절을 보내고 다시 학생이 되어 처음 맞이한 명절이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명절에 스팸이 들어있는 선물세트를 쌓아두는 것을 보며,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직장에 다닌다면 회사에서 주는 선물을 집에 가져가보는 것이 로망 중 하나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명절에 집에 한우를 꽤 많은 양 보내줬기에 친척들과 함께 나눠먹기도 했고, 대표 명함이 박힌 택배박스가 본가에 도착한 소식을 들으면 괜스레 멋진 어른의 모습이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대학원생이 되어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명절을 따로 챙겨주지 않는 점이었다. 직장인이었을 때 벌던 월급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한 월급을 받고 있지만, 오히려 큰돈이 통장에 꽂히던 시절에는 그 돈을 쓰지 못하고 모으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이번 추석에는 그동안 감사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며 연락을 돌리고 간소한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 팀장님을 비롯하여 어릴 때부터 용돈은 물론이오 물심양면으로 마음 써주신 친척분들께 집집마다 추석선물을 보냈다. 큰 선물을 해드리진 못했지만, 여러 집이 모이니 금액이 꽤 되긴 했다. 그동안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만이 전달되길 소망했다.
대학원생이 된 지 약 6주, 배아세포였다면 이제 막 심장이 뛰기 시작할 시기이다. 학부생 때 인턴생활을 2-3년 했고, 사회생활 경험도 해봤기에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물론, 회사를 이직한 경력직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유사한 패턴을 띄긴 했다. 먼저 거리를 두는 것이다. 너무 사적으로 친해지지도 않고, 동기와 말도 놓지 않았다. 상처받기 두려우니 나를 지키는 수밖에.
그래서 나에게 변화가 생겼냐? 그렇다.
25살이면 이제 가치관이나 성격이 어느 정도 다 형성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큰 착오였다. 이전 연재글에서 다룬 적이 있는 듯한데,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어! “라고들 하지만, 마음의 여유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나온다. 그 ‘어느 정도’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회사라는 환경과 비교했을 때 대학원이라는 곳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을 수 없는 곳이다. 우선, 월급부터 차이가 난다.
경제적 뒷받침? 없다. 나는 국가에서 줄 수 있는 최대 수준의 석사 월급을 받고 있다. 그게 앞자리가 2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구실은 그것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안정된 직업? 없다. 회사에서는 내가 고과를 못 받더라도 주어진 일만 하면 되지만, 대학원은 내가 모든 순간을 열심히 연구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할 수도 있다.
퇴근하면 나를 기다리는 따뜻한 집? 없다. 애초에 퇴근 시간도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닌뿐더러 대부분의 카이스트 학생은 기숙사에 산다. 기숙사 수준은 상상하는 그대로다. “뺑이쳐라~” 대학원에 오면 선배들에게 심심찮기 군대용어를 들을 수 있다. 무슨 의미인지 검색을 해보았다.
뺑이쳐라.
많이 고생하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매주 교수님과 하는 랩미팅이었다. 미팅이 힘든 게 아니다. 매주 새롭고 기발한 연구 아이디어를 가져가야 한다. 번뜩이는 천재적인 생각도 한두 번이지, 점점 고갈이 되다 보면 어느 순간 뇌세포를 쥐어짜 내는 듯한 창작의 고통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주변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마치 예술가와 같이 예민하고, 정해지지 않은 미래와 내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내 평소 모습은 바쁜 순간에서도 찰나의 여유를 즐기고 시험기간이어도 쉴 때는 제대로 놀고 다시 힘내서 공부를 하는 스타일인데, 나도 환경에 영향을 받는 어쩔 수 없는 동물인지라 대학원에서는 그런 모습을 지켜나가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난 멍청해”라는 생각이 들었고, 최근 들어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분노했고, 부정적인 사고부터 하는 나를 발견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일로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이 길을 택한 것, 과학자가 되어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겠다는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외부요인으로 인해 희미해질 수밖에 없는 목적의식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는지 떠올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겁다
이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특별강연 요청이 왔다. 대한민국인재상을 받은 수상자를 통해 연락처를 얻었고, 다음 주에 내가 하는 10월의 하늘 우주생물학 강연 포스터를 보고 연락을 했다는 거다. 전화를 받고 ‘잠시 생각해 보고 오늘 중으로 말씀드릴게요’ 라며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끊었다.
다음 주에 당장 중간고사이고, 랩미팅에 저널클럽 발표준비도 해야 하고, 게다가 내가 300명의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할만한 자격이 될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학부 때는 내가 잘난 맛에 살았던 것 같다. 결국은 나이도 스펙이기에 대학원생이 SCI논문을 썼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학부생이” 논문을 썼다고 하면 말이 달라진다. 모든 업적 앞에 “학부생”이라는 말이 붙으면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그러니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고민을 하다 강연제안을 수락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런 두려움에 도망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보통 두려워서 회피하고 싶은 상황이 있으면, 지금이 제일 고통이 덜할 때이니 그냥 직면하자고 생각하는 편이다. 학부 때부터 무보수여도 강연 경험을 지속적으로 쌓아왔던 이유는 그런 경험들이 하나하나 쌓여 나중에 내가 교수가 되어 강단에 서야 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발자취들이 지금의 나에게 이처럼 특별한 기회로 돌아오는 일도 생기긴 한다.
결과적으로 이건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오랜만에 강연을 핑계 삼아 가족과 함께 모교를 방문할 수 있었고,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다시금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학부 때 내 강연을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했던 것 같다. 이번 강연을 준비할 때 마음가짐은 조금 달랐다. 회사에서도 임원분들을 보며 느낀 점인데, 나이를 먹을수록 직급이 올라갈수록 말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강연을 준비한 시간은 불필요한 말들을 덜어내는 시간이었다.
나이와 직급이 높을수록
내 말이 상대방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진다.
말을 줄일수록 내 한마디의 가치가 올라간다.
고등학생, 그리고 학부 때까지는 수업시간과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놀기 바빴던 것 같다. 공부와 삶의 경계가 뚜렷했다. 대학원에 가니 연구와 삶의 경계를 뚜렷하게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지금 연구와 공부가 재미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선을 긋지 않는 것도 맞지만, 순간순간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영감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쉴 때 책을 읽어도 전공내용을 읽게 되고, 유튜브를 보더라도 궁금한 과학강연을 듣게 되었다. (나에게 nerd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겠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고자 선택한 방법은 꾸준한 운동과 절주이다. 운동을 하는 1시간에 휴대폰으로 논문을 찾거나, 보고 싶은데 미뤄뒀던 미드를 본다. 균형 잡힌 식사와 절주도 적극 추천한다. 꼭 한잔을 걸쳐야 하는 자리를 제외하고는 절주를 한지 약 2 달이다. 회사에서는 회식 다음날 아침까지 뇌가 술에 절어있는 기분으로 출근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뇌세포가 쌩쌩하게 살아있는 것이 느껴진다. 공부를 하면 내용 흡수가 잘되고 빠르게 두뇌가 회전하는 것이 느껴진다.
대학원 적응기가 금세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6주간의 기록은 이쯤에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