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합시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by 미지

주말에 본가에 다녀오며 사과 5알을 가져왔다.

대전 생활을 한지 얼추 한 달이 되어가는데, 한 달 예산이 얼마나 드는지 확인하는 중이다.


내려올 당시 하루 식비로 최대 3만 원을 잡았었는데, (이렇게 하면 한 달에 3.0x30=90만 원이나 든다) 생각보다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본가 찬스가 있긴 하다만, 이번 주는 사과 5알이 나의 월-금 아침을 책임져주었다. 기숙사에서 헬스장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먹으면서 가면 아침식사 해결이다.


최근에 체중감량을 위해 식단을 병행 중이기에 바나나도 식단에 포함시켰다. 노브랜드에 가면 2800원 정도에 바나나 5-7개가 달린 한 송이를 살 수 있다. 방에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딱 5개가 달린 송이를 구매하여 프로틴 셰이크와 함께 한 끼 식사로 먹는 중이다.


이렇게 하면 벌써 두 끼가 해결된다. 보통 점심은 연구실 사람들이랑 나가서 사 먹기 때문에 커피값까지 포함하여 하루에 1.0-1.5만 원이면 식비가 해결된다.

써모피셔에서 준 커피와 교내 거위모양 조경

커피값이 굳는 경우도 많다.

카이스트 내부에서는 대부분의 커피메뉴가 40% 할인이 적용된다. (재학생인지 별도로 확인하지 않으니, 외부인도 와도 될 것 같다) 2천 원대에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다. 우리 연구실의 경우 박사님이 사주시는 경우도 많고, 나는 기숙사에 커피머신을 두고 있어 아침에 한잔 먹고 출근을 하고 있다.


이날은 써모피셔라는 기업에서 홍보차 나와 설문조사를 하면 콜드브루를 한잔씩 주었다. 동기분은 커피를 안 마셔서 내가 감사하게도 다음날까지의 커피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걷다가 거위모양의 조경도 발견했다.

이해윤추어명가와 어은스시

이번 주는 유독 약속도 많았다. 덕분에 대전에 가보지 못한 맛집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유성구에 위치한 이해윤추어명가 대전본점이다. 갈아진 정통 남원식 추어탕과 돌솥밥이 함께 나온다. 이 날은 컨디션도 안 좋았고, 교수님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심과 동시에 학회로 인해 모든 수업이 휴강을 하여 박사님들께 멀리 드라이브 가서 밥을 먹자고 설득했다. 이런 날은 콧바람 좀 쐐어야 한다고. 학교에서 차로 약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점심시간대에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정말 많이 대기하고 계셨다. 소문난 맛집이란다. 몸보신하고 싶을 때 가면 좋을 만한 곳이다. (⭐️⭐️⭐️⭐️)


그다음은 어은동에 위치한 어은스시이다.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로, 카이스트 근처 유일무이한 스시집이다. 특색이 있진 않으나, 스시가 나오기 전에 식전 샐러드를 계란과 함께 주시는 것이 특이했다. 스시는 다이어트에 실패하기 딱 좋은 메뉴였지만 그래도 대전 와서 스시는 한번 먹어봐야지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


우디룸과 웨스턴키친 마가리타

이 날은 박사님들이 개인 약속이 있으셔서 점심을 따로 먹는 날이었는데, 대학원 동기분이 매번 카페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하셔서 점심에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어은동에 위치한 우디룸이다. 여긴 회사 연수원 동기 중 카이스트에서 석사를 한 오빠의 추천을 받은 곳이다. 이름답게 전체적인 인테리어가 나무로 되어 있었고, 비 오는 날 포근한 분위기를 느끼기 좋았다. 나는 새우&아보카도 오픈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오는 법. Who made this!

동아리 후배에게 밥을 사준 적이 있는데, 이 날 장학금에 붙었다며 보은을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혼자 먹으러 가기엔 양이 많은 곳이라며 고기를 사주겠다고 하여 바로 노트북을 접고 따라갔다. 나이만 후배지 카이스트에서는 나보다 1년 넘게 먼저 생활한 선배님이다. 역시, 보법이 달랐다.


어은동에 위치한 웨스턴키친 마가리타이다. 식당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호프집 같았는데, 시그니처 수비드 목살스테이크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살면서 먹어본 고기 중에 탑 3안에 들었다. 먹는 순간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고기에 모든 걱정이 잠시나마 사라지고 배시시 웃음이 나는 맛이다. 서울에서 미슐랭도 먹어봤는데 거짓말 아니고 정말 뺨치는 맛이다. 대전에 온다면 꼭 한번 먹어보길 권장한다. (⭐️⭐️⭐️⭐️⭐️)


연구노트와 팁 통

이번 주부터는 실험도 시작했다. 학부 때 연구실 인턴을 하며 이미 한 번씩 경험해 본 것들이었지만, 대학원생이 되어 접하니 기분이 색달랐다. ‘취미에서 본업이 되어서 그런가?’ 새롭게 연구노트도 받았고, 실험에 쓰는 팁 (일회용 스포이트)를 버리는 쓰레기통도 받았다. 아직까지는 굿즈 모으는 기분이다. 설렌다.


이제 한 달쯤 되니 연구실 생활 패턴이 생기는 것 같다. 아침에 7-8시 운동을 하고 기숙사로 돌아가 짐을 챙겨 9시쯤 출근을 한다. (컨디션 난조로 아침 운동을 실패한 날에는 점심시간 12-1시를 활용한다) 연구실에 대부분은 9시 반쯤 출근을 하기 때문에 가끔 내가 불을 먼저 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는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한 것이 코에서부터 가을냄새가 느껴졌다. 심지어 출근길에는 바닥에 떨어진 예쁜 밤송이도 발견했다.

추석이 다가오니 가을도 성큼 다가온 듯하다.

아침 9시 34분 출근 / 출근길에 발견한 밤송이

이번 주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창업 학회에서 들은 강연과 창업하신 분과의 커피챗이었다.


이전 글에서 카이스트에 입학하고 들어간 동아리와 학회가 있다고 언급했을 것이다. 동아리는 차차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학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가입한 학회는 KE(KAIST ENTREPRENEURS)라는 카이스트 중앙창업학회이다. 학부생, 대학원생, 휴학생, 졸업생을 포함하여 60여 명의 학회원이 활동 중이며 정기모임과 세미나를 통해 창업 아이디어를 키우거나 마음 맞는 사람들을 꾸리는 곳이다. 연구실 퇴근 후 매주 화요일 저녁 7:30-9:00에 모임이 이루어진다.


창업에 큰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회사를 다니면서 스스로 느낀 것과 동기들과 많은 이야기를 해보았을 때, 월급만 받으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나만의 비즈니스가 있어야 하고, 기술창업 모델이 있다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생명공학 분야는 교수님들이 연구를 통해 특허를 내고 그 기술을 활용한 교원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대학원생이 바쁘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연구분야가 아닌 다른 것을 공부하는 시간이 될 수 있고, 나중에 기업의 CTO (최고 기술 책임자)가 되었을 때 경영모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입하게 되었다.


강연을 들어보니 참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았다.

나보다 2-3살 어린데, 벌써부터 치열하게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분야가 다르기에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꽤 좋은 자극을 받는 것 같다.


그들의 열정과 계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중 한 분과 늦은 저녁에 만나 커피챗을 했다.


길건너 친구들

“창업을 왜 하고 싶으세요?”

“음..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요?”

“월 얼마를 벌고 싶어요?”

”최소 월 천만 원? “

“… 그럴 거면 창업 안 해도 돼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내 꿈은 소박했다. 단순히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혼자 사는데 월 천만 원이면 나는 인생에 돈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창업은 그런 작은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이건 제가 되게 좋아하는 질문인데요.
100억이 있다면 뭐 하고 싶으세요?


대화 도중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100억. 세계여행? 비싼 집? 사고 싶은 것들? 짧은 찰나에 행복한 상상에 빠져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중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없었다.


연구.. 할 것 같은데요?
돈 생각 안 하고 하고 싶은 연구요.


최소한 우리나라는 돈 되는 연구를 해야 하는 곳이다. 의미 있는 연구라도 돈이 되지 않으면 정부의 지원을 받기 어렵고, 설령 연구에 성공한다고 해도 학술적인 실적만 남기 마련이다. 게다가 대학원생인 지금 나는 5년 안에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쫓기고 있으며, 그건 교수가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시간과 돈에 제약을 받지 않고, 내가 재밌는 연구를 하면서 사는 삶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럼 지금의 삶이 100억의 가치가 있는 거네요? 100억이 없어도 연구하고 계시고, 100억이 생겨도 내가 하는 것이 달라지지 않고 연구를 하고 있다면, 100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 삶을 살고 계신 거네요. “


이 이후에도 많은 대화를 했지만,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살짝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난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구나, 100억보다 더 가치 있는.


30분의 짧은 대화에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지 진정으로 알고자 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기 좋은 질문 같다.


당신에게 100억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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