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전이 있다면 카포전도 있다
어김없이 돌아온 월요일, 아침 7시에 헬스장을 갔다.
대학원은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하고 밸런스가 무너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에 매일의 루틴을 만들고자 하였다. 아침 7시마다 헬스장에 가서 1시간 운동을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꽤나 괜찮은 것 같다.
월요일마다 랩미팅이 있기 때문에 교수님과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다소 긴장이 되는 듯하다. 그리고 이날은 교수님께서 점심회식을 하자고 하여, 더 특별한 날이었다. (연구실 공식 첫 회식이다)
아직 2주 차라 랩미팅에서는 발표를 하지 않았기에 일찍 마무리를 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대학원생들은 교수님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는데, 주차된 차 앞에 오리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카이스트에 왜 오리가 있는지 알아요?”라고 하셨고, 한 학생이 “이전 총장님께서 데려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교수님께서 “그러니까, 왜 하필 오리인 줄 알아요?”라고 하셨고 모두 다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오리가 과학과학 울어서 그렇대요
회식 장소는 우리 보고 알아서 정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회사경험 상, 임원분들 중에 일식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없으셨다. 그리고 교수님 앞에서는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최적일 것 같아, 일식을 추천했다. 다행히 교수님도 좋아하셨다.
우리 교수님은 오랜 교수 생활 동안,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유명한데 (술자리도 안 가지신다) 이 날은 교수님의 생각과 연구 아이디어, 앞으로의 목표 등에 대해서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교수님이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싶으신 건, 자녀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는 것도 좋지만, 살기 좋은 세상을 남겨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내가 퇴사를 하면서까지 대학원에 온 이유도 사실은 언젠가 죽는 인생, 다음 세대에 좀 더 유의미한 발견을 남겨주는 것이 가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약, 새로운 기술들은 1900년대 초반에 기초적인 발견들을 해놓은 과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그러한 발견이 응용기술에 적용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가?
이전 글에서 교수님은 아무래도 피자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며 앞으로 매주 먹을 피자 걱정을 하는 내용을 언급했었다.
알고 보니, 피자는 한 예시였을 뿐.
교수님께서는 김밥이나 햄버거 등도 언급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주는 수제버거였다. 논문을 발표하고 새롭게 배우는 일은 머리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먹으면서 하는 것은 즐거운 것 같다.
이번 주는 회식이 잦았다.
월요일은 교수님과 함께한 점심회식, 화요일은 동아리 회식 (카이스트에 와서 우주동아리와 창업학회에 들어갔다. 추후 본문으로 다룰 일이 있을 것 같다.), 수요일은 교수님 없는 연구실 회식이었다.
카이스트에 오래 계셨던 박사님의 추천을 받아, 대전의 대학로인 어은동에서 양꼬치를 먹었다. (연취라는 식당이고 양꼬치, 꿔봐로우, 볶음밥, 토마토계란볶음을 먹었다. 내가 먹어본 곳 중 가장 맛있었다.) 연구 이야기도 하고, 연구실 밖에서 어울리니 한결 더 가까운 사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모두 저녁 9시에는 집에 가야 해서 2차로는 간단하게 보드게임카페를 갔다. 박사님 중 한 분께서 보드게임을 정말 좋아하셨는데, <마헤>라는 보드게임을 소개해주셨다. 각자 거북이가 되어 섬을 돌고 (주사위 숫자 x주사위 눈=이동 칸 수) 점수를 가장 많이 얻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데, 항간에 따르면 고인물들이 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박사는 다르다는 걸 보여달라”, “여기서 안 가면 남자 아니다” 등 도발하는 말들이 남발하며 웃음이 끊이질 않고, 주사위 3개를 던져서 7이 나오는 (이 게임에서는 제일 좋은 숫자)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은 순간들에 환호하며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이렇게 벌써 한 주의 절반이 지나갔다.
현재 우리 연구실은 원래 건물이 리모델링 중이어서 10월 말까지 다른 건물 연구실에 세 들어 살고 있다. 문제는 프린트를 하려면 연결된 복합기가 다른 연구실 방에 있어 들락날락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문 하나를 프린트하는데 20장 정도라서 가면 모르는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몇 분 간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내 원래 성격 같으면 낯을 가리는 편이라 얌전히 있을 법도 한데, 회사 생활을 하며 “커피 한잔 합시다”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쉬워지기도 했고, 최근 같은 학과의 외국인학생으로부터 “나는 한국어를 못해서 가만히 있지만, 너희는 한국인인데 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이야기를 하지 않아?”라는 말에 조금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기에 남의 연구실을 몇 번 왔다 갔다 한 끝에 먼저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신입생이세요?” “네, 맞아요”
“아, 저랑 다른 학생도 신입생인데 10월 말까지 계속 뵈어야 하니 다음에 신입생들끼리 커피라도 한잔 할까요? “ ”좋아요! “
회사에서 일해보면, 오후 2시는 딱 커피수혈이 필요한 시간이다. 아직 퇴근까지도 시간이 남았고, 밥 먹고 졸릴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옆방 연구실 사람들과 만나 도서관 2층에 있는 오가다라는 카페를 갔다. 음료는 특별한 게 아닌데 뷰가 정말 좋았다. 옆방 분들은 잠깐의 일탈을 특히나 좋아하셨던 게 출퇴근이 9 to 9이라고 한다. (09시부터 21시) 하루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코 특별한 게 아니다.
오랜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건 찰나의 여유이다.
금요일은 휴가를 썼는데, 목요일 저녁에 본가에 서프라이즈로 방문을 했다. 성심당에서 롤케이크를 사려고 했는데, 세미나를 듣고 나니 오후 5시 반쯤 전부 품절이었어서 시루를 사갔다. 부모님이 정말 좋아해 주셔서 뿌듯했다. 인생 첫 시루였는데, 생각보다 빵은 거의 없고 과일과 크림만 잔뜩 있어서 만약 일반적인 케이크를 기대한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듯했다. 한 번쯤 경험으로 먹어보는 건 좋을 듯하다.
금요일에 휴가를 쓴 이유는 금-토 양일간 열리는 연고전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카이스트에 와서 가장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도 서로 “카포전”이라는 경기를 한다는 것이다. 연고전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카포전이라니.
역시 어딜 가나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법이다.
잠시 대전에 있는 동안 금세 적응이 되었나 보다. 연고전에 가니 너무 다양한 학생들과 활기찬 모습이 약간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학부생활은 연세대가 최고인 듯하다. (놀기 진짜 좋다) 야구와 축구를 보러 갔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고려대가 운동은 좀 더 잘하는 것 같다. (축구, 농구, 야구, 하키, 럭비 경기 도합 3:2로 졌다)
하지만 괜찮다, 연세대가 머리는 더 좋다. 참고로 카포 전은 스포츠 경기도 하지만, ‘상대방 컴퓨터 해킹하기’와 같은 대결도 한다고 한다. 다녀온 재학생 말에 따르면 경기에 온 사람은 20명도 채 안되고, 아무도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올해 경험으로 가보면 좋았겠지만, 연세대가 우선이다. 내년엔 포항공대에서 열린다고 하니 내년에 경기를 보러 가는 것도 미지수다.
오랜만에 응원가를 듣고 신이 나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응원가들이 많이 생겨 화석이 된 기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나 때는 단합도 잘 되고 자리를 모두 매웠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후배 세대에는 그게 잘 전달이 안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흔히들 모레알연세 라고 하는데, 고려대가 확실히 끈끈하긴 한가 보다.
졸업생이라 동문석에 앉아야 했는데, 스탭 학생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아무래도 동문석은 자리가 한정되어 있기도 하고 텐션부터가 재학생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70-80대 선배님도 계셨다) 연고전을 보며 가장 기분이 좋았던 건, 동문석 입밴 당한 것이다. 들어가려고 하는 나를 제지하며 “여기는 졸업생만 가능하세요”라고 한 학생 누군진 몰라도 커피라도 사주고 싶다.
이번에 서울에 올라가서 예전 연구실 인턴 때 알던 박사님과 만나 근황토크도 하고 연구조언도 얻을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한번 학부 때의 활기도 얻어 대학원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은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인생에서는 이토록 짧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손에 꼭 쥐고 그 힘을 얻어 살아가는 듯하다.
잊지 말아야지.
경기장을 나오며 본 금주의 짤이다.
서울 고려의 연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