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광역시 오리구 타슈동에 삽니다.

대전은 빵의 도시인가요?

by 미지

대전을 종종 갈 일이 그동안 있었지만, 매번 성심당 주변을 제외하고는 (중구)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노잼도시로 유명한 대전이기에 큰 기대도 없었고, 빵 말고는 자랑할 게 없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기에, 오히려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게 웬걸, 개강 첫날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마치 멈춰있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듯, 아침 일찍부터 러닝 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 화창하게 비추는 햇살, 이 모든 것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카이스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상당히 컸다. 캠퍼스 서쪽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중앙에 위치한 연구실까지 걸어서 약 15분, 연구실에서 동쪽 수업건물까지 걸어서 약 15분, 좌우로 도합 30분이 걸리는 사이즈였다.


캠퍼스가 큰 만큼, 웬만하면 모든 것이 안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서측, 북측, 동측 식당들, 스포츠 컴플렉스와 사우나 및 수영장, 중간중간 위치한 카페들, 무엇보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공원과 연못 조경이었다.


캠퍼스 내에서 시속 30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보다 보면(카이스트는 주차가 무료이다), 순간 내가 학교가 아니라 작은 도시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카이스트 오리와 거위

카이스트에는 오리연못이 있다. 연구실에서 수업을 듣는 건물까지 가려면 꼭 지나쳐야 하는 다리인데 오리와 거위가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위 조심 표지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이 동물들에게 주는 애정은 정말 크다. 심지어 학교 공식 마스코트로 사용된 굿즈를 판매할 정도.


거위를 보다 보면 캐나다나 미국에 국립공원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동물이 평화롭게 걸어 다니는 모습이 대학원생에겐 약간의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카이스트 최대 복지랄까.

카이스트 내에서 매일 지나가는 다리

연구실 출근 후 며칠은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항상 환경이 바뀌면 몸살이 나거나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근하자마자 주어진 리뷰할 논문과 새롭게 만난 연구실 사람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건물로 허둥지둥 수업을 들으러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열과 두통, 근육통으로 기운이 축 빠졌다.


역시 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우는 것인지 이렇게 새로운 복지를 또 알게 되는데, 카이스트는 의료상조회비를 낸경우, 교내클리닉 진료 대부분의 금액을 환급해 준다. 교외 병원도 동일하게 해당이 된다.


이 작은 도시는 대부분의 학생이 병원비나 식비 걱정 없이 생활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다면 교통비는?

대전시 공유자전거 타슈

카이스트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교내를 걸어 다니기엔 끝과 끝이 왕복 1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꽤나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여기서 대전의 또 다른 복지가 등장한다. 시에서 운영하는 공유자전거 ‘타슈’이다.


타슈는 매일 1시간 무료로 사용이 가능하다.

빠르게 잠시 볼일을 봐야 할 때 정말 유용하다. 대전 사람이 아니어도 아무나 회원가입만 하면 되니, 대전의 자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당장에 이 글을 쓴 아침에도 연구실 출근 때 타슈를 탔다.)


그렇게 감기몸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날, 야구를 보러 갔다. 개강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몇 주 전 미리 예매해 둔 것이었다.


폰세 시즌 최다 탈삼진 기념

나는 살면서 야구 경기를 제대로 본적도, 야구장에 가본 적도 없다. 응원하는 야구팀은 더더욱 없을뿐더러 규칙도 상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회사를 다닐 때부터 지역적인 이유로 인해 한화이글스 팬이 주변에 많았고, 대전에 살게 된 이상 새로 생긴 홈구장은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예전부터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야구장에서 음식 먹기였다.


어디가 좋은 자리인지 몰랐기 때문에 제일 비싼 곳이 제일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앙지정석을 예매했고, 포수 바로 뒤쪽에서 1루부터 3루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시야였다.


야구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 이건 내 스타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느긋한 것을 좋아하고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야구가 딱 그 조건에 부합했다.


9회 말까지 경기는 3시간이 소요되었고(9회 우중 경기중단 및 10회 연장까지 진행되었다.)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음식과 술을 사 먹는 분위기, 경기중간중간 재밌는 상황을 잡아주는 카메라, 치어리더들의 응원가 등 어디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는 한화 팬이 될 것을.


가장 처음 리뷰한 논문

마치 면역세포가 외부 침입에 대응하듯 대전에서의 삶은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앞으로의 삶이 기대가 되는 것은 분명했다.


대전은 단순히 성심당의 도시가 아니었다.

몽심의 도시도 아니고, 노잼 도시는 더더욱 아니었다.


대전 한가운데, 갑천 위에 있는 작은 도시는

그 안에서의 질서와 문화를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도시에 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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