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이름처럼 아직은 모르는 거야
2024년 12월 그리고 2025년 1월
퇴사 결정을 한 건 올해 1월이었다.
회사에서 일한 지 6개월쯤 되면 이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 느낌이 오는 것 같다.
하려고만 한다면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대를 졸업한 학사 직무라면 어떤 신입이라도 배우면 될 일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안주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12월에 선물 받은 이 책의 프레드릭은 곡식을 모으며 겨울을 준비하는 다른 쥐들과 달리 햇살과 이야기와 따뜻함을 모은다. 모두가 “너는 왜 곡식을 모으지 않아?”라고 하자, 프레드릭은 자신도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팀장님은 손편지를 써주고 동화책을 선물해 주시는 이 시대의 ‘에겐남’이셨다. 각 구성원들에 맞게 책을 준비하셨고, 나에게는 왜 이 책을 주신 것일까 고민했다.
어쩌면 나는 팀에서 보기에도 무언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쫒고 있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추후에 물어보니 팀장님이 나는 프레드릭처럼 멋진 사람이라고 하셨다.)
1월에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을 마치고, 가족과 상의 끝에 8월 퇴사를 결정하고도 나는 여전히 나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지금처럼 살면 앞으로 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인생이었다.
멀쩡하게 다니는 대기업을 퇴사하고 앞으로 약 5~7년 동안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일까.
취미생활 하며 혼자 살기에 충분했던 월급,
친구들과 부모님을 만나면 고민하지 않고 쓰던 돈,
퇴근 후 운동과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던 삶,
여행을 다닐 수 있던 주말,
무엇보다 앞으로 계획했던 투자와 결혼자금 등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떠올린 건,
“지금 아니면 절대 못 간다”였다.
더 나이가 들면,
부양가족이 생기면,
고려해야 하는 사람이 단순히 나만이 아니라면,
절대 못 갈 것 같았다.
2025년 2월
한창 고민을 하던 시기에 추천을 받아 본 영화가 있다.
영화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생적이었던가
‘아, 나는 고민만 하며 인생을 흘러가게 두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이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온 우주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읽은 책들에서 모두가 나의 선택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지식에 대한 투자는 최고의 수익으로 이어진다.”
(벤자민 프랭클린)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헤르만 헤세)
2025년 3월
나는 고민이 있을 때 책을 읽곤 했다.
주변 사람에게 말하고 조언을 얻는 것도 좋지만 여러모로 민폐기도 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답변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책은 나에게 비난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한 방향 대화를 할 뿐.
나는 여태껏 그 대상을 책으로만 제한했었으나, 근래에범주를 넓혀 영화에서도 고민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였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실제로 보지는 않았으나, 나의 특별한 취미는 좋은 글귀 수집이다. 이 글은 사람의 무의식에 대한 말인데, 우리는 모두 이미 결정을 내렸고 다만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기 위해 여기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결국 대학원을 갈 거였다면, 대학 졸업 후 바로 갔으면 될 것을 굳이 왜 회사를 다닐 운명이었을까? 에 대한 생각도 많았다.
우연의 일치로 내가 최종적으로 진학하게 된 대학원은 내가 다니던 회사와 약 3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지방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타지로 가게 된 것이 아니라 연락하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회사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처음에 가족도 친구도 없이 많이 외로울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잘 풀린 것이다.
또,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아마도 ‘회사를 갈 걸 그랬나?’ 혹은 ‘연구가 내 길이 맞을까?’
라는 생각에 또 고민을 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게 된 것도 너무 좋은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학교를 벗어나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성향도 더 파악할 수 있었고, 주변에 있는 가족과 친구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여러모로 좋지 아니한가!
2025년 7월
4,5,6월은 나가기 전까지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쉬었다.
퇴사를 한 달 앞둔 7월, 회사에 공식적으로 대학원 진학 소식을 알렸다. 막상 공표를 하고 나니 홀가분하면서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이 많이 서운해하셨다.
나도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팀장님을 너무 좋은 분을 만난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나가기 전에 복숭아는 한번 먹고 가야지?
회사 근처에 백화점으로 납품되는 좋은 품종의 복숭아를 재배하는 밭이 있다고 했다. 7월에 재배하기 때문에내가 작년 8월에 입사했을 때는 먹을 수가 없었고, 내년 7월을 기약했던 것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공기가 숨이 막혔고, 잠깐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면 머리가 달궈질 정도였다.
복숭아 밭을 걸어가며, 복숭아가 다 비슷하지 뭐가 그렇게 특별하려나 싶었다. 밭주인아주머니 아저씨 내외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어서 먹어보라며 덥석 몇 개를 썰어주셨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과 그 과즙에 여름이 담겨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더운 여름을 버텨낸 복숭아는 먹어본 것 중 가장 달콤했다.
2025년 8월
정확히 입사한 지 365일이 되던 날, 나는 퇴사를 했다.
팀장님은 복숭아 한 박스와 손편지를 적은 동화책을 선물로 주셨다.
그 편지 내용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럼 이제 떠나는 미지에게 행운을 빌어줘야겠군요. BGM으로는 페퍼톤스의’ 행운을 빌어요 ‘가 좋겠습니다. 다시 넓고 높은 세상으로 더 큰 꿈을 펼치러 날아가는 미지에게 마음속으로 간절히 행운을 빌어봅니다. 부디 멋진 ‘사람’이 되어 꿈을 이루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