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생길 것 같죠? 생겨요, 좋은 일.

Shut up. Suit up. Show up.

by 미지

일상의 up & down이 있다면 이번 주는 굉장한 down 모드에 빠져있던 한 주였다. 식단과 운동을 가장 엄격하게 해서 그럴 수도 있고, 인간관계, 연구 등에 대한 고민으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마 창업 학회 후배의 연락이 없었더라면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을 뻔했다. 월요일 수업 중에 오늘 저녁을 먹자고 연락이 와서 잠시 고민하다 하루 식단을 과감히 던져버렸다. 후배가 학교 밖을 나가 어은동에서 파스타를 먹자고 했으나, 그 정도까지는 마음이 먹어지지 않아서 학식을 먹자고 했다.

풀빛마루 닭가슴살 부리또

카이스트에는 서쪽, 동쪽, 북쪽 식당이 있는데 북쪽에는 ‘카이마루’라는 이름에 식당이 있다. 카이마루는 대체로 푸드코트 형식이지만 외국인학생들을 위한 할랄음식을 파는 ‘풀빛마루’라는 작은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연구실 박사님이 학교에서 그나마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다면 이곳을 가라고 하셔서 후배에게 가보고 싶다고 했다. 고맙게도 후배는 많이 먹어봤을 텐데 내 첫 풀빛마루를 함께 해주겠다고 하여 우울한 하루에 약간의 도파민을 얻을 수 있었다.


메뉴는 덮밥, 샐러드, 브리또 이렇게 3가지이며 위에 토핑이 각각 다르다. 나는 닭가슴살 브리또를 먹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으며 매일 한 끼는 이걸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앞으로 학교생활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시험이 끝난 이번 한 주를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해 준 또 다른 존재는 야구였다. 약 2달 전 대전에 와서 처음으로 야구를 보게 되었고, 주변의 영향으로 인해 반강제로 한화의 팬이 되었다. 나름 내 성격이랑 잘 맞는 스포츠 같고, 재미도 있어 챙겨보게 되었는데, 올해 한화가 너무 잘해서 가을야구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이번 주는 LG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을 하는 주간이었기에 거의 매일 연구실 퇴근 이후 야구를 보았다. 그냥 공부를 안 하는 것과 한국시리즈를 보기 위해 공부를 안 하는 건 기분학상 다르다.


1,2차전을 LG가 모두 이기고 한화가 0승 2패로 지고 있던 3차전 경기에서 나는 한화가 이길 것이라 확신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인생이라는 게 꼭 그럴 것만 같았다. 모두가 LG가 이길 것이라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3:2로 지고 있던 한화가 8회 말 역전을 하면서 3:7로 이기게 되었다. 4차전 경기에서는 LG가 8회 말에 한화를 역전해서 3승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는 금요일 5차전 경기에서 LG가 우승을 하며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되었다. 나름 한화도 졌지만 잘 싸웠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번 한 주 동안 공부는 안 하고 야구만 봤냐? 아니다. 난 야구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번 주에 실제로 몸이 좀 안 좋았다. 일교차도 심했고, 날이 흐려서인지 기분도 울적했고, 운동을 좀 과하게 했다. 헬스가 아닌 다른 운동을 하고 싶어 져서 하루에 수영과 자전거를 1시간씩 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성심당 DCC까지 왕복으로 7km를 타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아무튼, 몸을 그렇게 혹사시키니 당연히 천근만근일 수밖에! 그래서 하루는 점심을 꼭 뜨끈한 국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연구실 동기를 꼬셔 학교 앞 태국음식집에 갔다.

[잇마이타이]라는 웨이팅 긴 식당이 하나 있다. 여기도 연구실 첫날 박사님들과 갔던 곳인데 ‘랭쎕’이라는 태국식 등뼈찜을 먹었다. 단백질 보충이라고 생각하고 먹기엔 좋았으나 좀 짜고 자극적이라 또 먹진 않을 것 같다. 살면서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 기록에 남긴다. 동기가 밥 먹고 카페를 가고 싶다고 해서 평소 가고 싶었던 에스프레소바를 갔다. ‘코코’라는 코코넛 베이스의 에스프레소를 마셨는데, 먹자마자 바로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었다. 우울할 땐 이 커피를 마시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에는 일정이 많았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기로 했고, 코엑스에서 창업 심포지엄도 참석해야 했다. 부모님과의 가을 나들이도 가야 했다.


대학 동기들과 오랜만에 홍대에서 인생네컷도 찍고, 이쁜 카페도 가고, 대학생 때 같이 수업 듣던 이야기도 하고 하하 호호 웃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날도 춥고, ‘집에서 쉬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는데 함께 있을 때 즐겁고 편안한 사람들과 만나니 에너지를 너무 많이 얻고 돌아왔다. 겨울이 오기 직전, 부모님과 가을 단풍 구경을 하고자 아침 일찍 나들이도 갔다. 김포에 있는 장릉을 갔다. 비교적 근교였는데도 공기가 신선한 게 기분 전환하기 딱 좋았다. 강추.

코엑스 창업 심포지엄은 참석을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연사로 WELT의 강성지 대표님이 오셔서 갔다. 21년도 창업 수업을 수강할 때 학교 선배로 강연 오셨던 대표님이셔서 또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4-5년이 흐른 지금 스타트업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10년 앞의 선배를 만나 롤모델을 정하세요!


창업 수업에서 강성지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단다. 그렇기에 내가 아무리 성장한들 선배를 위협할 일은 없고 롤모델이 살아간 길을 미리 배우고 학습하며 닮아가라고 하셨다. 이번 강연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위인전을 읽으며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길을 미리 보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남들이 성공한 모습만 보고 부러워한다고 하셨다. 성공한 사람들도 다 20대에 힘든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좌절하지 말라고 하셨다. 대표님의 회사도 4-5년 사이에 많이 바뀐 듯해 보였지만 목표를 향해 가시는 방향성이 바뀌진 않은 듯했다.


끝나고 잠시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명함도 주고받았다. 대표님께서 나보고 “수업을 들었을 때랑 지금이랑 삶에 달라진 거 있어요?”라고 물어보셨다. 4-5년 동안 나는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했고, 회사도 갔다 왔고,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 몸과 마음도 많이 건강해졌다. 그렇지만 정말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대표님과 이야기하면서 나도 이제는 큰 파도를 탈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민이 많을 때 하는 행동 중 운동 외에 또 다른 한 가지는 독서다. 책을 한 권 읽으면 내 고민에 대한 정답이 단 한 줄이라도 있을 것 같아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사람들은 독서를 좋아한다고 하면 ’ 어떤 장르의 책을 좋아하세요?‘라고 많이들 물어보는데, 나는 장르에 주기가 존재하는 것 같다.


20살, 갓 성인이 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할 때에는 자기 계발서적을 많이 읽었다. (ex. 자기 관리론) 많은 깨달음을 얻다 어느 순간 ‘너무 뻔한 말이잖아?’ 싶을 때가 생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를 보게 된다. 나는 그다음이 단편 소설이었고, (ex.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소설에서 또 메시지를 얻어가다가 ‘이건 너무 허구잖아?’라는 생각이 들면 다른 장르를 읽는다. 그다음은 고전소설이다. (ex. 이방인) 고전 소설은 재미를 추구하진 않는다. 나는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읽는 것을 좋아해 속도도 빠르지 않아 한 권을 읽는데 오래 걸린다. 그래서 고전 소설의 경우 한 권을 다 읽으면 다른 장르로 넘어간다. 책을 오래 읽지 않아 긴 호흡으로 읽히지 않을 땐 시를 읽는다. (ex.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이번 주에는 데미안을 빌렸다.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살아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상황에만 놓일 수도 없고, 스트레스받는 상황, 사람, 환경에 계속 노출이 되게 된다. 그런 삶을 버틸 수 있는 건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공간들을 계속 곁에 두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주는 때론 지치기도 했지만 나를 잡아줄 수 있는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잔뜩 찾을 수 있어 행복한 한 주였다.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도 많고, 공간도 많아졌다. 힘내서 행복하게 다음 한주를 살아가야지. 모두들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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