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The Dog(2021)-Jane Campion
1925년 미국 몬타나,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필(베너딕트 컴버배치)은 막대한 재력은 물론 위압적이고 묘한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느 날 그의 동생 조지(제시 플리먼스)가 로즈(키얼스틴 던스트)와 그의 아들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분노한 필은 로즈의 아들을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출처 네이버 영화 소개
잠이 오지 않는 무료한 밤, 넷플릭스의 찜한 목록에 넣어둔 지는 꽤 되었으나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던 <파워 오브 도그>를 마침내 보았다. 엄청난 극찬의 주인공이며 제94회 오스카 최다 부문 노미네이션의 영광을 거둔 <파워 오브 도그>는 아쉽게도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서부 장르….였던지라 매번 볼까 말까 하다 말까를 선택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나름 스스로를 시네필(Cinephile)이라 생각하기에 명작이라니까 언젠간 꼭 봐야지 벼르고 벼르다 오늘 밤 이 영화를 선택했다. 글의 첫 단락은 내가 참고한 <파워 오브 도그>의 네이버 소개 글이다. 죽 읽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자신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라는 마지막 문장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동생의 아내를 욕망하는 동시에 괴롭히는 혐관이라는 거네. 흔하디흔한 클리셰. 그 클리셰가 뭐 그렇게 특별하기에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한 건지, 서부극이라는 크나큰 장벽에도 호기심에 못 이겨 재생하기를 클릭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어두컴컴하다. 목장주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부유해진 “필”과 “조지”의 집은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빛이 결핍되었다. 전등이 존재함에도 겨우 서로의 얼굴이나 알아볼 정도의 미약한 빛만 허락한다. 그래서일까? 조지의 아내 “로즈”는 자신에게 차가운 필을 두려워하는데, 이 집안의 분위기가 더욱 그녀의 공포스러움을 고조시키는듯하다. 솔직히 영화를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필은 마초 of 마초 캐릭터로 “쟤 왜 저래…?” 소리가 절로 나오는 행동만 골라서 하기에 마냥 맘 편히 누워 관람하기엔 적절치 못한 영화였다.(없던 잠까지 홀딱 깨버리는 영화이기에….) 그는 로즈의 아들 “피터”가 손수 만든 종이꽃을 담뱃불 붙이는 용도로 태우질 않나, 결혼 후 자신들의 집으로 이사 온 로즈에게 다짜고짜 꽃뱀이라며 모욕을 하지 않나…. 무엇보다도 손님이 오는데도 씻지 않는 그의 비위생적인 모습이 정말 눈뜨고 보기 괴로웠다.(원작 소설에선 필은 무려 3-4개월에 한 번 씻는다고 나온다. OMG….) 자신을 가르친 “브론코 헨리”라는 인물에 대한 존경심을 제외하면 남에 대한 배려라는 게 아예 누락된 채 태어난 인간 같았다. 그러면서도 뜬금없이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벌거벗은 채 눈을 감고 소중히 품어온 낡은 스카프의 감촉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을 가지는 한편, 자신의 아지트를 피터에게 침범당하자 불같이 화를 내는 필의 모습을 보니 궁금해졌다. 분명 그에게도 낭만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마초스럽게 행동할까?
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갈 즈음, 나는 충격적인 반전을 마주했다. 반전은 피터가 방학을 맞이하여 로즈와 조지의 집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마초남 필은 역시나 암묵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남성성이 결핍된 피터를 노골적으로 싫어한다. 미스 낸시라 부르며 그를 조롱하고 괴롭히는데, 피터는 외면과 달리 강한 내면을 가졌다. 로즈의 식당에서 필과 처음 만났을 땐 그의 무례함에 눈물을 흘리곤 마음을 추스르려 혼자 뒤뜰에서 폭풍 훌라후프를 했지만 이제는 그다지 필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괴롭힘을 당해도 그와 시선을 부딪히는 걸 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맘이 약한 로즈는 피터와 달리 필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결국 술에 의존한다. 집안 곳곳에 술을 숨겨놓고 낮이건 밤이건 술을 마셔대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 보일 지경이었다. 어느날부턴가 필은 피터를 데리고 다니며 승마를 가르쳐준다. 그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잠깐 당황했지만 피터는 예상과 달리 금세 경계를 풀고 필을 따른다. 둘은 짧은 시간 동안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피터를 싫어해 그를 괴롭혔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그와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네이버 소개 글 속 ‘자신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라는 구절은 로즈가 아닌 피터를 겨냥한 것이었다!
필의 아지트에서 남성의 누드 사진을 발견하기 전까진 생각도 못 했지만 돌이켜보면 영화는 필이 동성애자라는 증거를 은연중에 계속해서 드러냈다. 술집에서 다들 여자를 끌어안고 놀기 바쁠 때 우리의 마초남 중 최고 마초남 필은 그저 술만 퍼마신다. 매일 밤 같은 방에서 잠자리에 들던 동생은 하루아침에 낯선 여성과 결혼하여 방을 떠난다. 이때 필은 옆방에서 동생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는 마치 엄청난 소음이라도 들은 듯 화를 참지 못하고 방을 박차고 나선다. 아마도 필은 외로운 그의 인생에 항상 옆에 있어줄 것만 같았던 동생이 결혼을 하자 마치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받은 건 아닐까? 그래서 로즈를 그렇게도 괴롭힌 게 아닐까? 브론코 헨리에 대한 그의 존경은 단순한 존경을 넘어선 사랑이었고 피터에 대한 혐오도 결국 피터를 애정 하고 싶지 않은 그의 발악과도 같다. 그는 자기 자신을 숨기려 괴팍한 마초남으로 온 전신을 포장했지만 결국 피터에 의해 포장이 벗겨져버린다.
뒤이어 영화는 두 번째 반전을 보여준다.(두 번째 반전은 영화의 결말이 담겨있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사실 이것도 반전이라기엔 필의 동성애처럼 영화는 피터의 선택을 암시하는 장면들을 줄곧 보여줬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피터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이라 생각했다. 친구를 목장에 초대하는 게 어떠냐는 로즈의 말에 단번에 소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 싫다고 대답한다. 토끼를 좋아하는데 왜 죽였냐 물으니 토끼를 좋아하지만, 외과의가 되려면 해부 실습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그는 외면은 가냘파 보일지라도 마음만은 단단한 사람이다. 선택에 주저함이 없고 주관이 뚜렷하다. 그런 그에게 술에 잔뜩 취한 로즈가 애걸한다. 필과의 친분이 두렵다는 듯이. 그러자 피터는 “엄마, 이럴 필요 없어. 이럴 필요 없게 내가 정리할게.”라고 단호하면서도 다정하게 그녀를 달랜다. 그는 이때부터 이미 마음을 결정한 것이었다. 피터도 처음엔 필을 혐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 마음을 연 듯 보인다. 하지만 해야만 했기에 좋아하는 토끼를 죽인 것처럼, 그는 필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해야만 하는 결정을 내렸다. 누구보다 강한 남자인 척 자신을 포장한 필보다도 피터는 분명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시나리오적 특성도 놀라웠지만 가장 감탄스러운 점은 영화의 연출이다. 이 영화의 연출의 핵심은 빛과 소리라 생각한다. 목장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반면 필과 로즈의 집은 빛 한 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매우 어두컴컴한 집이다. 그곳에서 로즈는 필의 발소리를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의 존재인 양 두려워한다. 특히 로즈가 소리가 새어나갈 새라 문이란 문은 전부 닫고 피아노 연습에 한창일 때 필이 비밀스럽게 들어와 로즈의 연습을 방해하는 시퀀스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시퀀스였다. 끼익-하는 문소리에 놀란 로즈가 다시 조심스레 피아노를 치자 필의 밴조 연주 소리가 들린다. 이내 밴조 소리는 피아노 소리를 압도해버리고 가뜩이나 피아노 실력에 자신이 없던 로즈는 필 때문에 더욱더 작아져 버린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필의 시점에서 보여주는데, 마치 계단과 벽이 로즈를 가둬버린 듯한, 프레임안의 또 다른 프레임을 설치한 듯한 구조는 로즈의 심리적 압박 상태를 매우 잘 드러내는 연출이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밖에도 필과 피터가 초조하거나 불편한 상황 속에서 밴조를 연주하고 빗을 튕기며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에 로즈 역시 불안과 초조가 전염되는 모습이 영화 속 소리라는 장치의 상징성을 드러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내내 어둠 속에 파묻혀있던 로즈의 모습이 영화의 말미에 장례를 치른 후 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빛을 맞으며 귀가하는 로즈의 모습과 상당히 대조되어 매우 인상 깊었다.
필은 내내 아무것도 없는 산새를 바라보며 남들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본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산새에 그림자가 져 만들어진 짖고 있는 개의 형상인데, 피터는 처음 보자마자 그 형상을 발견한다. 피터는 개를 똑바로 직시하며 개로부터 자신과 어머니를 지킨다. 하지만 필은 보이지 않는 개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채 천천히 개의 힘에 잠식되어버린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면서 내가 보지 못하고 있던 개의 힘을 발견했다. 서부영화라 하면 총잡이들의 총싸움이 난무하는 액션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파워 오브 도그>는 그런 면에서 전형적인 서부영화와 상당히 결이 다르다. 오히려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에 집중하기 위해 풀샷보단 클로즈업을 주로 사용하여 어떻게 보면 배경만 서부영화일 뿐 스릴러, 드라마, 로맨스 모두를 내포하는 장르를 파괴하는 장르의 영화였다. 또 다른 편견으론 사랑에 있어서 이성애를 기본값으로 생각했던 나의 무지이다. 영화의 1/3 지점까지 왔을 때도 도대체 언제쯤 필이 로즈를 사랑하게 되려나 생각했는데, 실은 피터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이란…. 나름대로 젠더 감수성이 높은 편이라 생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흔하디흔한 고정관념조차 벗어나지 못한 나 자신이 순식간에 부끄러워졌다. 어떻게 보면 전혀 반전이 아닐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성애를 기본값으로 생각하는 편견이 반전을 자아낸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개의 힘은 보이지 않기에 꽤나 지독하게 우리에게 들러붙어 있다. 필처럼 보이지 않는 개의 힘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항상 경계해야 한다. 옆에서 모르는 개가 짖고 있진 않은지.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소중한 것을 개의 힘으로부터 구하소서.
성경 시편 22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