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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16. 2023

일곱 번째 죽음이지만 그래도 죽음이 두려운 건

미키7 - 에드워드 애슈턴

“테세우스는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전 세계를 항해했어요. 그동안 배 여기저기가 망가지고 뜯어져 배를 고쳐야 했어요. 몇 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원래 선체를 구성했던 목재는 모두 교체되고 없었어요. 이 경우에 테세우스의 배는 출발할 때와 같은 배일까요? 아닐까요?” (p.132)

 책 리뷰를 읽기에 앞서, 여러분이 이 물음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머나먼 미래, 우리의 지구는 이미 옛 고향이 되어버렸고 인류는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전 우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인류는 수많은 행성을 개척하려 시도하는데, 책의 주인공 미키 반스는 니플하임이라는 행성의 개척단으로 투입된다. 미키는 익스펜더블, 즉 복제 인간이다. 익스펜더블은 마치 스토리 게임을 진행할 때 중간중간 진행 사항을 저장하듯이 자신의 기억을 미리 업로드해둔 후 불가피하게 사망할 경우 신체를 재생하여 업로드해 두었던 기억을 재생한 신체에 심는 것이 가능하다. 이 기술로 미키 반스는 예기치 못하게 죽더라도(사실상 익스펜더블은 죽음의 위험이 있는 임무에 투입되는 역할이다.) 다시 재생될 수 있는 불멸의 삶을 얻은 것이다. 책은 어느덧 미키가 여섯 번의 죽음 후 미키7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일곱 번째 죽음의 위기에 놓인 순간부터 시작된다. 임무 중 한순간의 부주의로 깊은 동굴에 추락한 미키7은 스스로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자 동료들에게 미키8로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곤 죽을 준비를 한다. 숨 막혀 죽는 게 나을지 얼어 죽는 게 나을지 고민하던 중 어쩐지 미키7은 정말로 자신이(미키8이 아닌 진짜 “미키 반스”로) 재생될지 의심 한다. 그는 마음을 고쳐 먹고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천만다행으로 우연과도 같은 행운이 그를 찾아와 결심이 현실이 되었다. 니플하임에 서식하며 인간에 매우 적대적이라 알려진 토착 생명체인 크리퍼가 무슨 연유인지 미키7이 동굴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미키는 여차저차 생존에 성공한다. 그는 동료들이 벌써 미키8을 재생하진 않았으리라 실낱같은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방 문을 여는데, 설마 설마 했던 일을 맞닥뜨린다. 그의 방에는 그와 똑같은 외형을 가진 인간, 아니 익스펜더블 미키8이 자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읽었을 때 이게 뭐 그렇게 큰 일 인가 싶을 수 있다. 나 역시도 어차피 미키들은 계속해서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기에 조만간 둘 중 한 명 혹은 둘 다 사망할 확률이 높으므로 당분간만 함께 지내면 되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그곳은 어찌 되었건 우주다. 니플하임은 인간이 살 수 없는 행성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살기 풍족한 곳도 아니다. 하루 열량 제한을 둘 정도로 자원을 아껴야만 하는 공간에서 불필요한 익스펜더블의 중복은 굉장한 자원의 손실을 야기한다. 물론 복제 인간이더라도 자원 낭비를 막겠다는 명분 하에 미키를 의도적으로 죽이는 것은 매우 비윤리적으로 보인다. 여기에 작가는 미키들이 공존할 수 없는 몇 가지 설정을 덧붙여 설득력을 높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익스펜더블을 개발한 매니코바라는 인물이 개척지 중 하나인 골트에 정착했는데,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졌던 매니코바는 골트에서 자신을 수없이 복제하여 그곳을 점령했다. 심지어 가져온 자원을 다 소진하자 골트 정착민들을 납치, 살해해 자원으로 사용했다. 결국 일의 심각성을 깨달은 파홈 정부는 골트 생태계를 파괴하여 매니코바들을 사멸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 이후로 유니언 세계에선 익스펜더블의 중복을 범죄와 같이 취급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미키7은 방금 막 동굴 아래서 얼어 죽을 위험으로부터 살아났는데 이번엔 바이오 사이클러(유기체를 분해하여 재조합하는 장치, 미키7은 시체 구덩이라 표현한다.)에 던져질 위험에 처한 것이다!











 미키7의 생존기를 담은 [미키7]은 뻔한 내용이라 지루할 것이란 내 예상과(복제 인간 소재는 이미 만연했기에)  달리 읽는 내내 매우 즐거웠다. 특히 지구 이외의 행성이 배경인 점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낙관적인 주인공들의 성격이 매우 닮아서 책을 읽는 내내 앤디 위어의 [마션]이 떠올랐다. 두 책의 주인공들은 유머러스한 성격 덕분에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치더라도 독자로 하여금 피로를 느낄 만큼의 긴장을 겪기 전 긴장의 끈이 탁 풀어지는 극적인 효과를 주었다. 나는 읽는 내내 긴장과 초조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책보단 강약조절이 되어 긴장과 편안함을 왔다 갔다 하는 책을 선호하기에 그런 내 취향을 딱 저격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 해서 완벽했나?라고 묻는다면 아쉬운 점이 없는 건 또 아니다. 행성 개척을 할 만큼 먼 미래인데도 미키7이 조금 먼 동굴에 떨어졌다 해서 사령부에서 생체 신호를 받지 못한 점(행성과 행성끼리도 메시지 전달이 가능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미키8의 통신이 중복으로 접속되는 걸 감지하지 못 한 점, 그렇게 위험한 반물질을 미키들한테 들려 보낼 때 그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마샬이 위치추적기 하나 달 생각을 안 한 점 등 다소 엉성한 점들이 몰입을 방해했다. 마치 영화 [듄]을 관람한 관객들이 “의사 한 명이 방어 시스템을 전면 해제할 권한을 가지는 게 가능한가요…?”라고 반문했던 것처럼 말이다.




 SF 소설로서는 조금 아쉬운 설정들이 많았지만, 이 책의 리뷰를 적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순히 흥미로운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글의 서두로 다시 돌아가 보자. 미키 반스를 익스펜더블로 만들기 위해 교육시키던 젬마는 테세우스의 배에 대해 질문한다. 이 질문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정체성의 시발점은 어디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다. 유니언 세계관에서 익스펜더블은 “불멸”의 존재로 통칭된다. 하지만 미키 반스는 정말로 불멸일까? 익스펜더블이 되기 전의 미키 반스와 미키2, 3…7, 8은 모두 동일한 미키 반스라 할 수 있는가? 저자는 여정이 끝난 테세우스의 배가 처음의 테세우스의 배와는 전혀 다르다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같은 상황 속에서 미키7과 8은 서로 다른 생각과 선택을 한다. 가령 나샤가 통신했을 때 미키들은 서로 자기가 나샤를 만나겠다고 말다툼을 하는데 미키7은 당연히 미키8이 나샤와 성관계를 하고 싶어 그런다 생각했지만 정작 미키8은 나샤에게 음식을 얻어먹으려는 생각뿐이었던 장면, 반물질 배낭을 메고 크리퍼를 만나러 갈 때 미키들이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장면에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미키7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이 업로드한 기억에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미키7로서 살아남기를 희망한다. 그 역시 자신이 전혀 다른 테세우스의 배임을 깨달은 것이다.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진행한 저자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의 의도를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복제 인간이라는 설정을 영화 [스타트렉]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스타트렉]에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체를 이동시킬 수 있는 전송기가 등장하는데, 그는 전송기가 누군가를 실제로 ‘전송’하는 게 아니라 한쪽 끝에서 사람을 녹여 다른 쪽 끝에서 완전히 똑같이 복제해 내는 시스템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동일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고 여기서 착안하여 미키 반스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나 역시도 미키7과 미키8을 동일 인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책에선 미키의 외모를 완전히 복제한 재생 신체에 미키의 기억을 업로드하지만 만일 전혀 다른 외모의 신체에 업로드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전자의 경우에서 미키들이 모두 동일하다고 주장했다면 후자의 경우에도 미키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이 사람 역시도 미키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이유로 그를 선뜻 미키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젬마의 질문에 미키가 조금씩 뜯어고친 테세우스의 배는 동일한 테세우스의 배라고 말했지만 완전히 부서져 처음부터 새로 만든(그러나 재료와 모양은 완전히 동일한) 테세우스의 배는 테세우스의 배 2호라고 답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막연히 생각한다. 아마도 세포 하나하나가 직접 죽음 체험했던 미키와 이제 막 재생되어 오로지 업로드 된 기억으로만 죽음을 경험한 미키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같은 사람일 수 없다고 말이다.




 [미키7]은 이런 철학적 질문 외에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유니언 세계관에서 마샬과 같은 종교인들은 ‘나탈리스트’라 불리는데, 그들은 익스펜더블을 혐오하기에(진짜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여) 바이오 사이클러에 던져 넣는 일 따위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나탈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익스펜더블을 불가촉천민 즘으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는 이미 만연하여 니플하임에서 미키는 비자발적으로 외톨이가 되었다. 머나먼 미래에서도, 지구가 아닌 먼 우주에서조차도 계급 사회는 지속되는 것이다. 또 미키가 역사가라는 배경을 가진 덕분에 앞서 언급했던 골트 행성의 비극이나 토착 생명체와의 공생에 성공한 사례, 또는 개척에 수없이 실패한 사례와 같은 과거가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오늘날 지구의 현대 사회와 맞닿는 지점이 꽤나 많다. 내가 [미키7]이 아쉬우면서도, 그래도 좋은 책이라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저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단순 재미만 추구하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현재 우리의 삶과 접목시켜 생각해 보는 순간을 필연적으로 자아내는 책이기에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키7]을 접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 역시도 이 책이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이 된다는 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읽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계층 사회, 부의 격차, 무능한 정부 등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블랙 코미디 영화로 변모시키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봉준호 감독이야말로 이 작품에 적격자라는 확신 말이다. 영화는 미키17의 이야기로 무려 미키가 열여섯 번이나 죽는다는 설정인데, 열여섯 번이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지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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