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제 발리(Bali)를 곁들인
얼마 전 여름휴가로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을 다녀왔다. MBTI가 OOOJ인 나는 나이가 들면서 계획적인 성향이 많이 희석된 것인지, 지난한 회사 생활에 심신이 매우 피곤했던 탓인진 모르겠지만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한 채 무계획 발리 여행을 떠났다.
사실 발리 여행은 내 인생 두 번째 해외여행이다. 그간 돈이 없어서, 돈이 생기고 난 후부턴 시간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다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두 번째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인데, 처음 홍콩 여행 때도 그렇고 이번 발리 여행 역시 다녀오고 나니 내게 가장 부족했던 건 돈도 시간도 아닌 정작 용기였구나를 깨달았다. 첫 여행 땐 “해보고 나니 별거 아니네”의 용기였다면, 두 번째는 “역시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용기다. 아직 발리뽕에 취해있어 그럴지 모르겠으나 두 번째 용기는 내게 정말 의미 있다. 몇 개월을 멀리했던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게 만들 정도로!
첫 해외여행 땐 뼛속까지 J성향의 DNA가 새겨진 M과 함께 동행해서 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계획하고 이렇게 바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게다가 M은 해외여행 경험이 많아서 내 입장에선 무료 가이드 투어를 받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돌이켜보면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당시엔 마음 한편에서 ‘생각보다 해외도 별거 없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떠올랐다.(물론 홍콩은 휴양지가 아니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겠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아 다음엔 꼭 다른 분위기의 나라를 가보아야지 생각하던 차에 팬데믹이 발생했고, 직업 특성상 코로나 감염에 매우 예민해져 해외여행에 대한 갈망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일에 치여 지내다 보니 여행 욕구는 점차 희미해져만 갔고 이사 준비에 여념이 없던 나는 이제 돈과 시간 모두가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이따금 진탕 술을 마시고, 가끔은 교양도 챙겨야지 다짐하며 독서모임도 나가는 그런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갑작스러운 ‘신’의 제안으로 발리행이 결정됐다. 전개가 조금 뜬금없지만 푹푹 찌는 한국의 무더위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 급하게 항공권을 예매한 후 우리는 약 3주 만에 발리로 떠났다. ‘신’은 내 오랜 친구인데, 이 친구 역시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데다 영어 실력까지 출중하여 나는 이번 무계획 여행이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의지할 곳이 있으니 아무 걱정 없이 안심했다. 그런데 ‘신’은 이걸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다. 발리에 도착해서 처음 3박 4일은 우붓(Ubud)이라는 내륙 지역을 여행했는데 한적한 숲 한가운 데라 내내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신‘과 함께 트래킹, 요가 등을 체험했다. 내내 붙어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를 잘하는 ’신‘이 모든 의사소통을 해결해 주었고 이번에도 나는 가이드 투어 느낌을 받았는데, 동시에 ’신‘이 조금 지쳐하는 느낌 역시 받았다. 결정적으로 발리 여행 나흘째 밤, 환전에 익숙지 않아 ATM 앞에서 서툴러하는 내 모습에 ’신‘이 답답해하는 걸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신’을 위해서도, 또 나를 위해서도 우리 조금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구나라고. 이 생각을 한 바로 다음 날부터, 운명의 장난인지 뭔지 내내 같은 음식을 먹어왔음에도 ‘신’에게만 악명 높은 발리밸리가 찾아왔다. 동남아시아 여행자들에게 종종 찾아오는 물갈이, 배탈 말이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배탈과 함께 나의 혼자 여행도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정말 당황스러웠다. ‘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되는 한편, 발리까지 와서 앞으로 쭉 혼자 놀아야 하다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렇지만 7박 8일 중 무려 절반의 시간이 남았는데 옆에서 간호만 하며 지낼 순 없으니(물론 열심히 간호를 한다 해서 상태가 나아질 리도 만무했다. 그저 시간과 지사제, 물만이 ‘신’에게 도움이 되었다…) 혼자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첫날은 꾸따(Kuta) 해변을 구경하다 인도네시아 전통 꼬치구이인 사테(Sate)를 사 먹었다. 그 후에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갑자기 오토바이 드라이브가 하고 싶어 굳이 굳이 멀리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 옷처럼 둘러메거나 비치 타올로 사용할 수 있는 사롱(Sarong) 가게를 갔다.(발리는 교토체증이 매우 심하기에 대부분 오토바이를 택시처럼 잡아 탄다. 이게 또 꿀잼이라 종종 애용했다.)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혼자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게 익숙한 홀로족이지만 정작 국내에서 조차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혼자가 된 첫날은 내가 가장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들로 꾸렸기에 익숙하고 즐거웠지만, 문득 발리에서까지 익숙하게만 지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어 둘째 날은 서핑 스쿨을 예약했다.
서핑은 발리에서 뿐만 아니라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해봤다. 멀리서 바라본 서핑은 적당한 파도가 오기까지 길고 긴 시간을 기다리다 잠깐 일어서 파도를 맛본 후 어김없이 바닷속을 나뒹굴며 짠물을 한 움큼 삼키는 그런 스포츠였기에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발리 해변의 파도는 이런 나에게도 서핑을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심어줄 정도로, 왜 서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서핑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남들에겐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발리에서의 서핑은 나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수영도 못하고, 결정적으로 영어도 잘 못하기 때문에….
전 날 밤 호기롭게 서핑 강습을 예약하고 막상 강습 1시간 전이 되자 혼자서, 그것도 영어로 강습을 받을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찔끔 났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해변을 갔지만 다행히도, 아니 놀랍게도 이 날 서핑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되었다. 걱정한 것이 무색하리만치 그간 토익 시험으로 단련된 나의 리스닝 실력에 생존 본능이 더해지니 귀가 확 트였다. 물론 강사가 나를 배려해 쉬운 말로 돌려 돌려 설명해 준 덕분이겠지만, 그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자 어디선가 자신감이 마구 솟아났다. 무엇보다도 나를 가르쳐준 강사인 ‘라띠’가 자꾸 넘어지는 나에게 “Don’t push yourself!”라는 말과 더불어 “너 정말 멋져 지금, 너를 가르쳐서 행복해, 서핑할 때 인상 찌푸리지 말고 꼭 웃으면서 해.“ 등등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들을 계속 귓가에 때려 넣어주어(정말 때려 넣듯이 외쳤다.) 바닷물을 왈칵왈칵 마셔가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1시간 반동안 쉴 새 없이 서핑하고 나니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여 기진맥진했지만 나는 정말이지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게 확실하다. 나중에 ‘라띠’가 서핑하는 내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었는데 해변을 뒹구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내 모습이지만 너무 행복해 보여 다시 또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는 사진들이었다.
서핑을 다녀온 후에도 ‘신’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온 음료와 약을 사다 준 후 내일은 조금 나아지길 기도하며 잠자리에 누워 나는 또다시 혼자 여행 계획을 세웠다. 발리로 여행지를 결정하고부터 줄곧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무조건 스노클링은 해봐야지 결심했었다. 그래서 ‘신’과 스노클링 성지라 불리는 누사페니다(Nusapenida) 섬으로 투어를 가야지 생각했는데 그녀가 아프자 이 모든 건 물거품이 돼버렸다. 스노클링 투어는 대개 작은 통통배를 빌려 타야 해서 최소 인원이 정해져 있다. 혼자서 아예 못 가는 건 아니지만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에 섬 투어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슬펐지만 ‘신’이 “이번이 마지막으로 발리 여행온 건 아니잖아.”라며 다음을 기약하자고 다독여주어 위로가 되었다. 그렇지만 스노쿨링 자체를 포기할 순 없었기에 적당한 가격대로 혼자 다녀올 수 있는 스노클링 투어를 신청했다.
‘신’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섬은 아니더라도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곳을 혼자 다녀올 생각에 또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호텔 픽업 서비스가 제공되어 내 또래의 드라이버가 날 태우러 왔는데, 이 친구가 또…말이 매우 많아서 도망칠 곳 없는 2시간의 영어 리스닝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스피킹까지 곁들인….
굉장한 인싸인 드라이버 ’싼‘덕분에 우리는 꼬박 두 시간을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싼’은 궁금한 게 참 많은 사람이었다. 한국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온갖 신상 정보를 다 털린 후에야 빠당바이(Padangbi)라는 마을에 도착했고 이후엔 “싼”과 헤어져 전문 다이버들을 만나 스노클링 방법을 배웠는데 “싼”과의 반 강제적(?)인 대화 덕분에 입과 귀가 많이 트여 다이버들과의 소통 역시 전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수영을 못 하는 것인데, 이 것 역시 구명조끼가 있어 스노클링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물론 맨몸으로 뛰어드는 백인들 사이에서 홀로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 간지가 조금 떨어졌지만.
같은 배를 타고 스노클링하러 가는 일행들 중에는 호주 대가족과 신혼부부가 있었다. 그 당시엔 스노클링할 생각에 잔뜩 긴장하여 딱히 그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호주 놈들이 나를 따돌렸던 것 같다. 대화를 걸어도 내 말을 무시한다거나 나를 제외하고 자기들끼리만 사진을 찍는 둥 완전히 날 투명인간 취급했다. ‘내 발음이 알아듣기 힘든가?’ 생각하며 혼자 멀뚱멀뚱 떠다니니 다이버들이 정말…민망할 정도로 나만 챙겨주었다. 1분에 한번 꼴로 알유오케이? 라 물었고 손잡고 끌어주며 니모와 도리를 만나게 해 주고 물속에서 도넛모양의 공기방울을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정말 친절한 사람들. 다이버들과 함께 말 그대로 에메랄드 빛 바닷속을 유영하며 온갖 물고기를 만났다.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위로는 내가 어쩌다 발리에 와있는지 조차 잊고 온전히 물고기들과 하나가 되어 물의 흐름에 집중하게 해 주었다. 인종차별주의자 호주 놈들이 아니었으면 스노클링이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을 텐데.
두 시간의 스노클링이 끝난 후 나를 다시 호텔로 데려다 줄 ‘싼’과 재회했다. 또다시 강제 귀와 입이 트이는 영어 공부를 할 생각에 피곤이 몰려왔는데 뜬금없이 ‘싼’은 무료 투어를 시켜주겠다며 이름 모를 검은 모래가 깔린 해변에 들러 내 사진을 찍어주었고 사찰 구경도 시켜주었다. 전 날, 서핑 도중 목이 마르지만 물을 사러 가는 게 귀찮아 가만히 앉아만 있자 ‘라띠’가 자기 돈으로 물을 사다 줬었다. 그리고 오늘 혼자인 나에게 특별히 마음 쓰며 챙겨준 세 명의 다이버들과 ‘싼’까지 만나고 나니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발리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 나에게 친절한 거야?”
진지한 내 질문에 ‘싼’은 막 웃더니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인도네시아는 다종교 국가로 인도네시아 국민이라면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종교를 가져야만 하는데 ‘싼’은 힌두교 신자라 ‘카르마(Karma)’를 믿는다 했다. 짧은 영어로 알아듣기엔 어려운 개념이었지만 대충 자신의 행실의 결과가 업보가 되는 윤리적 인과관계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려 노력한다고. 덧붙여 내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더 친절하고 싶다는 기분 좋은 대답까지 얹어주었다. 참 신기하다. 나 역시 인과응보를 믿는 사람인지라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하고자 노력한다. 내가 쓴 글들 중 이런 내 신념이 드러나는 글이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품어온 신념이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8시간이 넘게 떨어져 있는 발리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런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 말해주니 참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대화를 계기로 돌아오는 길은 실없는 농담들이 아닌 나름 진지한 대화들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짧은 영어로 어떻게 그런 주제의 대화를 나누었는지 신기하다. 역시 마음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한다는 진부한 이야기가 진짜인가 보다.
다행히 다음날부터 ‘신’의 상태는 많이 나아졌다. 비록 여행 마지막 날에서야 겨우 같이 다닐 수 있어 아쉬웠지만 혼자만의 삼일이 정말 꽉 찬 하루하루였던지라 행복이 충만했다. 같이 해변도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나는 공항으로, ‘신’은 다른 지역으로 각자 돌아섰다. 그렇다. 마지막 도전은 혼자 귀국하기였다.
‘신’과 나는 휴가 일정이 달라 7박 8일을 함께 한 후 내가 먼저 귀국하기로 했었다. 다들 귀국이 뭐 별 건가라고 생각하겠지만 해외여행 경험도 별로 없고 인천 공항도 아닌 타국의 공항에서, 심지어 직항도 없어 베트남 경유를 해야만 했기에 정말… 정말 많이 긴장했다. 나이 서른에 이런 걸 긴장했다고 고백하는 게 조금 부끄럽지만 도전과 용기가 글의 주제인 만큼 이 것마저 용기 내 고백해 본다. 결과적으론 이번 여행에서 내가 시도했던 많은 도전 중 ’홀로 귀국하기‘는 제일 난이도가 낮았다. 귀국행이라 그런지 주변이 온통 한국인들인지라 눈치껏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인천공항에 당도해 있었고 남은 건 엄청난 피로뿐이었다. 막상 해보면 참 별거 없는데 또 겁부터 먹었지.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항상 기분이 안 좋았다. 또다시 거지 같은 현실로 돌아와 회색 인간처럼 일 할 생각에 우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발리에서 돌아오고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우울하지 않았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영어 회화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를 ‘싼’과 같은 인연들과 언어의 장벽 때문에 서로를 더 알아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수영과 요가를 배워보려 한다. 요가 에피소드는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요가 클래스 역시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다. 요가는 내가 술도, 사람도 그리고 책도 아닌 운동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구나를 일깨워주었다. 일주일간의 여행으로 하고 싶은 게 세 가지나 생기다 보니 우울하기보단 기대감에 설레었다. 정말 과정부터 결과까지 말 그대로 도전이 테마인 여행이 아닐 수 없다.
무더운 여름, 나는 이번에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한 발자국 성장했다. 갑자기 박상영 작가의 “1차원이 되고 싶어”가 다시 읽고 싶어 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