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기가 온 지 2년쯤 된 것 같다. 첫 1년은 아닌 척, 삶이 즐거운 척 연기하며 잠깐이면 다 지나가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노력했고 그 후 1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인태기에 접어들었다. 갱년기를 씨게 앓은 우리 엄마가 들으면 그래서 그놈의 인태기가 뭔데 맨날 자빠져 누워있냐고 질책할 나의 인태기는 다음과 같다.
1. 일단 인생이 그냥 노잼
의욕이 없다. 원래부터 적성에 안 맞았기에 직장생활은 한결같이 노잼이었지만 정~말 가끔씩 성취감이나 뿌듯함 따위 정돈 느끼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거 정말 하나도 없다. 한 6개월 줄기차게 다니며 취미 붙였던 요가도 감흥이 사라졌고 글 쓰는 건 두말할 것 없이 노잼 중에 노잼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숏폼이 인생의 낙인 수준.
2. 그러다 보니 매일 여행 생각만
일상이 노잼이다 보니, 일상에서 즐거움도 행복도 찾지 못해 항상 단기간의 쾌락만을 좇게 된다. 술 왕창 마시기, 배달 음식 시켜 먹기, 해외여행 가기 등등. 의욕 넘치던 시절엔 돈 모으는 재미에 빠져 여행 따윈 생각도 안 했는데 이제는 그런 도피 행위가 아니면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3. 밑도 끝도 없이 게을러짐
원래도 뭐 부지런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대청소를 했는데, 요즘은 그냥 방치다. 눈에 보이는 데만 슥슥. 내 몸은 그리도 깔끔 떨면서 정작 내 몸을 뉘일 공간은 청결하지 않다. 사는 게 재미 없어지면서 가장 먼저 놓아 버린 건 나 자신이다.
뚜렷한 이유도 계기도 없다. 그냥 어느 순간 찾아온 노잼시기는 걷잡을 수 없이 길어져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헷갈리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2년쯤 되니 인태기고 나발이고 그래도 사람답게는 살아야지 싶어 억지로 경제 스터디도 새로 파고 운동도 요가와 헬스를 병행해 보았다. 겉으로만 대충 보면 생산적이고 부지런해 보인다. 하지만 마음은 텅 비어있다. 텅 빈 나를 채우려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열심히 모아 맞춰보지만, 행복이라는 단 한 조각만 사라져 끝끝내 퍼즐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인가? 아니다. 죽고 싶지는 않다. 재미없어 뒤질 것 같은 직장생활도 그냥 이렇게 살아서 다니고 싶다. 그냥 예전처럼 행복이란 걸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인들에게 살살 돌려 말하며 고민 상담을 했더니 하나같이 하는 말이 주식에 재산을 좀 꼬라박으면 재미고 나발이고 치열하게는 살아질 거란다. 눈뜨자마자 그리고 감기 직전까지도 주식창만 보면서 이 돈을 어떻게 불리지 고민하면 인태기가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그녀들의 조언. 이것들이 남의 고민이라고 쉽게 말해….
당장은 해결책을 전혀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도 단기간 쾌락으로 잠깐 나를 속여보려 한다. 여름휴가 핑계로 놀러 갔다 오면 이번 여름은 그런대로 빨리 보내버릴 수 있겠지. 갑자기 눈물이 조금 난다. 그렇게 여름을 좋아하던 내가 여름에 아무런 감흥이 없어져버리다니. 이거 저거 하다 보면 여름이 빨리 끝나겠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여름을 보내버릴 준비만 하고 있다. 나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지금 내 모습이 너무 낯설고 보기 싫어 마음이 더 비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