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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Oct 12. 2023

2박 3일 동안 영화 여섯 편 부수기(2)

영화는 진정 대중문화


 내 지인들 중 영화와 책을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치 내가 엄청난 영화광, 독서광처럼 들리겠지만 말 그대로 영화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로 드물다는 뜻이다. 모든 게 짧고 간결해지는 세상 속에서 영화와 책이 인스타 릴스와 유튜브 쇼츠를 이기기란 매우 힘들어졌다. 하물며 영화나 드라마를 직접 보는 것보다 유튜브 요약본을 보는 걸 선호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세상이니까. 세상이 요지경이다 보니 내 취미 생활을 지인과 함께 공유하고 즐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고, 이 고독함을 달래고자 독서 모임을 나가기 시작했다. 올봄엔 독서 모임을 통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존재를 알게 되어 난생처음 도서전을 다녀왔는데 그때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내 경험상 독서는 상당히 마이너한 취미가 분명한데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런 내 확신을 단숨에 깨부쉈다. 느지막이 방문한 코엑스에는 책에 환장한 도서전 방문객들 덕분에 안 그래도 높은 밀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졌다. 엄청난 인파에 하도 어깨를 부딪혀 거의 어깨를 접고 다녀야만 했고 유명 작가가 나타나면 다들 눈이 뒤집힌 채 사인을 받으려 혈안이었다. “광적이다”라는 워딩 말곤 그들을 더 적절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코엑스를 빼곡히 채운 광기 어린 리더(reader)들을 만나고 나니 독서란 참으로 대중적인 취미 생활이구나 싶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역시 서울국제도서전과 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생각 없이, 아무런 에너지 소비 없이 즐길 수 있는 킬링타임용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단순한 재미로서의 기능을 넘어선, 영화 “언어”로서의 역할을 하는 영화를 특히나 좋아한다. 슬프게도 이런 영화들은 상영관이 극히 드물어 경기도민인 나는 압구정 cgv까지 영화 여정을 떠나곤 한다. 상영관만 적은가? 취향이 통하는 지인도 드물어 어느새 나는 혼밥, 혼카페보다도 혼영에 더 익숙해졌다. 영화제는 이런 나에게 동질감, 동지애, 뭐 아무튼 외로움을 다독여주는 그 모든 것의 집합이다. 영화제에 간다고 하면 “연예인 보러 가냐?”라고 묻기 바쁜 내 지인들로부터 벗어나 나와 비슷한 마이너 취향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런데 웬걸. 영화는 아무리 봐도 마이너가 아니었다. 이번 부국제 때 운이 좋아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 <괴물>을 야외극장에서 보았는데 과히 장관이었다. 4000여 명의 영화광들이 다 어디 숨어있다 일제히 모여 숨죽인 채 영화를 보는데, 새삼스레 영화란 참으로 대중문화가 아닐 수 없구나 싶었다. 책과 영화는 나만 모르게 이미 메이저였다. 아니, 내 주변에 드물다해서 마이너로 취급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아무튼 그렇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괴물>을 시작으로 나는 2박 3일 간 총 여섯 편의 영화를 보았고, 1편에 이어 감상했던 영화들의 짤막한 감상평을 남겨보겠다. 조금의 스포도 허용하지 않는 분이라면 여기까지만 읽으시길~!








3. 니콜라 필리베르-파리 아다망에서 만난 사람들

 사실 이 영화는 감상평을 남겨도 될까 고민이 되었다. 보는 내내 너무 졸아서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의심되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 1시간 전 갑자기 취소표가 생겨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라곤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이라는 것 하나만 안 채로(영화제의 묘미 1) 다급히 예매했는데 알고 보니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아다망은 파리의 병원에서 운영하는 정신질환 센터로 영화는 센터의 환자, 간병인, 의사 등 모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회의를 하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참여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관찰하듯 보여준다. 아다망이 정신질환 센터라는 걸 몰랐다면 일종의 문화센터로도 보인다. 감독은 정신질환 센터 속 삶 역시 센터 밖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반복적으로 일상을 비추고, 영화의 처음과 끝을 문을 여는 아다망 씬으로 배치한다. 이것이 문제였을까…?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하루가 계속해서 연출되다 보니 졸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영화 볼 때 잠드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필사적으로 참아보았지만 옆자리 사람들이 함께 조는 걸 보니 갑자기 긴장이 확 풀리면서 졸린데 졸면 또 어떠냐란 생각에 필사적인 태도를 접었다.(영화제의 묘미 2…) 그러니까 구구절절 변명을 달았지만 결론은 이 영화에 대해 좋았다 나빴다 내가 왈가왈부하기가 참 멋쩍다는 것이다. 그냥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아다망의 한 환자가 인터뷰하던 내용이다. 그는 열여덟에 발병하여 50대가 된 현재까지도 약이 없으면 일상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아다망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그곳이 왜 필요한지를 말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아다망이 없었다면 과연 그가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아다망이 없는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들은 다들 어떤 방식으로 버텨내고 있을까 졸린 와중에도 착잡한 생각이 마구 들었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지루해 졸았던 건 어쩌면 그들에겐 소중한 아다망의 일상이 내게는 단지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으로만 느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4. 쥐스틴 트리에-추락의 해부

 이번 부국제 영화 중 나의 최고 기대작이었던 <추락의 해부>. 아다망 다음에 봐야 했기에 나른함을 떨치려 커피를 정말 말 그대로 때려 마시며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그럴 필요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했다. 영화는 산드라라는 여성의 남편이 의문의 추락사를 하며 시작된다. 부검 결과 타살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워 결국 같은 공간에 있던 유일한 인물인 산드라가 기소된다. 법정에서 유무죄를 밝히는 과정 중 의도치 않게 산드라의 모든 민낯이 모두에게, 심지어 아들에게까지 낱낱이 까발려지는데 마치 산드라의 사회적 추락이 “해부”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감독은 재판 중 산드라와 그녀의 아들 다니엘의 모습을 반복해서 클로즈업 쇼트로 보여주며 재판에 이기고 지는 것 따위가 아닌 그들의 고통스러운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진짜 그녀가 범인인지 아닌지 관객으로 하여금 궁금하게 만드는 동시에 모호한 진실만을 보여주며 감독은 우리에게 “어떻게”를 알 수 없다면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할 차례임을 알려준다. 또 구구절절 쏟아냈지만 결론은 역시나 너무 좋았다. 작년에 읽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 이후로 작품을 제대로 관통하는 제목을 만난 적이 없는데 <추락의 해부>가 그 계보를 이었다. 다 보고 난 후 머릿속이 ‘댕-’하고 울렸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산드라가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에만 몰두했는데 그런 나를 <추락의 해부>라는 제목이 정신 차리라며 후드려 팬 느낌이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그만큼 영화가 인상 깊었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과 폭풍 수다를 떨고 싶지만 슬프게도 그럴 사람이 없어 이렇게나마 감상평을 쏟아내 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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