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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Oct 11. 2023

2박 3일 동안 영화 여섯 편 부수기(1)

나의 세 번째 부산국제영화제

 매년 이맘때쯤이면 부산 호텔들의 숙박비가 거의 두 배가 넘게 훌쩍 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영화제로 벌써 스물여덟 번째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는 영화 좀 본다 하는 사람들이면 어김없이 부산을 찾아가게 만드는 영화제다. 부국제 일정이 공개되면 너도나도 부산 숙소를 서칭하며 조금이라도 가격이 저렴할 때 재빨리 예약하는데, 나 역시 지난 두 번의 바가지 경험으로 일정이 뜨자마자 호텔을 예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역시  바가지 씌워진 금액에 피눈물을 머금었다.


 나의 세 번째 부국제는 첫째 날 첫 영화를 제외하곤 전부 혼자였다. 영화제라는 컨텐츠가 뚜렷하다 보니 부산 솔플이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솔플을 하다 보면 약간의 현자타임이 찾아올 때가 있어서(예를 들어 국밥집에서 침묵의 식사 중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가?…“와 같은 생각들이 들 때가 있다.) 둘째, 셋째 날을 영화로 꽉 찬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나는 2박 3일간 총 여섯 편의 영화를 보았고 문득문득 가슴이 벅차오르게 만드는 이 영화들을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아직 영화제가 진행 중인 만큼 스포 없이 짤막하게 감상평만 남겨보겠다.






1. 고레에다 히로카즈-괴물

 고레에다 감독은 아마 다들 한 번쯤 들어보았을 텐데, 작년에 개봉했던 <브로커>의 감독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브로커>를 비롯하여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지 않았었는데(<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한 번 시도했었으나 중간에 잠들어버렸다.) 이번에 <괴물>을 보기 전 어떤 스타일의 영화일지 공부해 볼 겸, 부산에 내려가기 직전 <브로커>를 봤다. 나름대로 재밌었다. 다만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이 배경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감독이다 보니 은은하게 일본 감성이 깔려 불쾌한 골짜기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인신매매라는 소재를 “가족”이라는 감동적인(?) 개념 하나로 가려버리는 점도 묘하게 불쾌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봉 당시에도 이런저런 점에서 혹평을 받았고 고레에다 감독의 팬들조차 감독의 최대 망작이라는 후기를 올리곤 했더라. 유명 감독의 영화인지라 예매할 때 고생깨나 했는데…. 큰 기대는 말아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첫 날, 첫 영화로 보게 된 <괴물>은 내 세 번째 부국제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가 되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영화는 같은 학교, 같은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아이의 엄마,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 시점에서 차례로 보여주며 사건의 전말을 밝힌다. 각 시점마다 마음이 계속 오락가락하는 것이 마치 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던 느낌이었다. 이놈도 저놈도 다 수상하다 여길 즈음 사건의 당사자인 아이들 시점의 시퀀스가 진행되면서 나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같은 씬을 각 인물의 시점으로 교차하여 연출하면서 그 안에 숨겨진 각자의 진실과 감정이 밝혀질 때, 그리고 비로소 모든 것이 해소될 때 영화와 함께 나 역시 감정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특히나 이 영화는  4000여 명이 야외극장에서 함께 관람했기에 그 공간이 주는 특별함이 더해졌다. 그 많은 사람들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자동차 소리 속에서 숨죽여 영화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더 영화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가족 영화로 유명한 감독인지라 이런 소재를 다룰 줄도, 이렇게 잘 다룰 줄도 몰랐다. 취향에 맞는 감독의 발견과 극장의 필요성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던 행복한 경험이었다. 아, 그냥 다 필요 없고 국내 정식 개봉하면 다들 꼭 보시길….



2. 데이빗 핀처-더 킬러

 이번 부국제 중 나의 두 번째 기대작이었던 <더 킬러>. 매우x100 재밌게 본 <나를 찾아줘>의 감독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다. 슬프게도 <괴물>과 달리 이 영화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데이빗 핀처의 스타일을 안다면 공감할 텐데, 영화가 굉장히 트렌디하긴 하다. 카메라 워킹, 음악, 주연 배우의 외모까지도. 그런데 그게 전부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각본에는 왜 트렌디함을 뺐는지…?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행동과 대사가 내게는 너무나 설득력이 없었다. 극 초반부에 다소 긴 주인공의 독백이 이어지는데, 이 화려한 개소리(?)는 뭘까란 생각이 들었다. 빈 수레가 요란했던 영화. 딱 이 한 줄로 설명할 수 있겠다. 넷플릭스 제작이니 극장 개봉하더라도 그냥 집에서 즐기길 추천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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