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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 원작으로 해부하기

미키17 (2025) - 봉준호

by 단비

약 2-3년 전, 브런치에 에드워드 애슈턴의 <미키7>을 읽고 책리뷰를 올렸었다. 리뷰 글을 작성하면서 봉준호가 영화화한다던데 영화로 만나는 미키는 어떨지 기대된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영화가 열흘 전 개봉해 한달음에 보고 왔다. 요즘 글쓰기 플랫폼을 블로그로 옮겨간 탓에 브런치는 잘 안 들어왔지만 <미키17>에 대한 리뷰만큼은 <미키7> 리뷰를 열심히 작성해 올렸던 브런치에 꼭 올려야지 싶어 찾아왔다.



<미키7> 리뷰글 → 일곱 번째 죽음이지만 그래도 죽음이 두려운 건











줄거리에 대한 리뷰는 이미 차고 넘치기에 책과 영화의 차이점을 중점으로 살펴보겠다.




1.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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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세계관은 동일하다. 디스토피아가 된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기 위한 개척단에 익스펜더블이라는 직업으로 합류한 미키 반스. 휴먼 프린팅 기술로 계속해서 되살아날 수 있는 미키는 죽음의 위험이 있는 업무에만 투입되는데, 원작의 제목이 <미키7>인 것과 달리 영화의 제목이 <미키17>인 이유는 봉준호 감독이 무려 미키를 열 번이나 더 죽였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감독~.


익스펜더블은 윤리적 이유로 멀티플, 즉 중복 프린팅될 수 없다. 멀티플이 금지된 계기는 원작과 영화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원작에선 매니코바라는 인물이 골트 행성에 정착하여 거기서 토착민들을 자원으로 이용해 자신을 끝없이 프린팅 하는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멀티플이 금지되었다. 영화에서는 동일하게 매니코바를 등장시키지만 매니코바가 지구에서 자신을 프린팅 하여 살인사건에 이용한 것이 밝혀져 멀티플이 금지된 설정이다.


짧은 두 시간 남짓 되는 영화에 원작의 골트 행성 사건을 전부 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사건을 축소시킨 느낌이다. 아무래도 행성 차원의 종족 말살 사건이 두어 명의 살인 사건 정도로 축소되다 보니 영화 스토리상 멀티플이 금지된 배경까지는 납득이 가능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마샬이 살아있는 미키들을 곧바로 폐기 처분하려 드는 것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미키의 경우는 사고로 인한 멀티플인 만큼 어느 정도 사건의 경위를 참작해 줄 법도 한데 말이다.











2. 미키의 성격

IMG_0761.jpg?type=w966 포스터 속 표정 진짜 바보 멍청이 같음

영화 속 미키17은 한눈에 봐도 많이 모자라 보인다. 표정은 얼뜨고 성격은 맹하고. 책 속 미키7은 그런 바보(?)스러운 캐릭터는 아니다. 똑똑하진 않지만 앤디 위어의 <마션> 주인공 마크 와트니처럼 고난의 순간에도 유쾌하고 가끔은 뻔뻔하고 이기적이기도 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표현된다. 책을 통해 미리 상상한 미키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캐릭터인지라 영화를 볼 당시 다소 당황스럽긴 했다.(포스터 속 멍청한 표정을 봤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하지만 영화 속 바보 같은 미키는 또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이 불쌍하고 바보 같은 주인공을 보다 보면 알 수 없는 애틋함과 안쓰러움에 속절없이 빠져들어 자꾸 마음이 쓰인다.


미키17뿐만 아니라 18 역시 원작과는 매우 다르다. 원작에서 그 둘은 약간의 의견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17과 18은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기에 성격적 특성은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18의 성격을 17과 정 반대로 설정해 놓았다. 나샤가 17을 순한맛, 18을 매운맛이라고 표현한 걸 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똑같은 기억을 심어놓은 익스펜더블이라 하더라도 그 둘이 엄연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성격적 차이의 극대화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의도는 알겠으나 개인적으론 불필요한 장치라 생각한다. 마치 미키18은 조금씩 수리된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 완전히 분해했다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조립한 테세우스의 배 제2호라고 관객한테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었더라도 익스펜더블이라는 설정 자체가 각각의 미키가 동일한 미키가 아닐 수 있다는 것쯤은 자연스레 반추해 볼 수 있을 텐데.













3. 나샤의 활약

IMG_0759.jpg?type=w966 너네 정말 귀여워

원작과 동일하게 미키에게는 개척단 내에서 사귄 여자친구 나샤가 있다. 나샤는 미키가 익스펜더블임에도 미키를 정말 사랑한다. 죽어가는 미키도, 다시 태어난 미키도. 원작에선 그냥 그 정도의 연인으로써만 등장했다면 영화에선 나샤의 역할이 훨씬 확대되었다. 이는 원작과 영화의 결말이 확연히 다른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나샤는 거의 미키의 구원자다. 미키를 사랑해서 미키를 죽이려 든 티모에게 눈이 돌아 그를 죽일 뻔하고, 자신의 안위가 위험한데도 미키를 핍박하는 마샬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기도 하고, 이후 직접 위원회에 나가 미키의 인권을 위해 니플하임의 휴먼 프린팅 기술을 폐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힘이 세고 멋있다. 아기 크리퍼가 매달린 밧줄을 이로 문채 뛰어들어 일파 목을 조를 때 진짜 반해버렸다. 맨날 줘터지고, 어릴 때 기억으로 엉엉 울고, 자기를 괴롭히는 마샬에게 바보처럼 고맙다고 말하던 미키17과 매우 대비되는 파워풀한 여성이어서 더더욱 멋있고 더더욱 둘이 잘 어울렸다. 멋진 여자 나오는 거 정말 짜릿해….












4. 마샬이라는 캐릭터


영화를 보면서 마샬과 그의 아내 일파가 정말 꼴 보기 싫었는데, 아마도 영화에선 그들이 그냥 믿도 끝도 없는 관종 악인들처럼 비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에너지 낭비를 극도로 혐오하기에 섹스마저 금지해야 한다던 그들은 뭔 놈의 소스에는 그렇게들 집착하는지. 미키가 잘못할 때마다(사실 잘못도 아닌 게 빡침 포인트) 식사 배급을 반으로 줄이는 처벌을 내리는 반면에 그들은 우아하게 고기를 썰어먹으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저 인간이 개척단 대표가 된 건지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원작에선 마샬이란 인물에 보다 입체적인 특성을 부여한다. 책 속에서도 마샬이 나쁜 놈인 건 맞지만, 적어도 극단주의 정치가일지언정 니플하임 개척이라는 목표 아래 철저히 모두를 공정하게 탄압하는 인물로 보인다. 물론 나탈리스트라 불리는 마샬과 같은 종교인들은 익스펜더블이 진짜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미키를 유독 혐오하여 그를 사이클러에 산 채로 던져 넣는 일 따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는 하지만. 사실 미키에 대한 이런 악감정은 마샬뿐만이 아니다. 니플하임 개척단 내부엔 비종교인들 사이에서 가장 밑바닥의 일(죽음)을 하는 익스펜더블 신분을 마치 불가촉천민쯤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에 개척단 동료들 마저 미키를 무시하고 괴롭힌다.


이런 설정들은 단순히 마샬 캐릭터에 입체성을 불어넣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먼 미래에서조차 새로운 형태의 계급 사회가 형성됨으로써 현대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계급을 풍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마샬이 그냥 미치광이 관종 새끼인 것처럼 표현된 게 다소 아쉬웠다. 마샬은 그냥 미친놈인 게 아니라 역겨운 계급 사회의 정점이자 대표 인물인데…. 물론 개척민과 마샬 부부의 식단의 차이(소스 집착)만으로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을 표현해 주긴 했지만 그들의 행위의 바탕을 영화 속 세계관과 연결 지었더라면 더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결말이다. 당연하겠지만 원작 <미키7>은 이후 후속작이 나온 만큼 다소 열린 결말이고, 영화 <미키17>은 후속작의 느낌을 꽉 닫아주는 닫힌 결말이다. 결말에 대한 스포는 아직 상영작이기에 말을 아끼겠다. 개인적으로 두 매체(책과 영화)의 특성상 둘 다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결말을 선택한 것 같다 정도만.















그래서 영화를 추천하는지?


추천한다. 위에서 원작과 영화의 차이를 네 가지 말하면서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한 사람치고 추천한다니 어쩐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영화만으로 판단했을 때 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는 글쎄.... 그의 역량이 백 퍼센트 발휘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약간 <기생충>에서 힘을 빡준 후 <미키17>로 쉬어가는 건가? 싶은 영화였다. 봉감독의 영화 치고 굉장히 대중적으로 다가왔다는 느낌도 든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알려주고 싶은 영화적 의미를 직접적 화법으로 자꾸 거론하는 점 때문에 못 알아들을 이야기가 전혀 없달까. 어쩌면 누군가한테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는 특징이겠지만 너무 다 떠먹여 주는 영화는 약간 시시하게 느껴지기에 개인적으론 단점으로 작용했다.


<미키7>을 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나머지 '이걸 봉준호가..?' 하며 기대를 너무 했던 탓에, 재미있는 만큼 딱 그만큼 아쉬움도 공존했던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sf 덕후로써 오랜만에 단비 같은 작품을 만난 것 역시 자명하다. 그러니 '봉준호 영화라니!' 하며 너무 큰 기대감을 가진 채 보는 것도, '봉준호 영화면 찝찝하고 속을 알 수 없지 않나.'라는 식의 편견을 가진 채 보는 것도 지양하며 관람하시길.











미키가 죽는 모습을 영상으로 너무 많이 봤더니 영화를 본 당일엔 어쩐지 잠도 안 오고 미키가 계속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책으로 접한 미키의 죽음은 마냥 흥미롭고 웃기기만 했는데 말이다. 매체가 다르면 같은 사건도 상반된 감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 생각지 못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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