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Jul 09. 2024

순수 휴식 그게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 박상영

 순수 휴식이란 무엇일까? 단 한 번도 휴식의 순도에 대해서, 휴식의 질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내게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굉장히 낯선 말이다. 왜냐하면 나에겐 순도 100퍼센트가 아닌 휴식은 절대로 휴식일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휴식이란 고민도 생각도 뇌도 빼고 완연한 상태로 즐기는 게 휴식 아닌가. 순도 40퍼센트 휴식은 대체 뭘까?



 휴식의 정의면에서 박상영 작가는 나와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종족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멀리 휴가를 떠나면서도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겨가 글을 쓰고 밀린 이메일을 확인한다. 휴가지에 가서까지도 자기 직전까지 글을 쓰다 잠드는 사람이라니. 정말 지독하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박상영 작가의 첫 에세이에서도 어렴풋이 그의 워커홀릭 성향을 느낄 수 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전업 작가가 되기 전 직장 생활과 작가 생활을 병행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박상영 작가는 무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출근 직전까지 글을 쓰는, 직장인으로서 도저히 상상도 못 할 일상을 전업 작가가 되기까지 몇 년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때 역시 읽으면서 ‘이 사람 참 지독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지독한 듯하다.



 <순수 100퍼센트의 휴식>에서 박상영 작가는 여전히 불순한, 그렇지만 동시에 자기만의 순수가 깃든 “휴식”을 보여준다. 며칠 자리를 비우면 돈벌레가 한 움큼 쌓이는 레지던시에서의 생활은 끔찍하지만, 지네에게 아름답다는 찬사를 하는 엉뚱한 작가들과의 잔잔하고 따뜻한 휴식도 공존한다. 하필이면 태풍이 들이닥쳐 여행에 차질이 생겼지만 비가 오니 날이 하나도 안 덥다며 긍정 너스레를 떠는 친구들과 함께라 어이없어 터져 나오는 웃음일지라도 웃을 수 있다. 기껏 여행지까지 가서 피곤함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프로그램 출연자들보다도 많은 코멘터링을 나누면서 새삼 서로가 나이 들었음에 씁쓸해하기까지.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아닐지라도, 얼렁뚱땅, 엉망진창,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얼레벌레 휴식일지라도. 박상영 작가의 휴식은 질투가 날 정도록 행복해 보인다. 그건 아무래도 스스로가 자기만의 ‘틈’을 잘 알고 이를 채워줄 좋은 지인들을 주변에 두고 있어서가 아닐까?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읽으면서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게 참 중요하구나란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그의 불완전한 휴식엔 항상 그 불완전함을 불완전함이라 생각지 않게 해주는 친구들이 함께했다. 늘 순수 휴식만을 고집하던 나는 요즘 들어 순수 휴식이 행복하지 않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과자를 앉은 자리에서 두 봉지 까먹고 졸릴 때 낮잠을 자는 휴식이 몸은 녹아내릴 정도로 편안하면서도 마음속엔 젖은 검은 솜뭉치가 들어앉아있는 양 묵직하다. 혼자 수영을 하고 혼자 미술관을 다녀오고. 다 내가 좋아하고 나만의 순수 휴식이지만 어쩐지 텅 빈 느낌이다. 아마도 내 순수 휴식에도 작은 빈틈이 있을 텐데 나 혼자선 그것을 찾을 수도, 메꿀 수도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박상영 작가와는 반대로 나는 순도 50퍼센트의 휴식을 찾아서 떠나보아야겠다. 완벽하지 않은 휴식에서 오는 충족감을 나 역시도 느껴보고 싶기에.








 가볍게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한 책 치고 묵직한 결론을 안겨주었다. 물론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 때 읽느냐에 따라 그 무게감이 분명 다를 것이다. 한없이 행복할 때 읽으면 한없이 웃기기만 할 책이다. 일단 박상영 작가의 글빨과 개그코드가 자꾸 육성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짓말 아니고 정말 한 열 번쯤 소리 내어 웃은 것 같다. 나만의 활자 속 개그맨 박상영…. 소설가에게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소설책보다 에세이 더 많이 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와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근 몇 년간 읽은 에세이 중 개그 분야 탑 1, 2를 다투기 때문이다.(물론 내 기준 주의)



 여름휴가를 떠날 예정이라면 이 책 한 권 들고 가 조금씩 꺼내보길 추천한다. 여행 중 일행과 싸울 것 같다거나 너무 더워 화가 잔뜩 날 때마다 꺼내 읽으면 금세 캄다운 효과와 함께 웃음까지 터져 나와 다시 리셋된 마음가짐으로 여행이 가능하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2박 3일 동안 영화 여섯 편 부수기(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