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검사실 견뎌내기

어쩌다 보니 내향력 소진 중입니다.

by 단비

요즘은 많이 사회화돼서 잘 티가 안 나지만, MBTI 열풍이 불던 시절 나는 극 I, 내향형 인간이었다. 내향적일 뿐 내성적이진 않아서 학창 시절 교우관계가 힘들진 않았다. 굳이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


지금 생각하면 ‘나 진짜 사교성 없었구나’ 싶은 일화가 있다. 대학 입학 후 한 학기 동안 나름 꽤 많은 동기들과 친해졌지만, 수십 명의 동기들 중 2/3 정도는 겨우 안면만 튼 채로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나는 용건이 없으면 누군가와 굳이 연락을 주고받는 스타일이 아니라 본가로 내려온 방학 동안 친한 동기들과도 연락이 뜸했다. 그런 내게 전혀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아마 오리엔테이션 때 번호를 주고받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서로 연락한 적 없는 동기 한 명이 뜬금없이 안부 연락을 했다.


“잘 지내? 방학 잘 보내나 궁금해서 연락했어.” 따위의 메시지였고, 지금이라면 그냥 "나 잘 지내지. 너는?", "방학 잘 보내고 개강 때 보자~" 정도의 대화로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주고받았을 테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얘가 왜 나한테 연락을 했을까..?’라는 별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 답장을 주저하다 결국 답장을 안 했다. 과거의 나에게 “그냥”하는 연락이란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런 연락이 불편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은 사회화가 많이 되어 저 당시처럼 뚝딱거리지는 않는다. 이제는 내 안의 내향적 기질을 감추며 적당히 넉살 좋게, 유들유들하게 인간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은 어디 안 간다.


임상병리사란 직업을 선택한 것도 그 기질 때문이다. 뭣도 모르던 시절엔 임상병리사는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각자의 일만 하는 줄 알았다. 필요한 업무 대화만 나누고 나머지는 침묵 속 집중. 내향인인 나에게 딱인 업무 환경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취직하고 보니 그건 정말이지 대단한 오해였다.


물론 부서마다 업무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부서는 내가 상상해 온 "조용히 각자 일하기"가 가능했지만 그런 부서는 손에 꼽는다. 나의 첫 발령지인 진단검사의학과의 응급파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쏟아지는 혈액 검체들, 쉴 새 없는 동료 간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미친 듯이 걸려오는 전화들. 퇴근하고 나면 발끝부터 주둥이까지 전부 녹초가 됐다.


응급파트가 아니더라도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각자 손과 눈은 바쁜데 입은 더 바빴다. 집중 하나 흐트러지는 일없이 연애사, 육아, 간밤에 본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까지. 끊임없는 수다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일의 무료함을 달래는 방식이겠지만, 침묵을 좋아하는 내향인에겐 정말 곤욕스러운 시간이다. 오죽하면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에도 보호복을 착용하고 음압방에 들어가야 하는 결핵 검사를 좋아했다. 결핵 검사는 보통 막내에게 떠넘기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나는 기꺼이 불편한 보호복 아래서 귀중한 적막을 즐겼다.


그러니까 정말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 안 그래도 일 자체도 적성에 안 맞아 죽겠는데, 업무 환경 역시 내향인에겐 쥐약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혼자만 잘하면 장땡인 프리랜서도 아니고 어쨌든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직장을 다니는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 홀로 “내향성 타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잘 안 보는 드라마라도 챙겨보며 대화 주제를 쥐어짜고,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 와 동료들에게 나눠주며 괜히 한마디 씩 더 얹어보았다. 지금 보면 정말 별 일 아니지만, 그땐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필요성을 못 느끼더라도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반복적 행동에는 생각보다 큰 힘이 있었다. “의식적인” 대화가 반복되면서 그것은 곧 “일상적인” 대화가 됐다. 업무 중 누군가 말을 걸면 불편하고 방해가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그런 대화가 일상적으로 느껴지고, 가끔은 그런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종종 내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말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술집에서 서비스를 받으려 사장님께 너스레를 떠는 모습은 나 스스로도 오싹할 정도로 예전 같지 않다. 이게 바로 사회화된 외향성?


어른이 되면서 성격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지만 이 변화만큼은 꽤 마음에 든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안 그래도 얄팍한 내 친구 목록이 더 얇아졌고 이제는 친구를 사귀려면 노력이 필수다. 그나마 직장에서의 훈련(?) 덕분에 내향형 인간치고 나는 꽤나 사교적 인간이 되어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아 얇게나마 인간관계 폭을 유지하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결혼 생각도 없는 내가 극 내향성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종국엔 혼자가 되어 고독을 아무리 즐기는 나라도 꽤나 외로워했을 테니.


사회화된(이른바 가짜) 외향성은 여행에서 특히 빛을 발휘했다. 입 꾹 쳐 닫고 혼자 보고 듣는 여행에서 벗어나자 맛집 투어에 국한된 여행이 사유(思惟)의 여행으로 확장됐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로 같은 것을 보고 떠올린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것은 특별히 더 재밌다. 낯선 사람들의 여행 방식과 생각, 웃음을 함께 나누는 것은 이제 내가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됐다. 특히나 해외여행을 갈 때면, 어설픈 영어 실력이더라도 더듬더듬 대화를 시도하다 보니 그간 회화 공부를 전혀 안 했는대도 어쩐지 영어가 더 잘 트인다는 착각마저 든다.


인생을 정말 알 수가 없다. 지긋지긋한 이놈의 직장. 맨날천날 달력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퇴사를 꿈꾸지만, 영 얻는 게 없는 건 또 아니다. 때때로 작가가 되어 혼자 작업실에 처박힌 채 종일 타이핑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건 그거대로 직업적 성취와 기쁨이 있겠지만 그 고독을 지금의 내가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과거 내향력이 넘쳐나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가짜 외향을 장착한 지금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나는 이제 고독한 방이 아닌 누군가와의 교류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찐 외향인의 눈으로 보는 나는 여전히 그저 내향 과다 인간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냥 내향인만은 아니다. 고독과 외로움의 헷갈림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류라는 방법을 선택한 외향의 감투를 두른 내향인이다. 그걸 가짜 외향이라 부르든, 생존력이라 부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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