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본업에서 발견한 것
직장에서의 자아와 직장 외에서의 자아를 분리한다는 것이 소위 말하는 “뇌 빼고” 일 하기를 뜻 하는 건 아니다. 로또라도 당첨돼 직장을 취미로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운동도 하고 취미 생활도 즐기고, 때 되면 여행도 떠나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싶다면 결국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수적이다. 지금 버는 돈으론 나 혼자 “살아내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나는 단순히 살아내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정말이지 나답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경제적 여유를 갖춰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자연스레 부업을 떠올렸다. 한정적인 월급으로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그리고 현재의 삶까지 챙기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의 수입으론 부족하다. 때마침 MZ세대들 사이에선 부업 열풍이 불던 때라 너도나도 배달 대행, 구매 대행 등의 자잘한 부업에 뛰어들었기에 나 역시도 곧바로 부업을 떠올렸다. 남들도 다 시도해 보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을까 싶어 들여다본 부업의 세계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부업 역시 “업”이다. 당연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일을 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자아를 분리하겠다는 결심이 무색하게도 부업은 나의 여가 시간마저 일에 투자해야 했다. 운이 좋아 부업으로 괜찮은 수입이 생긴다 한들, 여가 시간이 없는 생활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겠는가? 언제 올지 모를 경제적 자유를 위해 이번엔 본업과 부업, 그리고 “진짜” 일 하지 않는 시간, 이렇게 자아를 세 개로 분리하며 기다려야 하려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부업은 혼자 고민 끝에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직장은 겸직을 금하고 있기에 함부로 부업에 종사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허가 없이 몰래 겸직을 하다 적발되어 징계를 받은 사례가 있었다.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 꽤나 번잡스럽다. 공식적인 겸직 허가는 보통 직장 상사의 결재가 필요하기에 몰래 준비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부업을 본업 직장에 알리며 시끌벅적하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보통 사기업은 부업 수입액이 본업보다 많은 경우가 아니면 절대 알 방법이 없다며 몰래 할 수 있다고들 한다. 또는 가족 명의로 한다던지…. 뭐 이런 불법(?)적인 방식들은 굳이 논하고 싶지 않으니 패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내 입장에선 부업이라는 뜬구름을 쫓기보단 현실을 뚜렷이 직시해야 했다. 내게 가장 현실적이고 쉬운 수입 증대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본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성과를 내서 연봉 협상이나 인사 고과로 보상받는 것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잘 해내서 인정받고 그 결과로 수입을 늘리는 것이 여가 시간마저 부업에 희생하는 것보다 훨씬 가성비가 낫다.(물론 능력 부족으로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여기서 논외다.)
물론 말이 쉽지, 맘만 먹는다고 곧바로 실행하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나 역시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 직장에 취업하기 전까진 이 병원 저 병원에서 계약직 막내 생활을 지속해 왔다. 매번 선임이 시키는 말단의 일만 겨우 해내곤 더 이상의 일은 관심 갖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일했고, 그렇게 일한다 한들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주는 만큼만 일할 거야.”라는 말이 입버릇이었고 그게 현명한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새로 개원한 종합병원인 지금의 직장에 취업하고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개원병원 특성상 나를 책임지고 가르쳐줄 시니어들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대부분의 일을 내가 직접 해결해야 했다. 온전히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현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는 시키는 일만 할 순 없었다.
임상병리사는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기 위한 검사를 수행한다. 내 선에서 실수가 발생하면 환자에게 잘못된 처치가 가해질 수 있으므로 항상 실수 따윈 없도록, 매 순간 긴장하며 일을 해야 한다. 나는 환자와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시간 때우기 일쑤였던 학회도 열심히 나가고 그동안 쳐다도 안 보던 전공서적을 뒤적이며 공부했다. 머리가 채워지면서 자신감도 커졌고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예전만큼 버겁지 않아 질 무렵, 나는 어느새 독립적인 직원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또 한참 뒤 정신 차려보니 나는 진단검사의학과의 가장 중요한 외부 평가인 우수 검사실 신임 인증* 피심사자로 선정되어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병원에서, 나 정도의 연차에 경험해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믿고 맡겨준 만큼 열심히 준비했고 그만큼 좋은 결과를 받았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해 인사 고과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아 매우 만족스러운 인센티브를 받았다.
*검사실의 검사 품질 향상을 위해 진단검사의학재단에서 시행하는 심사 평가
지난 세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내며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었다. 학창 시절에 조금만 더 공부를 잘했다면,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집안 형편이 조금만 더 넉넉했더라면, 용기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며 동시에 남의 탓이었다. 내 덕분인 일 따위는 없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그 반대로만 돌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다. 특히나 자기 일에 애정이 넘치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 시간이 꽤나 곤욕스러웠다. 이 모든 좌절의 굴레는 다 불만족스러운 직업에서 비롯되었다는 다소 망상적인 생각까지 할 무렵,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 본업에 몰두해 보았다.
당시의 경험은 금전적 보상을 떠나서(물론 금전적 보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게 아니었다면 열심히 해 볼 시도조차 안 했을 테니.) 내가 왜 본업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적성에 안 맞다며 때려치우는 날만을 고대하던 직업이지만, 그런 직업에서조차 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잘할 수는 있다는 것과 내 능력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본업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바꿔주었다. 지금의 나는 비록 내 일을 사랑하진 않지만 내 일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하는, 그래서 내 일이 싫지만은 않은 그런 임상병리사가 되었다. 과거에 나 자신이 쉴 새 없이 굴러가는 공장의 거대한 장비 속 작은 부품이나 윤활유 따위의, 언제든 대체가 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하던 생각의 감옥에서 스스로 벗어날 준비가 된 것이다. 결국 나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나 스스로였다.
이 글을 시작할 땐 돈을 이유로 본업을 열심히 해야 한다 말했지만, 돈보다도 중요한 건 결국 본업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이다. 본업을 싫어하더라도 본업을 하고 있는 자신까지 싫어할 필욘 없다. 오히려 그럼에도 버텨내는 자신을 칭찬해도 모자라다.
자아를 무작정 분리하면 자신감 역시 반쪽이 되더라. 그것도 모르고 냅다 분리부터 시작하면 이쪽 자아도 저쪽 자아도 둘 다 만족스럽지 못해 분리하지 않던 시절만도 못 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 시작할 수 있는 선에서, 지금 하고 있는 본업에서 자신감을 길러내 보자. 지긋지긋한 본업조차 열심히 한다면, 또 운이 좋아 ”잘“ 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건강한 자아 분리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