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의 남은 2/3에 집중하는 삶
취업 후 첫 3-4년간은 현실 도피에 빠져있었다.
"이 병원만 그런 거겠지."
계약직 생활을 전전하며 이직에 이직을 거듭했다.
"다른 병원에서 일하면 좀 낫겠지. 정규직이 되면 다르지 않을까? 연차가 쌓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직을 거듭해 보아도, 정규직으로 근무해 보아도, 어느덧 주니어를 벗어나 시니어 계급의 문턱에 오른 지금도 여전히 임상병리사 일은 내게 안 맞다.
그 후 임상병리사로서 5년 차 즘에 이르렀을 땐 다른 일에 기웃거렸다. 병원 말고 기업에 들어가 완전히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임상병리학 학사 4년 동안 나는 오로지 임상병리사가 되도록 길러져 왔기에 내 전공으로 할 수 있는 일의 폭은 상당히 좁았다. 이건 전문직종의 가장 큰 단점이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는 수월하지만 전공을 벗어난 직종에 취업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력한다면 세상에 안될 일이 뭐 있겠냐마는, 그렇게 노력해서 이직한다 한들 현실적인 조건들이 나의 발목을 무겁게 붙잡는다.
당시 나는 최대한 내 전공을 살리고자 임상 시험이나 진단 기기 업계를 고려했다. "거지 같은 병원 바닥, 내가 기필코 뜨고 만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세운 이직 계획은 역시나 병원 언저리를 맴돌았다. 당시의 이직 준비는 대학을 갓 졸업한 후 뭣도 모르고 뛰어들었던 취업 전선보다도 녹록지 않았다. 20대 후반의 끝자락에 접어든 내가 다시 새로운 업계에서 인턴부터 시작한다 한들 정규직이 보장된 것도 아닐뿐더러, 병원만큼의 급여를 충족하는 직장은 흔치 않았다. 어쩌다 급여 조건이 좋은 곳을 발견하면 워라밸이 엉망이라고 업계에 소문이 자자하거나 외국계 기업이라 영어를 필수로 요구했다. 해외여행에서 일상 대화나 겨우 해내던 내게 비즈니스 영어는 단기간에 채우기엔 불가능한 항아리였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은 병원만큼 여성 친화적이고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이 없다는 것이다.
닳고 닳은 중고 신입은 바라는 게 너무 많았고 회사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실패를 끔찍이 두려워했다. 지금까지의 내 커리어를 다 버리고 새로운 업계로 뛰어들었는데 거기서 마저 만족하지 못한다면 내게 남는 것이 대체 무엇일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실패가 미치도록 두려웠다. 그 당시의 나는 안정에 목마른, 30대를 목전에 둔 초조한 직장인이었기에.
결국 나는 이직 준비를 접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선택했다. 내 적성만 죽이면 다 괜찮잖아. 문제없잖아.
그리고 임상병리사로서 8년 차인 지금은 시들어가는 나의 삶에 미약한 분무기질이라도 하고자 직장에서 보내는 하루의 1/3이 아닌, 그 이후의 2/3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직장에서의 삶과 직장 이후의 삶을 분리하는 것으로 세상과 타협했다. 파워 내향인인 나는 그전까진 일-집-일-집만을 반복했다. 퇴근 후엔 후다닥 요리를 해 먹고 이따금 책을 읽다가 그마저도 지겨우면 넷플릭스만 주야장천 보다 잠들기. 주말이면 본가를 들러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정도가 다였다. 하루가 매번 이렇게 무료하다 보니 자연스레 내 인생의 중심은 직장이 되었고, 직업적 성취가 없는 하루하루는 그런 나를 우울감에 침몰시키곤 했다. 이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임상병리사인 나 자신을 만족하지 못하며 살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운동이었다. 우울감을 떨치기엔 몸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퇴근 후 우울에 빠져들새를 주지 않고 바로 운동으로 기운을 빼고 나면 온갖 잡념이 사라진다. 밥맛도 훨씬 좋아지는 건 덤이다. 감정에서 우울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후 바로 착수한 다음 작업은 내가 온전히 몰두할 인생의 큰 목표를 세우는 것이었다. 바로 내 집 마련이다. 월세 방을 전전하면서 집에 대한 욕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에 이참에 이직에 쏟아부었던 정신을 내 집 마련을 위한 목돈 모으기에 쏟아보자고 결심했다.
아무래도 목표기한 안에 목돈을 모으려면 월급만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부터 나는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경제 스터디를 나가고 관심도 없던 미국 주식에 뛰어들었다. 퇴근 후 아무것도 안 하고 살던 사람이 운동도 하고 주 1회 진행되는 경제 스터디를 위한 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18시간쯤으로 짧게 느껴졌다. 특히나 투자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자 넷플릭스가 아닌 주식이라는 새로운 도파민에 중독됐다. 직장에서도 시도때도 없이 주식 차트가 생각나는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뭐가됐든 노력한 만큼 성과를 보고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다.(물론 이후 주식의 쓰디쓴 맛도 한 두번 보았다. 현실은 늘 이렇다.) 퇴근 후의 삶이 바쁘게 돌아가니 스스로가 뿌듯하게 느껴지고 주말은 훨씬 달게 느껴졌다.
이 삶이 적응되어 갈 무렵엔 유일한 취미 생활인 독서를 확장시켰다. 혼자 책을 읽고 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기적으로 독서모임을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모임을 지속하면서 자연스레 책은 이제 내겐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었고, 점점 속으로만 덮고 넘기기엔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졌다. 남들과 주어진 시간 내에 이야기하는 것 만으로 채울 수 없는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오늘에 이르자 깨달았다. 내 자아 분리의 최종 목적지는 "글쓰기"라는 것을. 이따금 직장 생활의 매너리즘 여파로 글 쓰는 것조차 권태로워질 때가 있지만 나는 결국, 언제나 글쓰기로 돌아갔다. 퇴근 후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직장에서의 일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 시간만큼은 임상병리사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삶에서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는 게 꼭 필수적이진 않다는, 일이 나의 전부는 아니어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