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직업을 가진 자의 설움
“딸, 그래서 네가 하는 일이 뭐야?“
오랜만에 동창 친구들을 만나고 온 엄마가 내게 물었다. 올해로 벌써 임상병리사 일을 시작한 지 8년 차인 내게 엄마가 수도 없이 했던 질문이다. 첫해엔 나도 신나서 나무위키마냥 설명했다.
”임상병리사는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검사를 하는 의료기사야. 그중에서도 나는 환자의 혈액이나 기타 체액을 채취해서 블라블라“
그리고 그다음 해에 또 질문을 받았을 땐
“채혈하고 그 혈액으로 여러 가지 검사해“
그리고 또 그다음 해엔
“피검사도 하고 현미경도 보고 뭐 이것저것.”
그리고 또 그다음 해 언젠간..
“왜 매번 물어봐?“
엄마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점점 문장의 길이가 간소해지는 것은 물론, 말투도 날이 갈수록 싸가지바가지가 되어갔다. 그럼에도 엄만 꿋꿋이 내게 질문했다. 아마도 엄마는 친구들에게 전문직 딸자식을 자랑하고 싶은 맘에 매번 물어본 것 같다. 다만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 매번 물어도 정확히 기억하기가 어려웠나 보다. 그거 조금 친절하게 답하는 게 그리도 어려웠는지 나 역시 스스로를 타박하곤 한다. 하지만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엄마뿐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오랜만에 만난 학창 시절 친구들, 스터디로 처음 만난 사람들, 심지어는 소개팅 상대 등. 그들에게 직업을 밝히면 열에 아홉은 ”임상병리사? 그게 뭔데?“라고 묻는다. 간혹 알은 체를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와 뭐가 다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럼 나는 또 거기에 일일이 설명해 줬고 그들은 설명을 다 들은 후에도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곤 다음 만남에선 또 내 직업을 낯설어한다. 그러다 보니 짜증의 화살은 온전히 엄마에게 갔다.
“사람들은 임상병리사가 뭔지 잘 모르더라고. 그래서 매번 나도 물어보게 되네.”
엄마는 내 짜증에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변명했다. 실은 엄마한테 화가 난 게 아닌데. 오늘도 후회할 말을 집어삼키지 못하고 내뱉은 내 혓바닥 탓만 한다.
사실 나의 짜증은 단순히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에서만 기원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일이 싫다. 애써 부정하고 부정해 왔지만 정말 적성에 맞지 않다. 내가 이 직업을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그만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독한 안정추구형인 나는 안정적이고 업무 강도가 세지 않으면서 여초 직군인지라 여성 친화적이고, 국가 면허증이 있어야만 취업이 가능한 전문직이라는 점에 이끌려 임상병리사를 선택했다. 일을 직접 해보면서 앞서 나열한 조건들이 실제로 대부분 부합했고 생각보다 벌이도 좋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아니 실은 “좋은 편”에 속한 직업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임상병리사는 대중에게 인지도가 상당히 낮다. 특히나 전문직은 불안정한 고용 환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인데도 말이다. 같은 의료기사인 물리치료사, 치위생사 등은 직업만 말해도 무슨 일을 하는지 다들 잘 아는 것을 보면 의아스럽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루하루 버텨내며 하는 와중에 임상병리사의 임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앵무새마냥 나의 직업을 설명하고 있자니, 짜증을 넘어서 직업적 열등감까지 일었다.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내 찌질함에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동시에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지네.
이 글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나의 직업과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방법, 그리고 내 열등감과 타협하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다. 매일매일 적성 따윈 두고 출근하지만, 그래도 나는 어엿한 임상병리사로 살아남았다. 사람은 언제나 하고 싶은 일만,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순 없다. 나는 그중 내 하루의 1/3을 소비하는 “직업”이 그럴 뿐이다. 좋아하진 않더라도 내 하루의 1/3을 알차게, 보람차게는 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