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에다가는 힘 빼시고 엉덩이에다가 힘을 주세요!
복부 아래쪽에다가도!! 멈추지 말고 계속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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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머리가 보이면 산모에게 외치는 말이다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는 내가 당최 어디에다가 힘을 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산모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걸 보면 삼신할매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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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앞둔 산모들에게서는
아기와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대, 산통에 대한 두려움과
어떠한 비장함이 섞인 표정을 엿볼 수 있다
남산만 한 배, 숨을 제대로 편히 내뱉지 못하면서도
이깟쯤이야 하는 이 산모들에게서
전투에 참전하는 용사 같은 용맹함 비슷한 것을 느낀다 아기를 품으면 그 용맹함이 점차 차오르는 건지
같은 여자이지만 그저 그녀들이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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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무조건 아기는 하나 이상은 낳아야 한다는 의무가 부부들에게 주어졌던 예전과는 다르게,
딩크족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출산의 선택지가 많아진 요즘이지만
(선택지가 많아진 건지 선택을 포기해야만 하는 건지)
나는 몇 년 전에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다
산부인과 일을 시작하기 전엔, 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산 생각도 없었다
남편과 둘이 살아도 퍽 좋을 것 같았다
세계 일주이니 취미활동이니 뭐니 하면서
무엇보다도 출산이 무섭기도 했고
출산 전의 몸매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 사라질 내 삶과
커리어의 단절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출산을 꼭 하겠노라 다짐을 하게 됐다
생각이 크게 바뀌게 된 데에는 역시 출산 이후 광경에 있었다
기진맥진한 산모와 남편, 그리고 아이와의 첫 만남
두 눈에 그렁그렁 한 눈물
같은 감격을 느끼고 있는 배우자와의 말 없는 눈 맞춤
죽었다 깨어나도 아기를 낳지 않고서는 그 감정을 느낄 수 없겠다는 이유가 있었다
산모 중에는 본인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돼서 행복하다는 이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와 내 남편의 얼굴이 반씩 섞인 아기를 낳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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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의국 교수님들께서는 슬하에 자식을 많이 두셨다
비교적 젊은 교수님들까지도 2명 이상의 자식을 두시고 많게는 5남매를 둔 교수님도 계셨다
전공의들 전문의들한테도 꼭 아이를 가지기를 권하신다 자식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줄 아시냐고 하면서
너희가 산부인과 의사들인데 더 잘할?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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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의 고통이 인간이 인생에서 느끼는 고통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통증학의 발달로 무통주사의 효과가 좋아 (무통천국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많은 산모가 그리 힘들지 않게 아기를 낳았다고 말했다 제왕절개 후 주는 자가통증주사도 효과가 좋다
출산 이외에도 산전 검사들을 통해 초기에 고위험 산모들을 진단해서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보내기도 하고
상급병원에서는 그런 산모들의 초응급 상황 발생 시
바로 처치를 할 수 있도록 비상 대응체계도 잘 갖춰져 있다
적어도, '출산'만 놓고 위험요소에 관해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 놓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누구는 '너는 해보지도 않고 그럴 말할 자격이 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사실 무섭기는 하다 그렇지만 곧 나도 엄마가 되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나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을 예비 엄마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고 싶다
바로 옆에서 지켜봤는데 다들 잘 해내셨다고
그래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그러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우리 같이 삼신할매한테 잘 보살펴달라 하자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