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교수님과의 회진시간
한 병실에서 꽃향기가 났다.
철쭉꽃이 꽂힌 플라스틱으로 만든 병 여러 개가
창가에 놓여있었다.
철쭉이 피었길래 따봤어요 하고 말하는
한 환자의 마른 얼굴에 수줍음이 번졌다.
부서질 것 같은 앙상하고 가녀린 몸
빠진 머리카락을 덮은, 계절에 맞지 않는 털모자
누가 봐도 암투병 중인 것 같은 그녀이지만
가끔 소녀 같은 그 행동들이
건조한 병동 분위기를 풀기도 했다.
그렇게 밝은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항상 혼자였다.
보호자는 아들 하나.
하지만 수 없는 입원기간 동안에 아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철쭉을 한 아름 따왔던 그 시간으로부터
두어 해가 지났을까
가녀린 그 몸은 암세포를 결국 이기지 못했다.
일어서기만 해도 볼 수 있는 창문너머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와 철쭉을
그녀는 이제 볼 기력도 없고
보고 싶은 생각도 없는 듯했다.
멈춰버린 장 때문에 끼어진 콧줄
진통제로 텅 비어버린 눈
물 찬 폐 때문에 거칠어진 숨소리
유일하게 두 눈이 반짝이는 순간은
교수님과의 만남 때뿐
부축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들어
간병인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녀는
말투가 거슬린다며 갑자기 간병인을 해고했다.
그녀의 수족이 된 간호사들이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야
그녀는 조용히 나를 불러
통장에 백만 원도 없어서 값싼 간병인을
찾고 있노라 조용히 읊조렸다.
그리고, 이제 곧 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했다.
아들에게 연락을 해달라 했다.
아들 얼굴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며
그렇게 구한 값싼 간병인은 이내 할 일이 없어졌다.
그녀가 이제 말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수 십통의 전화를 아들에게 걸어 보았지만
그녀는 홀로 쓸쓸하게 목숨을 거뒀다.
아들의 얼굴을 마주한 건 사망선고를 내리고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낯짝이나 보자 할 심산으로 하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 그에게 갔다.
자신의 남은 통장잔고와 죽을 날을 셈하며
눈물로 지새웠을 그녀의 심정이 상상이 가질 않아서 그녀를 대신해 어떤 모진 말이라도 하고싶었다.
.......
말라붙은 살가죽에 얼굴을 맞대던
나보다도 더 젊은것 같았던 아들
화사한 봄날의 철쭉 같던 엄마의 얼굴이
점점 시들해져 가는 걸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침대에 고꾸라져 연신 미안하다며 울고 있는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뭇가지 같던 그 손에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아들의 손이 끼워졌지만
결국 온기는 전해지지 못했다.
이미 시들어 버린 그 몸에 한 조각의 영혼이라도 남아있었더라면 그 영혼은 기뻐했을까 아니면 슬퍼했을까
그녀가 떠나고
봄이 돌아와 철쭉을 볼 때면
해사한 그녀의 얼굴이 이 따끔씩 생각이 난다.
그곳에선 아무런 걱정 없이
꽃처럼 아름다운 것들로 둘러싸여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