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아버지 임종하시던 날 나는 세상을 모두 잃은 것 같았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살게 하시고 나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주신 내 아버지
51살에 날 아홉번째 자식으로 만나고 나서 오직 나만 보셨던 내 아버지.
大農(대농) 에도 막내딸 밭일 한번 안 시키고 공부해라, 책봐라, 필요한거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셨던 마음 나를 살게하는 세상 가장 튼튼한 기둥이었어
나갔다 오시면 " 밥 먹었나 ? 숙제했나? 엄마가 때리지 않았나? 누구집에 가 있었나? " 걱정하신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었어.
내 어머니 나만 보면 미운오리새끼 보듯 양눈 위로 치켜뜨고 '이년 저년 여우같은 년 나쁜년' 은 일상 언어였고 아끼시는 여섯째 딸이랑 싸우면 부엌에 싸리빗자루가 내 몸을 강타해도 내가 씩씩하게 견딜 수 있는 건 내 아버지가 내 뒤에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였어
나는 어머니 기분좋은 날은 딸이고 기분 나쁜날은 원수가 되었지만, 내 아버지에게 나는 애틋하고 불쌍하고 이쁜 딸이었으니 부모가 다 계셨어도 난 아버지만 있는 자식처럼 살았지
아버지 장에 가시는 날엔 나 두고 가시면서 뉘집에 가서 놀다가 저녁 해지면 들어와라
들에 가실땐 어느 밭에 어느 논에 가신다 알려주셨지 내가 상처 입을까봐
언제든 달려오라고~~
그랬던 나의 아버지 날 두고 떠나실 때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이 ' 저 불쌍한 거 두고 어찌가나 몇번을 눈 뜨고 감으시면서 '
" 잘 살아야 해 아비가 미안해 , 아비가 미안해, 더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아비가 미안해 " 하시는 말씀에 나는 붙잡지도 못하고 보내드리지도 못하는 눈물에 아버지 손 잡고 " 웅 아버지 걱정말아 나 잘 하고 살께 ! 똑똑히 살께 아버지! 아버지!"
우리 부녀 슬픈 이별은 5월이었어.
아버지 떠나시고 석달 뒤 애 아버지 떠나고 4살 아들과 세상에 툭 던져졌어
살아야 하는데, 힘내야 하는데, 저 어린 자식 나 없으면 어쩌나~~ 하면서도 갈피를 못 잡던 내 마음은 허공을 떠돌고 헤매다
정신차려보니 나는 중환자실에 꽁꽁 묶인 채 누워있었어 죽음 문턱앞에~~
술을 잔뜩 마시고 차를 언덕으로 몰았다고 간이 파열돼서 죽기직전이라고 했지!
죽음앞에서 '내가 미쳤다고 미쳤구나' 아들이 눈에 밟히고 이기적이던 내가 너무나 한심스럽고 죄를 지었구나
퉁퉁 부은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어.
살아야 한다고 살아서 꼭 내 아버지께 잘 살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다짐을 했지
" 그래~~ 받은 사랑에 잘 사는 모습으로 보답하자"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24년이 흘러갔네.
잘 산 건지는 몰라도 참 열심히 부끄럽지 않게는 살았으니까 아버지도 기특하다 하실거야
작년에 친구와 노래방을 갔는데 친구가 부르는 노래가 너무 슬프고 아파서 엉엉 울었지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말이야
내 이름 석자를 한글자 한글자 지으실 때
막내라도 효도하고 착하게 살라고 면사무소 앞에서 돌림자와 상관없이 지으셨다는 내이름 ' 李孝善 '
"그 이름 기억하시죠?" 아버지!!!
[ 어두운 길을 어찌 홀로 가나요
새들도 나무들도 슬피 우는 밤
조심조심 가세요
넘어지면 안돼요
달님이 그 먼길을 지킬겁니다
내 이름 아시죠
한글자 한글자 지어 주신 이름
내 이름 아시죠
가시다가 외로울 때 불러주세요
길 잃으면 안돼요
꿈에 한번 오세요
잘 도착했다
말해요 ]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아버지에겐 아직도 난 철없는 막내딸이겠지
너무 늦게 날 보셔서 함께 한 시간이
짧아서 그게 늘 미안하다고 하시던 내 아버지 고맙습니다
받은 사랑 저도 많은 이에게 베풀고 사랑주면서 살게요
남은 삶, 또 부끄럼 없이 잘 살다가 아버지에게 달려갈게요!
" 아버지도 잘 지내고 계신거지요?
꿈에 한번 다녀가세요~~~
보고싶습니다 아버지!"
< 사랑은 받은 것, 그 이상을 줘야지만 받은 사랑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을 아는 것이다. ( 정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