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안부편지

by 서윤

아버지께


아버지 저 산모퉁이 돌면 아버지 누워계시는 곳인데 사는 거 바쁘다고 거길 못 들리고 자동차 네바퀴가 그냥 굴러갑니다

제 마음과 다르게 자동차가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부지런히 차 창문을 열고 아버지한테 안부를 전하네요


" 아버지 막내딸이 바빠서 오늘은 못 뵙고 그냥 가요 잘 계신거죠 아버지 "

자동차 페달을 밟은 다리는 마음과 달리 벌써 꽤 많이 달려왔어요

사는거 참 고단하네요

뭐 바쁘다고 잠깐이라도 올라가서 절 올릴 시간도 안 나는건지 이런 불효가 또 없어요 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 아버지의 여섯째 딸이 많이 아파요

몹쓸 암덩어리가 폐에 앉아서 물러가질 않네요 벌써 일년이 되었는데, 암이 사라지지 않아요

이젠 머리까지 그 몹쓸 암이란 녀석이 생겼다네요

아버지 사시는 나라에 높으신분 하고 친하면 자존심 버리시고 여섯째 딸이 아프다고 손이라도 비벼보시면 안될까요


아버지 성품에 절대 못하실 걸 알면서 이 막내딸이 언니 걱정으로 밤낮없이 마음이 아프오니 이번엔 쇠고집 버리시고 한번 부탁해주셔요

오늘 언니집에 갔더니 언니 얼굴이 아주 못쓰게 되었어요

언니말로는 살이 찐거라고 하는데 제 생각엔 항암치료 받느라 부은 것 같아요


우리집안에 암 환자는 없었는데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런 병이 없었는데 어쩌다 여섯째 언니가 그런 나쁜병에 걸린건지 많이 속 상해요

또 동생이라고 햇고춧가루에 참깨를 볶아서 바리바리 챙겨주는데 안 받으면 서운해할까봐 받아오면서도 마음이 천근만근이네요


다 지나간 일인데 어린시절 철없을 때 한 일을 두고 저렇게 평생을 저한테 무슨 죄인처럼 미안하다 막내야 미안하다 하는 언니때문에 이 막둥이는 가슴이 저리고 아파요

언니가 동생도 때리면서 크는 것인데

엄마사랑 뺏었다면서 저토록 자꾸 마음의 짐을 붙잡고 사는 언니가 안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언니가 저때문에 아픈것 같아서 저는 또 굴레에 갇혔어요


아버지 곧 추석이네요

올 여름은 어찌나 더운지 처서가 지나고 이십여일 지나면 추분인데 여전히 30도를 넘는 폭염에 어느마을은 가물어서 물도 없다고 난리라고 하네요

그나마 우리마을은 풍년이 들었대요

고추도 실하고 담배농사도 잘 되고 벼 알갱이도 잘 영글어간다고 하네요


저 너머 아버지의 큰 며느리는 자꾸 정신을 어디다 버리고 있어요

평생 큰며느리 하느라 지친건지 점점 까묵까묵 하네요

세월엔 장사가 없나봐요

날쌘 다람쥐 같던 큰올케가 저리 오락가락 하니 그것도 큰 걱정이에요

아버지 나라엔 그런거 없는거지요

무탈하게 잘 지내고 계신거지요


가을 하늘은 서러울만큼 높고 파랗고 그만큼 아버지가 멀리 계신듯 하니 저는 높은 하늘도 괜히 밉네요

구름이 많은것도 이상하게 답답하네요

구름에 가려 아버지 나라에서 이곳이 안보일까봐 죄없는 가을구름을 원망했어요


아버지 추석명절엔 꼭 아버지 뵈러 갈께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커피도 끓여가고 백설기랑 귤도 챙겨갈께요

아홉 자식 낳아서 평생을 자식들 건사한다고 밭으로 논으로 산으로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만 하시고 호강한번 못하시고 가셨는데 그곳에선 편안하신거지요


막내딸이 눈에 밟혀 못가시겠다 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3년이 지나가고 막내딸 머리에도 하얀머리가 올라오네요

보고싶어요 아버지

꿈에 잠깐이라도 다녀가셔요

그러실거지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