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야기 1

바닷가 마을에서

by 서윤

여름이야기 1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어요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나와 친구 세명은 2학년이 되어서 각각의 반으로 나누어졌어도 여전히 절친으로 등하교를 같이 했어요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그중 한 명이 자신의 고향마을 울진으로 바다여행을 가자고 제안했고, 설레는 청춘의 심장을 끌어안고 우리들은 울진으로 향했지요


서울에서 울진까지 두 번 세 번 버스를 갈아타면서 도착한 울진 친구의 고향집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어요


대문도 없는 바닷가 작은 집의 마루는 모래사장과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파도는 작은 집 마루를 바라보면서 왔다 갔다 하는데 마루에는 바람에 날아온 하얀 소금이 잔뜩 묻어 있었어요


여름 태양은 바닷물을 펄펄 끓여놓아서 뜨거운 김이 날 정도였어요

맨발로 밟는 모래는 ' 앗 뜨거워 앗 뜨거워 ' 라는 소리가 방언처럼 쏟아졌어요


우리 네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 또 네 가지 성격을 가진 개개인이었어요

어쩌면 서로 다른 성격이라 나와 다름에 대한 매력을 흠모하고 존중하기에 더욱 친한 사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내게 없는 것들을 가진 사람에게서 느끼는 이질감은 가끔 충격도 주고 신선함도 주거든요

울진에서의 첫날.

친구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딸의 친구들이 놀러 왔는데 특별히 음식을 만든다거나 대접을 하기 위해서 애쓰시는 분이 아니더군요

우리는 어쩌면 그래서 그 작은집이 더 편안했는지도 몰라요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 친구 어머니 성격은 막 사춘기를 지난 여학생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 같았거든요


멀리서 왔다고 손님이니까 잘해주려고, 신경 쓰셨으면 어색하고 불편했을 텐데 친구의 어머니는 우리를 매일 마주하던 딸처럼 갓 지은 밥에 반찬이래야 새우젓무침, 김치, 멍게가 전부인 밥상을 차려주셨는데, 그날 먹은 밥은 천상의 맛이 따로 없을 만큼 최고였어요


바닷가 작은 마을은 저녁이 되어도 이글거리는 여름태양이 누그러질 기미가 안 보였고,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기엔 우리들의 심장이 그만큼 뜨거워서 빨리 바다를 즐겨야 했지요


맨발로 뜨겁게 달궈진 모래 위를 걷는 친구,

바다가 신기해서 파도와 뛰어노는 나

귀찮다고 마루에 누워 반짝이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친구,

고향집에 오랜만에 왔다고 함께 온 친구들을 팽개치고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간 친구


우리는 그날도 늘 그랬듯이 같이하자, 같이 가자, 놀아달라 보채는 사람 없이 각자의 하루를 그리고 바다를 그 작은 마을의 풍경을 느끼며 자신만의 여름날을 즐기고 있었어요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꼭 무엇이든 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라고 해서, 같이 여행을 왔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이끌려 나의 마음이 원하지 않는 걸 한다는 건 바보 같으니까요


친구가 고향이 바다라고 함께 가자고 했을 때 각자 무엇을 하고 싶다. 해야지 했던 생각들을 어떤 규제 없이 자유스럽게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울진의 여름 바다가 더 기억에 남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되는 건 친구들과 함께여서 좋았고 그 속에 또 나만의 시간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여행 이후에도 나는 또 다른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때로는 친목모임에서, 그리고 연인과, 가족과 여행을 다니면서 어느 때는 내 의견을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끌려다닌 경우도 많아요


해외여행을 갔을 때는 가이드의 깃발을 보며 유치원생처럼 참새 짹짹하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좋은 곳이라니까 스케줄에 있다니까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라니까

가야 하나보다 끌려다닌 적도 있어요

그럴 때는 피로감이 몇 배로 쌓인 경우도 많았지요

돈을 냈으니 안 가는 건 아쉽고, 또 시키는 대로 하자니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들고 그렇게 마친 여행 뒤엔 꼭 아쉬움이 동반을 하더라고요


관광, 휴양, 힐링 여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얼마나 즐거우냐인데 대부분 여행의 끝엔 크고 작게 아쉬움이 남아요

그것은 아마도 자유라는 걸 박탈당하고, 나의 의견을 내세우지 못했기에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물론, 일률적인 여행을 하고 오면 다른 사람과 대화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좋아요

' 어 너도 거기 ? 나도 '

' 아 나도 가서 그거 했잖아, 샀잖아 ' 식의 대화로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요

하지만 나만이 갖고 싶은 여행의 숨겨진 비밀은 없으니 아쉬움이 남았어요


1980년대 중반 고등학교 시절

아침에 출발해서 오후 늦게 도착했던 여행길 지치기도 했고 멀미를 하고 투덜거리는 친구를 다독이면서 갔던 울진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의 여름여행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 바다 ' 하면 제일 먼저 떠올라요


특별한 손님이었지만 특별히 대하지 않았던 친구의 어머니와 넷이 갔지만 각자의 시간이 있어서였고, 돈을 쓰지 않아도 배부르고, 누가 웃겨주지 않아도 저절로 웃음이 났던 건 ' 자유와 나 ' 가 존재했기에 오래도록 기억 속에 곱게 남아 있어요


그해 여름 바닷가 작은 집 마루에서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고, 밤하늘의 총총이 빛나던 별들은 별이었던 동시에 우리들의 순수한 마음이었고, 잊지 못할 추억의 페이지 한 장을 조용히 왔다 갔다 하던 파도소리에 두고 거죠


친구의 어머니가 깨실까 봐 작게 속삭이던

이야기들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 희망이 훨씬 컸던 꿈 많았던 소녀들의 시간은 그냥 단순한 바다여행이 아니었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해요


우리가 사는 인생을 지구여행이라고 하지요

그 인생 여행에도 ' 자유 ' 가 없고 ' 나 ' 가 없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고, 그 속에 누구와 어떻게 여정을 보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즐기는 여행도 어디를 갔느냐 보다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것이 더 중요하지요


여러분의 모든 여행에 ' 나 ' 그리고 ' 자유 ' 존재하기를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