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님과 해인글방에서

소중한 시간

by 서윤

이해인 수녀님과

해인글방에서 ~~


겨울이 겨울답게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12월 27일 새벽 5시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오늘은 부산에서 이해인 수녀님을 만나는 날이다.

대구에서 글벗들을 탑승시키고 부산까지 가려면 조금은 고단한 일정이었지만, 수녀님을 만난다는 설렘이 더 컸기에 피곤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새벽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토요일이라 새벽인데도 고속도로에 제법 많은 차량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조용한 음악과 함께 내 차도 마음도 달리고 있었다.

칠곡휴게소에서 잠시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무거운 몸을 달래주고 있을 때 노랗게 동이 트기 시작했다.


대구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한 명씩 약속시간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9명이 부산으로 다시 길을 잡았다.

바람은 차가운데 하늘은 너무나 맑고 아침해가 선명하게 차창을 비추니 눈이 부셨다.



겨울하늘이 티 없이 깨끗한 날 부산에 도착하니 열두 시가 되었고,

광안리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국밥집에서 아점을 먹고 수녀님과 다과를 위해 레몬생강차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글벗들과 잠시 추위를 녹이면서 각자의 떨림을 공유한다.


나는 작년에도 수녀님과의 시간을 잡았었는데, 막내언니의 암 진단소식에 부득이 약속을 취소했었기에 때문에 수녀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편지도 쓰고 예쁜 꽃 스티커를 선물로 준비했다.

스티커 속에 나만의 깜짝 이벤트도 숨겨놓았는데 수녀님이 기뻐하셨으면 좋겠다.


드디어 2시쯤 성 베네딕토 수녀원을 걸어 올라가니 오른쪽에 해인글방이 보였다.

전날 수녀원에 다른 수녀님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가셔서 그런지 입구에 상중이라고 쓰여있어서 왠지 더 조심스러워지는 날에 이해인 수녀님을 기다리며 해인글방을 둘러보는데,

수녀님의 모든 생이 담겨있는 해인글방은 그 자체로 글의 공간이고 세월의 기적이었다.


26년에 수녀원에서 해인글방을 철거하기로 했다는데 그 소식에 사실 너무 아쉽고 마음이 착잡했었다.

해인글방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하나하나 더 소중하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소중한 물건들과 수녀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팬들이 보낸 선물들이 여기저기 빼곡하게 각각의 향기로 겨울햇살을 받고 있었다.



처음부터 수녀님의 장난기 가득한 퀴즈로 긴장을 풀면서 시작한 시간 61년 수녀원 생활 50년을 시인으로 산 이해인 수녀님의 진솔한 이야기에 촉촉해지는 눈가가 무색하게 수녀님은 참 씩씩하시고 밝게 이야기를 끌고 가신다.

이번에 새로 나온 이해인 수녀님의

[ 민들레 솜틀처럼 ] 으로 각자 시 낭송을 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어느새 만남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수녀님은 80세라는 나이가 어디에 숨어있는 건지 참 소녀 같으시다.


봄이면 해인글방이 사라지고 수녀님의 소중한 물건들 중 일부만 수녀원 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된다는데 사라져 갈 물건들을 보면 볼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해인 수녀님의 글과 말씀에 힘을 얻어 새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과 힘들고 고달플 때 수녀님의 책으로 위로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이해인 수녀님은 늘 읽기 편하고 예쁜 글을 쓰시니까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함이 있어서 더 아름답다.


나 역시 가끔 삶에 찌들고 마음이 고단해지면 수녀님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독일 때가 많다.

꽃 바다 조개 바람 계절 이해인 수녀님은 수녀원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글로 적어내는데 어찌 보면 수녀님 자체가 꽃이고 바다이고 모든 계절이다.


암 수술을 받으시고 항암치료를 받으시면서 힘든 시간에도 늘 글을 쓰셨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셨기에 그 마음을 우리가 또 받으면서 글이 주는 위로를 받는다.


걱정했던 것보다 이해인 수녀님이 생각보다 목소리에 힘이 있고, 표정도 너무 편안해 보여서 더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언제나 소녀 같은 이해인 수녀님이 더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희망을 나눠주시고 모든 삶이 아름답다는 걸 전해주셨으면 좋겠다.


2025년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의 하루글 벗들과의 만남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귀하고 소중한 브런치 작가님들과 글로 소통하고 예쁜 인연들이 만들어져서 더 이상의 욕심이 없을 만큼 충만한 한 해였는데 마무리를 이해인 수녀님과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커다란 행복이었다.


오늘 나는 이해인 수녀님의 해인글방에서 다시 희망을 만났다.

앞으로 조금 더 밝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나 또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가 이 시대에 살기에 이해인 수녀님을 직접 뵙고 함께 할 수 있어서 그것이 최고의 선물이었고, 이해인 수녀님과 같은 시대에 산다는 것이 어쩌면 인생의 최대 기쁨이 아닐까 싶은 날이었다.


이해인 수녀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이해인 수녀님


서윤


내가 아는 소녀는

머리가 하얗다


내가 아는 소녀는

꽃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한다


내가 아는 소녀는

나이가 나보다 많다


내가 아는 소녀는

칠순이 지나서도 꽃의 시를 쓴다


내가 아는 소녀는

한평생 소녀로 사셨다


내가 아는 소녀가

오래도록 꽃으로 바다로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