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순이씨 이야기
순이씨 아침 댓바람부터
사슴농장 아저씨와 다투셨을까
사슴하고 싸우셨을까
사슴뿔 한약방에 맡기고
박카스 병에 사슴피를 담아 와서
' 식기 전에 마셔 ' 하는데
에그머니 사슴피 무서워
우리 순이씨 더 무서워
뒷걸음 하는 내 코를 움켜잡고
' 눈 꼭 감고 들이켜 ' 하는데
겁먹었을 사슴 눈이 아른거리고
순이씨 얼굴이 괴물 같았어
박카스 병만 보면 그날이 떠올라서
피로가 겹겹이 쌓여도
좋은 거라고 아무리 우겨도
여전히 박카스 공포증이 있어
울 호랭이엄니 순이씨
자식 위하느라 사슴 뿔도 자르고
개도 잡고
돼지도 잡고
닭 모가지도 비틀고
토끼도 잡고
딸년 멱살도 잡았지
고마운 건지 무서운 건지 헷갈렸었어
나 이제 나이를 먹었지
순순히 잡혀서 먹으라는 거 먹고
삼키라는 거 삼킬 걸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