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

추억

by 서윤

썰매


겨울 오기 전 벼를 베어 낸

논이 텅 비면

마을이 가까운 반듯한 논에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냇가 물을 끌어다가 가득 채운다

서리가 오고

감이 떨어지면

첫눈이 내리고

논에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살얼음 위에

다시 물이 채워지고

벼를 베고 남겨진 뿌리들

서서히

얼음 속으로 사라져 간다


얼음이 얼고

다시 물을 채우는 일을 반복하면

단단하고 두꺼운

얼음판이 만들어지는데

그 무렵이면 털모자에

벙어리장갑으로 무장한

마을 악동들이

나무 썰매를 옆구리에 끼고

못을 거꾸로 박은 작대기 두 개를

휘두르며 하나 둘

논으로 모여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까르륵까르륵

웃음을 매달고

얼음판을 질주하는 썰매

콧물을 닦아 낸

소매 끝은 번들거리고

벙어리장갑 속 손가락이

꽁꽁 얼어도

겨울 썰매는 쉴 수가 없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집을 지은 까치

전봇대에 일렬종대로 앉아

벼 이삭을 찾느라

눈이 번득이는 참새 가족

굴뚝 연기 집집마다

피어오르고

엄마 누나가 아이 부르는 소리

골목골목 울려 퍼지면

악동들 노란 콧물을 달고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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